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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보람] 이대섭·이혜란 씨 – 이민생활 40년의 한인 약사 부부


메릴랜드주 실버 스프링에는 문을 연 지 1백년이 넘는 오래된 약국이 있습니다. 뉴햄프셔가 선상에 있는 힐란델 약국… 열평 남짓한 이 약국은 현재 한인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바로 한인 약사 부부, 이대섭, 이혜란 씨입니다.

처방전에 따라 약을 지어주고, 복권을 사는 손님들에게 행운을 빌어주고, 걸려오는 문의전화에 답하고… 아침 이른 시간이지만 이 씨 부부는 바쁘기만 합니다.

이 씨 부부는 각각 한국에서 약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 왔습니다. 이대섭 씨는 1967년에, 부인 이혜란 씨는 그 보다 2년 뒤인1969년에 미국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혜란 씨는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욕심에 미국에 왔지만, 외로움 때문에 눈물로 지샐 때가 더 많았다고 말합니다.

//이혜란 씨//

“오죽하면 울려고 내가 왔던가.. 굉장히 외로운 것 때문에 혼자서 와서 그게 굉장히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다른 문제도 많았지만… 영어도 잘 못하고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정말로 내 욕을 누가 옆에서 해도 못 알아듣고 그랬었죠. 그 당시에는요.”

하루 종일 거리를 걸어도 한인은 커녕 같은 동양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않던 시절, 외로움 때문에 고생한 사람이 비단 이혜란 씨 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이혜란 씨//

“어떤 분 하나는 한국 말이 하도 하고싶어 가지고 어떻게 했는데 그랬더니 친구들 금방 만날 기회도 없고 하니깐 변소에 들어가서 애국가를 한 세번 불렀대요. 그랬더니 좀 기분이 나아졌다고….”

다행히 이혜란 씨의 외로운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학업을 마치고 워싱톤 디씨에 있는 한 병원 약국에서 일하던 중 남편 이대섭 씨를 만난 것입니다.

//이혜란 씨//

“그 약사 한 명 같이 일했던 분이 계신데 그 분이 우연히 아마 우리 남편한테 여기 한국에서 온 약사 하나 있다고 그렇게 얘길 했었나 봐요. 그래 가지고서 우리 남편이 씨브이에스 (CVS), 그 전에 피플스 드러그 스토어 (People’s Drug Store)인데, 거기서 일했는데 거길 그만 두고 우리 약국으로 옮겨 왔어요. 처음에 만났는데, 처음에 얼마 있다가는 그러더라구요. 자기가 올해나 내년쯤은 결혼할 거래요. 그래서 전 사람이 있는 줄 알았어요. 그랬더니 혼자서 계획을 잡았던 거에요.”

이혜란 씨는1년 3백65일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남편 이대섭 씨의 정성에 반했다고 말합니다.

//이혜란 씨//

“우리 남편이 자기 말로 365일 중에 364일을 날 찾아와서요. 364일중에서 개스 (gas, 휘발유)값을 동전으로 해서 자기 있는데서 나한테 깔아도 그 만큼은 될 거라고 그러더라구요.”

남편 이대섭 씨는 연애시절을 떠올리며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입니다.

//이대섭 씨//

“피플스하고 우리 집사람이 일하던 약국하고는 똑같은 컴패니 (company, 회사)가 오운 (own, 소유)하고 있었던 건데, 제가 일하던 약국이 12시까지 열어서 마누라 되는 사람도 시내에서 일하기 때문에 내가 12시까지 여는데서 일하는 것 보다는 좀 더 시내로 와가지고 6시나 7시에 끝나는 약국으로 가고 싶어서 그 쪽으로 이제 내가 간거죠.”

“미리 와서 얼핏 보신 거 아니에요?”

“봤죠. 그러믄요.”

“얼핏 보셨을 때 굉장히 마음에 드셨으니까 가셨을 거 아니에요?”

“지금, 글쎄, 그렇다고 얘기를 해야 되겠지만은.. 하하하”

이대섭 씨는 두 사람이 학교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며, 같은 곳에서 일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하다보니 결혼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28년전 힐란델 약국을 매입해 오늘날까지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혜란 씨//

“한국 분들이 차츰 많아지기 시작하니까 한국 약국이 한 개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저희가 처음으로 약국을 열게 된 거죠. 그런데 이 약국이 있은 지는 1백년도 넘었어요. 벌써요. 내가 이혜란이니까 미국 이름을 헬렌으로 쓰고, 우리 미스터 리가 대섭이니까 데이빗이라고 했었어요. 그랬더니 병원 약국의 우리가 일하는 걸 알던 분이 꽃을 하나 사들고 딱 오셔서 간판을 쳐다보시더니 헬렌하고 데이빗에서 헬렌델 약국 잘도 지었대. 그래서 우리가 아니라고 여기 지역이 힐란델이라서 어쩌다 보니 이름이 그렇게 됐지…”

번듯한 약사 자격증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노란 피부의 동양인이다 보니 손님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고 부인 이혜란 씨는 말합니다.

