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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 100년의 발자취] 일본여권으로 도미한 유학생 - 해방 후 이승만 정권 요직 인사 많아


한인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의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시간입니다. 지난 주에는 여권도 없이 대한 국민회의 보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신도망명 유학생 얘기를 전해 드렸는데요? 오늘은1921년부터 1940년까지 일본 총독부 여권을 가지고 도미한 유학생들에 관한 얘기가 되겠습니다.

일본여권을 소지한 유학생들은 미국에 건너와서 공부를 계속하는 학생들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들은 취학 성적이 아주 좋아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15%나 되었습니다.

"일본 여권을 소지한 유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65%에 달합니다. 이들은 일본여권을 가지고 유학왔기 때문에 주로 공부를 마치고 대부분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이들은 미국 영주권이 허락되지 않아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거나 체류를 하기 위해서는 계속 공부를 해야했습니다.

이들 유학생 중에는 재미 한인 사회 발전에 기여한 사람은 별로 없는데 그 이유는 공부를 마치면 일본 통치 하의 조국으로 귀환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조국의 독립 운동에 참여하기도 어려웠고 초기 유학생이나 신도 유학생들과도 별로 교류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신도유학생들과 초기 유학생들이 만든 독립운동 단체는 그다지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 대부분 공부만 하고 돌아갔는데..."

이들 가운데 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미국에 있던 사람들은 통역 등으로 미군에 종사한 사람들도 있고 조국 해방 후에는 미 군사 정권을 따라 귀국해 미 군정에 참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본 여권으로 유학와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백낙준, 김활란, 임영신, 임병직, 이기붕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가 해방 후 당시 이승만 대통령 밑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됩니다. 그후 해방이 되면서 한국 여권을 소지하고 미국으로 유학온 학생들이 늘어납니다. 1964년까지 3천 2백 78명으로 집계되는데 이들 가운데는 5%만 학업을 마치고 귀국했고 나머지는 미국에 남아서 영주권과 시민권을 받아서 재미 한인의 일원이 됐습니다.

"이분들은 대개가 미국에서 공부한 뒤 계속 남아서 이사람들이 현재 미국에 있는 재미 한인 사회의 원로격이 되는 것입니다."

1965년 새 이민법이 발효되면서 이들 유학생 출신 한인이 가족을 초청해 재미 한인 사회의 인구는 기하 급수로 증가합니다.

한국정부에서 실시하는 유학시험을 치르고 정식으로 유학 온 유학생과 방문 비자로 도미해 현지에서 학생비자로 변경한 뒤 유학생이 되는 경우도 많은데 학업을 마친 뒤에도 여러 경로를 통해 영주권을 취득하고 시민권을 얻은 뒤 가족을 초청함으로써 유학생 출신 가족이 많아지게 됐습니다. 다음 주에는 초기 미주 한인의 생활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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