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font color = 3300ff>[미주한인 100년의 발자취]</font> 한인 유학생 - 일제 강점기에 여권없이 미국 망명


한인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의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시간입니다. 지난 주 사진 신부와 하와이 이민 얘기에 이어서 오늘은 신도 유학생에 관한 얘개를 전해 드립니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강제로 나라를 잃은 우국지사 약 3천명이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이들 중에 1914년부터 18년까지 4백 51명의 대한인이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 여권도 없이 망명 유학자격으로 도미했는데 이들은 초기 유학생과 구분해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게 됩니다.

"그당시 샌프란시스코에 한국에서 배가 도착하면 대한국민회 직원들이 나가서 이민관에게.... 당시 한달 생활비가 약 30달러 정도였는데 30달러 정도를 이민관에게 보여주면 이민관들이 입국을 시켰는데 이사람들을 초창기에 미국으로 유학 온 안창호, 이승만, 이대위 등과 구분해서 신도망명 유학생이라고 불렀습니다."

신도 유학생의 대표적 인물로는 1960년대 현재의 한인 사회의 초석이 되는 한인회를 세운 김호와 그의 평생 동지인 김형순, 이들과 손잡고 한인회와 남가주학원을 설립한 송철, 그리고 귀국해 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장리욱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신도유학생들은 국민회가 보증을 서서 미국에 입국하게 됩니다. 국민회가 신도유학생들을 보증해서 미국에 입국시키게 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913년에 하와이로 이민갔던 한인들이 캘리포니아로 다시 이주해 와서... 일본 총영사가 미국 국무부에 항의를 했습니다."

일본 영사가 추방당한 한인을 심방하고 그 사건을 미국 정부에 교섭해 배상을 받아주겠다고 간섭하려는 것을 당사자들이 거절하고 국민회에 보고했던 것입니다.

그 때 국민회 북미 총회장이었던 이대위 목사가 재미 한인에 관한 모든 사항은 한인 사회에 교섭하기를 바란다는 요지의 전문을 미국 국무장관에게 보냈습니다.

"그 당시에 총회장인 이대위 목사가 남가주 Hemit에서 쫓겨난 한국인 12명은 한일합방이 되기전에 미국으로 이주해 온 대한인인데 어찌 일본 사람들이 간섭하느냐...

그래서 Bryan 국무장관이 그 전보를 받고 '앞으로 대한인은 일본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대한인으로 취급할 것이며 앞으로는 국민회에 모든 것을 위임하겠다' 이렇게 다시 전보를 보내왔습니다."

그당시 미국에서는 벌써 대한국민회가 조직돼서 독립운동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신도 망명 유학생들은 애국 정신이 매우 투철해 조국 독립 운동에 있어 아주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다음 주 이 시간에는 일본 여권을 소지하고 미국에 유학온 유학생들의 얘기가 계속되겠습니다.

오디오 듣기를 클릭하세요.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