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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 100년의 발자취]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공립협회 건물 파괴


한인 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의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있습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즉 상항에서는 대지진이 발생합니다. 샌프란시스코는 그당시 서부에서는 제일 큰 도시로 발전했었는데 1906년 4월 18일 새벽에 엄청난 대지진이 발생해 약 3천명이 사망하고22만 5천 명의 이재민이 난 굉장히 큰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상항 시는 지진의 피해를 축소해 사망자가 총 4백명 내지5백명이라고 발표했는데 일부 한인 기록도 당시 총 인명 피해를 4백명 정도로 잘못 기술 하고 있습니다. 이 지진으로 다행히 한국인의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당시 새로 발족한 공립협회 건물이 파괴되어서 협회 사무실과 기관지인 공립신보는 SF Bay건너편의 Oakland로 임시로 이주해 갔습니다. 40여명의 한인들도 Oakland로 피신해 교회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보호조약을 강제로 체결함으로써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 통치를 통해 당시 실질적으로 한국을 통치하고 있던 일본은 SF주재 일본 영사관이 SF한인을 구제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에서 일본 영사가 한국정부의 책임과 권리를 수행한다는 선례를 세우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그래서 일본 영사는 이 지진으로 한인이 24명이 사망했고 부상자가 80명이라는 허위 보고를 한국의 일본 통감부에 하게 됩니다. 통감부는 이 허위 보고를 토대로 한국 정부로부터 1,900불을 받아서 일본 영사가 SF한인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일제가 한국 정부를 대리해서 해외 한인들도 관리한다는 것이 입증되고 을사보호조약을 실질적으로 해외의 한인들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같은 음모는 무산되고 맙니다.

이 돈을 공립협회에다 주기로 하니까 공립협회에서는 일본 영사를 통해서는 돈을 안받겠다. 왜냐하면 이 돈을 받으면 을사 보호조약을 재미한인들이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 돈을 안받겠다 해서 받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이 돈을 미국 선교사를 통해 전해 복구비로 사용했는데 일본은 이 돈을 자신들이 한인들에게 나누어주면 미국내 한인들도 자기들이 통치한다는 것을 증명하려했지만 결국 공립협회에서 무산시키는 결과가 됐고 동시에 한인들이 일본에 대해 더 적개심을 갖게되는 그래서 나중에 독립운동을 하게된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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