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시아파와 수니파, 골 깊은 종교적 갈등


회교 이슬람은 수니파와 시아파, 두 지파로 나눠져 있습니다. 이슬람의 주류를 이루는 수니파는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지만 시아파는 주로 이란에 거주하고, 총 13억으로 추산되는 회교도들의 약 15%를 점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이슬람 두 지파인 수니파와 회교도 사이의 종교적 갈등의 골과 중동지역에서 대두하고 있는 교파간 긴장상태에 대한 파급효과를 심층 진단해 봅니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표면적으로는 구분이 어렵습니다. 이들은 모두 무하마드를 이슬람을 창시한 예언자로 믿고 있고 경전인 코란을 신봉합니다. 이들은 또 이슬람의 5가지 근간인 일상적인 기도와 자선금 기부, 성월인 라마단기간중의 단식, 성지 메카로의 순례 그리고 유일신, 알라신에 대한 믿음을 공유합니다. 그러나 이들간의 분열은 거의 1400년전, 무하마드의 사망직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누가 무하마드를 승계할 것인가가 쟁점이었습니다. 시아파들은 무하마드의 사촌인 알리를 지지했고 수니파는 가장 훌륭한 회교도를 무하마드의 승계자로 선출했습니다.

뉴욕 주립대학교의 중세기 이슬람전문가인 프랭크 피터즈 교수는 시아파들은 회교사회는 종교지도자들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고 믿는 반면 수니파는 그런 입장을 거부하고 제아무리 경건하다 해도, 무하마드를 따르는 영적인 지도자들은 단지 정치적 인물에 불과하다고 믿는다고 지적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신이 의도한 방식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수니파는 믿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회교지역사회는 무하마드 후계자를 예언자가 아니라 지역사회 지도자로 선출해왔다고 피터즈 교수는 말합니다. 지역사회가 종교와 정부 형태를 갖춘 것은 곧 신의 의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아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피터즈 교수는 지적합니다. 시아파들은 지역사회는 어디까지나 영적인 존재여야 한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국가 지도부가 있고 이들은 정치적 권력을 갖고 있지만 지역사회를 관장하는 존재는 최고 성직자라는 것입니다.

이곳 워싱턴에 있는 아메리칸대학교의 이슬람연구 전문가이자 ‘이슬람으로의 여정 (A Journey in Islam)’의 저자인 아크바르 아메드씨는 페르시아가 이슬람으로 개종했을 때 이들은 무하마드의 사촌인 ‘알리’와 그의 아들 ‘후세인’을 성스러운 존재로 받아들였다고 지적합니다. 후세인은 이라크 도시 카발라에서 수니파에 의해 추종자들과 함께 암살당했고 시아파들은 당시의 후세인의 고통에 강한 공감대를 갖고 있다고 아메드씨는 지적합니다.

불의를 당했고 순교자의 죽음이었으며 후세인 암살과 관련해 권위에 도전했다는 자부심의 측면에서 시아파들은 자존심과 공정성, 정의감 또 굳은 신앙심에 기초한 일종의 매우 배타적인 이념을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아메드 교수는 시아파 성직자들은 수니파 종교적 기득권층에 비해 훨씬 중앙 집권적이고 서열을 중요시한다고 지적합니다.

시아파 성직자들은 공부를 많이한 사람들로 오랜 세월 학문에 정진하고 책과 기사들을 집필하면서 경력을 쌓아갈 때 정해진 서열을 올라가면서 사회에서 더욱 존경을 받게 됩니다. 교계 서열의 최정상에 오를 때에는 아야톨라로 불리게 되는데 이들 아야톨라들은 시아파사회에서 매우 특별한 위상을 점한다고 아메드 교수는 지적합니다. 이들은 지혜와 고도의 학문적 경지로 추앙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니파 국가들에서는 지식인계층이 덜 조직화되어 있고 과거 수세기동안 국가에 종속되어 왔지만 이란에서는 성직자들은 국가통치자들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해왔다고 뉴욕주립대학교의 프랭크 피터즈씨는 지적합니다.

프랭크 교수는 시아파사회에서는 성직자들 사이에 엄연한 서열이 정해져 있어 기독교, 특히 카톨릭교회의 대주교들과 비견될 수 있는 계급이 곧 아야톨라들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역사적으로 시아파와 수니파들은 늘 마찰을 빚어왔다고 말합니다. 시아파들은 수니파들에 의해 부당하게 학대받는다고 불평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시간대학교의 정치학자인 후안 콜 교수는 많은 지역에서 수니파와 시아파는 평화적으로 공존한다고 지적하고 이라크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의 상쟁은 종교적 현안이 아니라 권력을 둘러싼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예를 들어, 20세기 전반에 걸쳐 지금처럼 수니파와 시아파가 폭력 충돌을 빚은 일은 거의 없었다고 콜 교수는 지적합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후 이라크 정치인들과 정치세력들이 서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종교계를 동원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종파간 폭력사태가 촉발되었다는 것입니다.

콜 교수는 수니파와 시아파들은 사담 후세인 이후시대에 서로 반대되는 정치적 목표들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라크의 수니파 아랍계들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늘 지배층으로 군림했고 국가 구성의 핵심이었다고 콜 교수는 지적합니다. 이들은 이라크에서 시아파의 집권이 합법적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니파들은 시아파들이 실제로 주류세력이 될 수 없다고 믿고 있고, 시아파들은 미국에 의해 권좌에 올랐으며 이란에 의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시아파들은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상을 반기고 있고 수니파 아랍계 무장세력이 패배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콜 교수는 말합니다.

이곳 워싱턴에 있는 중동연구정보계획의 크리스 토엔싱씨를 포함해 일부 분석가들은 이란의 지역적 야망에 대한 두려움이 이미 일부 페르샤만 연안과 그 밖의 다른 국가들에서 종파간 긴장을 촉발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아파와 수니파들은 공통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있을 때에는 단합하곤 한다고 토엔싱씨는 지적합니다.

지난해 여름 시아파 민병대인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군을 상대했던 레바논전쟁이 그 좋은 예라는 것입니다. 전쟁초기에는 이슬람 수니파 아랍인 종주국들인 요르단과 이집트, 그리고 사우디 아라비아가 헤즈볼라 때문에 레바논이 참담한 피해를 당했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고 토엔싱씨는 말합니다. 하지만 수니파가 주류인 아랍세계를 포함해 회교권 전체를 통해 모든 회교도들은 힘을 합해 헤즈볼라를 지원했다고 토엔싱씨는 지적합니다.

대부분 분석가들은 이런 회교도들의 결속은 지역전 종파간 긴장을 억누를 수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회교도들은 시아파나 수니파를 막론하고 공통의 적이 있을 때에는 서로 결속을 도모하고 위협이 사라질 때에는 다시 분열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