//이혜란 씨//

“동양 사람이 또 키가 자그마하고 말이에요. 아무리 가운을 입고 있어도 뭔가 자기네들 보기에 시원찮아 보이고 그랬었나 봐요. 그런데 같이 일하는 보조원들이 백인이고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들이니까 사람들이 가끔씩 와서 뭐 물어보려고 그 사람한테 간다고.. 맨 처음에요. 둘이 서 있어도.. 그 사람이 나는 약사가 아니니까 이 분한테 물어보라고, 이 사람이 약사라고 그래도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하지만 오랜 세월 한 장소에서 약국을 운영하다보니 이제는 단골손님이나 동네 사람들의 가족사항까지 줄줄 꿰고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이혜란 씨는 약사지만 때로는 동네 주민들의 상담역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혜란 씨//

“어떤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이 약만 지으러 오는 게 아니라 생활에 대한 상담도 많이 해요. 어떨 때 상담을 한다고선 뒤에서 뭐 여자들이 얘기를 한다.. 내 얘기 좀 들어보라고 그러면서… 나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막 이런 얘기들을 해요. 우리 남편이 뒤에서 그런다고… 여기 처방전 바쁜데 안 들어오고 뭐하냐고 그러면 제가 외교하고있는 중이라고 그러면요. 여기가 다방마담이냐고, 다방이냐고, 무슨 외교를 하느냐고…”

한국에서 딸을 입양해온 한 미국 여성도 이혜란 씨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혜란 씨//

“딸이 하나만 자기가 낳은 딸이 있는데 한국 애 하나를 어답트 (adopt, 입양) 했어요. 입양했어요. 그런데 걔가 국민학교 2학년인가 그렇게 됐는데 엄마가 자기 언니를 낳았기 때문에 자기 언니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한 거에요. 그래서 얘가 학교에서 성적도 막 떨어지고 오줌까지 싼데요. 학교에서, 교실에서... ”

입양한 딸을 친딸과 똑같이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는 미국 엄마를 보면서 이혜란 씨는 감명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혜란 씨//

“그래서 그냥 제가 뭐라고 그랬냐 하면 애들은 그런 거에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네가 걔 학교 갔다오면 그냥 잘 갔다왔니 그렇게만 얘기하지 말고, 아~ 갔다왔구나 그러면서 쫓아와서 끌어안아 주고 팔 같은 데를 문질러 주라고 그랬어요. 사람이 터치 (touch, 만지다)하는 게 굉장히 따스하게 느껴지니까 그냥 말로만 하지 말고, 그랬더니 한 한달쯤 있다가 그 여자가 다시 왔는데 완전히 괜찮아졌대요. 그러면서 고맙다 그러면서 네가 나한테 어드바이스 (advice, 조언)를 너무 잘 해줘도 걔가 지금은 오줌도 안 싸고, 공부도 아주 올라가고, 피아노도 얼마나 잘 치는지 모른대..”

인근 노인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인 노인들에게 이혜란 씨 부부는 번역사이기도 합니다. 영어를 모르는 한인 노인들이 우편물을 들고와서 설명을 부탁하면 아무리 바빠도 모른 척 할 수가 없습니다.

//이혜란 씨//

“어저께 편지를 하나 또 가져오신 분이 이것 좀 읽어달라고 해서 읽어드렸는데

저 아파트에서 인스펙션 (inspection, 검사)이 있었대요. 뭐 로치 (roach, 바퀴벌레)가 있고 냉장고 소제하고 벽이 더럽고 마루가 뭐 어쩌고 이런 건데 이걸 다 클리어(clear, 깨끗이) 안 하면 더 앞으로 계속 못 있는다고 써있다구요. 그러니까 굉장히 중요한 거잖아요. 그런데도 이 사람은 모르고 버리려 그랬다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다 읽어드리고 한국말로 조목조목 적어드렸어요.”

이렇게 손님들과 끈끈한 정을 나누다보니 다른 곳으로 멀리 이사간 사람들도 약이 필요하면 힐란델 약국을 찾아옵니다.

//이혜란 씨//

“우리가 여기서 약국을 오래 한 28년 하니까 말이에요. 미국 사람들이 여기서 한 30분, 한 시간을, 이사를 갔어도 차를 운전해서 그 처방전을 들고 여기까지 온다는 거에요. 나는 딴 데 가서 진 약은 못 먹겠다고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가서도 내가 앞에서 약을 지었는데 먹어도 되냐고, 그리고 이걸 어떻게 먹으면 제일 적절하게 먹을 수 있겠느냐고 전화까지 걸곤 하거든요.”

이 날 약국을 찾은 한 손님은 복권 한 장을 사기 위해 30분 거리를 운전해서 왔다고 말합니다.

근처에서 30년을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갔다는 이 미국인 손님은 이 씨 부부가 늘 상냥하고 싹싹하다며, 그냥 물건만 파는 다른 약국과는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메릴랜드 랜돌프에 거주하는 김옥숙 씨 역시 집 근처에 다른 약국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10년전 처음 미국에 온 직후부터 한결같이 힐란델 약국을 찾고 있습니다.

“서로 통할 수 있는 사람한테 오느라고.. 이제 뭐 설명도 많이 듣고… 설명도 자세하게 잘 해 주시고 여러가지 좀 참고될 그런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고…”

이혜란 씨는 지난 해 그동안 틈틈히 써온 시와 수필을 모아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혜란 씨//

“내가 그냥 조금 써서 한국일보나 중앙일보에 보내면 다른 사람들 얘기가 그 사람네들이 책상에 가득 쌓여서 금방 안 내준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랬는데 내건 가면 2,3일이면 나오더라구.. 그래도 읽을만 한가보다 그래서 자신감을 갖고 더 열심히 공부하면서 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신문에 나간 것들, 안 나간 것도 있지만 모아놓은 것들을 해가지고 이번에 책을 내게 된 거에요.”

어느덧 40년이 되어가는 미국생활… 처음 낯설기만 했던 미국은 어느덧 이혜란 씨에게 삶의 터전이자 고향이 됐습니다. 딸과 아들을 각각 의사와 방송인으로 키워내고, 약국 손님들의 신뢰를 얻은 지금, 이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이혜란 씨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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