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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실향민들, 북한서 가족 상봉


미국 내 북한 출신 한인들이 최근 북한을 방문해 고향에 두고온 가족들과 만났습니다. 지난주 로스엔젤레스 민주평통의 평양 방문단과 함께 북한을 찾은 이들 실향민들은 길게는 60여년 가까이 헤어졌던 가족과 만나,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혈육의 정을 나눴습니다. 짧은 만남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미국에 돌아온 이산가족 방문단의 이야기를 김근삼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북한을 떠나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가족 친지들은 항상 그리움과 아픔으로 남아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단체인 민주평통 미국 로스엔젤레스 지부는 미주 한인 단체로는 처음으로 이산가족 방북단을 구성하고, 지난주 북한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방북단에는 당초 신청자 80명 중 북한 정부의 승인을 받은 6명이 참가했습니다.

올해 76살인 이석규 씨는 57년만에 평양을 방문해 북한에 두고온 동생들과 만났습니다. 어린 동생들은 이제 육순의 노인이 돼 형이 묵고 있는 평양 고려호텔을 찾았습니다.

이석규: “이번에 만난 사람은 그 당시에3살이었던 막내와 6살, 9살 동생입니다. 하도 어렸을 때라 얼굴을 봐서는 모르겠고, 9살 남동생이 눈에 흉터가 있었는데, 확인하기 위해서 만져보니까 흉터가 그대로 있더라구요”

이석규 씨는 고향이 순안이지만, 가족과 떨어져 평양에서 공부하다가 1.4후퇴 때 유엔군과 함께 남한으로 왔습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석규 씨는 동생을 만나 감개무량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헤어져 있어서 그런지 함께 나눌 얘기는 별로 없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습니다.

이석규: “다들 커서 노인이 돼서 만나니까 감개무량하죠. 그런데 서로 간에 별 얘기는 없었습니다. 동생들도 저를 잘 모르고, 저도 걔들을 잘 모르니까요.”

미국에서 목사가 된 박응태 씨는 평양과 원산에서 가족 20명을 만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1990년도에 개인적으로 북한을 방문했던 박응태 씨는 평양에 사는 여동생을 17년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박응태: “평양에 있는 우리 여동생인 박화숙, 바로 제 밑에 동생을 17년만에 만났고, 조카들도 만났는데 거기에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9살, 10살의 어린 조카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족 10명과 고려호텔에서 19일 저녁 6시15분쯤에 만났고, 저녁식사도 같이 하고 대화도 많이 나누고 밤 11시30분에야 헤어졌습니다.”

황해도 안악이 고향인 박응태 씨도 1.4후퇴 때 가족들과 헤어졌습니다. 당시 9살이었던 박응태 씨는 전쟁 고아로 남쪽에 왔고, 이제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박응태 씨는 하루 뒤에 강원도 원산에 가서 동생 2명과 조카들을 만나 하룻밤을 함께 보냈습니다.

이밖에 이번 방북단에서 최고령인 91살의 오태주 씨와 전충일 씨, 석명희 씨도 가족상봉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7박8일 간의 짧은 일정, 그 중에서도 가족과 보낸 시간은 얼마 안되기 때문에 아쉬움도 큽니다.

이석규 씨는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평양까지 갔는데도, 여행이 자유롭지 못해서 50리 떨어진 곳의 부모님 산소를 가보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이석규: “이번에 제일 아쉬운 점은 부모님 산소를 못가본 겁니다. 저는 원래 부모님 산소를 찾아뵙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한 50리 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인데도 못가고 그저 평양 호텔에서 동생들만 보고 왔습니다”

이석규 씨는 북한 여행이 자유로워지고, 순안의 옛 집과 부모님 산소를 방문할 수 있게 되면 그 때 다시 한 번 북한을 찾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운 혈육들과 만날 날을 기약하지 못하고 헤어져야 한다는 것은 이산가족들에게 가장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다행히 이번 첫 방문을 계기로 북한 정부에서도 미국에 사는 이산가족 방북을 정례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민주평통 로스엔젤레스 지부의 신남호 회장은 북한의 해외동포원호위원회와 지속적인 교류사업을 벌이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신 회장에 따르면 양측은 문화교류와 함께 가족방문을 연례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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