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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100년의 발자취] 한인이 최초로 설립한 윌로우스 비행학교 II


한인 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의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한인에 의해 최초로 설립된 윌로우스 비행학교에 관한 얘기 지난 주에 이어 계속해 드립니다.

노백린의 군사양성 계획과 김종림의 공군력에 대한 열망과 재력이 결실을 맺어 설립된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1920년 6월 교관과 비행기가 도착할 때까지 기초적인 군사 교련과 교양과목만 실시했습니다.

그후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1920년 6월 22일 에 첫 비행기가 도착하고 이틀 뒤 2번재 비행기가 도착함으로써 7월 5일 미주 각지에서 온 한인 2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교 기념식을 갖습니다.

이 학교는 비행술 외에도 무선통신과 비행기 수선, 그리고 영어와 민족 교육 등을 가르쳐 지략을 갖춘 비행사를 양성해 장차 독립 전쟁에 활용할 비행대로 확장하고자 했고 노백린은 한인 비행학교에 육군 군사 교육도 겸해 실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하지만1차 대전이 끝나고 전쟁 중 벼농사를 짓지 못하던 나라들이 다시 경작을 시작한데다 1920년 11월과 12월 북가주 지방에 극심한 홍수가 나서 최악의 상황을 맞게되자 한인들의 쌀 농사는 모두 파산하고 맙니다. 타격을 받은 윌로우스 비행학교도 결국 1921년 4월 중순에 장대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폐교하고 맙니다.

하지만 이 학교 출신의 여러 한인들은 후에 여러 작전들에 참가해 무공을 세웠습니다.

"학교는 폐교됐지만 이 학교 출신 박희성과 이용근은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임시정부 육군 비행 소위로 임관했고 김자중은 중국 동삼성 항공대에서 활약했으며 이초는 미국의 OSS 대원으로 제 2차 세계대전때 한반도 침투작전에 참가해 무공을 세웠습니다."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비록 설립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한국 독립운동사에 한몫을 담당했습니다.

"이 학교는 비록 설립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공군력에 의한 군사작전으로 조국의 독립을 성취하겠다는 미주 지역 독립 운동가들의 의지와 열망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한몫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다음 주에는 여성독립운동단체 여자애국단에 관한 얘기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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