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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 = 3300ff>[나의 삶, 나의 보람]</font> 이현곤 씨 - 태권도 사범 30여년: '미국 상가에서 시범 보이다 쫓겨나기도 했지만...'


버지니아주 헌던에 위치한 ‘그랜드 매스터 H.K.LEE 태권도’, 학생들의 우렁찬 기합소리가 도장 안에 울려 퍼집니다. 사범의 구령에 맞춰 열심히 동작을 연습하는 수련생들 가운데는 네살 어린 아이부터 마흔살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도장을 운영하는 한인 이현곤 씨, 검은 띠 9단의 그랜드 매스터, 대 사범입니다.

이현곤 씨의 태권도 인생은 거의 50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가 태권도를 시작한 게 1958년도에 시작을 했어요. 사실 부끄러운 얘긴데요. 그 때 당시에는 해방 지나고, 한국전쟁 지나고 한국정세가 별로 좋지가 못했었어요. 그러다보니까 남들한테 맞지 않으려고…”

열두살 나이에 호신술로 배우기 시작한 태권도는 결국 이 씨와 평생을 함께 하게 됩니다. 이현곤 씨는 한국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일했지만 늘 사회에서 소외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합니다.

“저 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태권도 사범들을 보는 눈이 별로 그렇게 거룩하지 않았거든요.그러다가 보니까 기회가 와서 미국에서, ‘기회의 나라’에서 내 나래를 활짝 펴보겠다는 그런 착상으로 미국에 오게 된 겁니다.”

이현곤 씨는 1978년 선배가 운영하던 도장을 인수하게 됩니다. 당시는 동양 무술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높을 때였습니다. 한 때 침체기를 겪기도 하지만 태권도는 미국 문화와 미국인들의 정서에 맞는 모습으로 변모해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됩니다. 현재 미국에서 태권도의 인기는 일본의 가라데나 중국의 쿵후를 능가하고 있습니다.

“쿵후는 너무 복잡하고 가라데는 너무 단순하고 그런데 태권도는 미국 사람들이 아주 받아들이기 쉬운 몸놀림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였구요.”

어느 정도 미국에서 기반을 잡은 이현곤 씨는 아랫 동생 여섯명을 모두 미국으로 불러 들입니다. 이들 가운데 여동생을 제외한 남동생 다섯명은 미국 동남부 노스 캐롤라이나주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 가족 여섯 형제가 모두 태권도 사범인 것입니다.

이현곤 씨는 동생들을 미국으로 초청하면서 태권도를 배워오라고 권했습니다.

“미국에 있는 모든 층의 사람들이 태권도 사범 하면 존경심을 갖고 대하더란 말이에요. 가까워질려고 이 사람들이 서로 친절하려고 그렇게 노력들을 하고.. 그런 걸 봤을 때 동생들이 태권도를 배워오면 미국사회에 적응하는데 아주 쉽지 않겠는가 하는 그런 생각으로 배워오라고 그랬어요.”

이현곤 씨의 아랫 동생들 가운데 한 명인 이준혁 씨는 형님을 돕겠다는 생각에서 배워온 태권도가 천직이 됐다고 말합니다.

“미국에 오기 위해서 태권도를 저희들이 집중해서 수련을 했고.. 형님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그런 생각이 많았지요. 지금은 제가 제일 잘하는 일이 됐어요.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여러 군데 많이 태권도 보급하는데 제 나름대로 공부 많이 하고 있네요.”

이현곤 씨가 운영하는 ‘그랜드 매스터 H.K.Lee 태권도’ 는 지하 1층과 지상 2층을 갖춘 3층 건물 전체를 쓰고 있습니다.

처음 운영하던 도장은 건물을 임대해 사용했지만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두 차례 건물을 구입해 옮기게 됩니다. 이현곤 씨는 이 과정에서 무심코 베푼 친절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경험을 합니다.

“그 동네의 할머니 한 분이 유대교 할머니인데,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셨다구요. 그 할머니가 밖에서 어떤 때는 비를 맞고 고생을 하시는 걸 볼 수가 있잖아요. 제가 도장이 코너에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한테 들어와 계시라고… 버스가 오는 거 보이니까 창문으로… 일부러 끌고 들어와서 앉히고 그랬었어요.”

이렇게 이현곤 씨와 인연을 맺은 할머니가 은퇴하면서 운영하던 가구점 건물을 흔쾌히 이 씨에게 넘긴 것입니다.

이 할머니에게서 인수한 건물에서 21년 동안 도장을 운영한 이현곤 씨는 수련생들이 늘어나면서 주차장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지난 2004년 현재의 건물로 다시 한번 이사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옛날에 맺은 인연의 덕을 보게 됩니다.

“주인을 컨택(연락) 을 했는데 주인이 저를 그렇게 반갑게 받아요. 내가 누구라 그러니까… 30년전에 저한테 운동을 했던 학생의 아버진데.. 자기 아들이 나 때문에 성격이 변화가 되가지고 지금 보잉 회사에서 중역을 하고 있노라고..”

이현곤 씨 제자의 아버지인 건물 주인은 늘 이 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며 시세보다 훨씬 싼 값에 건물을 넘겼습니다.

“베풀고 살고 내가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그러면서 생활하다 보니까 이런 복이 또 나한테 돌아오는 구나.”

이같은 이 씨의 생활방식은 수련생들의 부모에게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덟살난 아들의 태권도 연습을 지켜보고 있던 마빅 씨는 이현곤 씨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아이들의 발전을 위해 애쓰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빅 씨는 사범이나 선생들이 수련생 한명 한명의 이름을 알고 아이들이 그 다음 단계에 오를 수 있도록 부추키고 밀어주는 것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마빅 씨는 또한 태권도는 신체를 단련시킬 뿐 아니라 부모와 어른에 대한 공경심을 가르치기 때문에 마음에 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랜드 매스터 H.K. Lee 태권도는 수련장 세 개 뿐만 아니라 부모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이 학교 숙제를 할 수 있는 학습실, 다른 아이들과 놀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오락실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부부가 모두 일하는 가정의 자녀를 위해 버스와 밴 등을 이용해 학교에서 아이들을 데려오는 등 교통편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현곤 씨는 그러나 미국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확장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말합니다.

"처음에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시범을 하고 다녔어요. 제가 대화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은 없고 몸으로 보이고 다닌 거죠. 더러는 쇼핑센터 같은데 가서 때리고 부수고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놀래 가지고 가라고 그러죠. 시범하다가 쫓겨도 나고… 또 옛날에는 지역의 불리 (동네 깡패)들이 가끔 와가지고 챌린지(도전)도 하고 그랬어요.”

이현곤 씨는 미국인인 부인 게일 씨 역시 태권도를 통해서 만났습니다.

“도장에서 운동하러 왔었는데 이 사람이 성격이 그렇게 좋아요. 날 그렇게 편하게 해주더라구요. 처음부터 마음이 끌려가지고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운동은 내가 따로 가르쳐줄 테니까 나하고 같이 데이트를 하자고 제가 그렇게…”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섰던 이현곤 씨는 게일 씨를 설득해 만난 지 3년 만에 결혼에 골인하는데 성공합니다. 이현곤 씨는 게일 씨를 만나기 전 한인 부모들이 태권도 사범을 사윗감으로 치 않게 여기는 경우를 겪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태권도 사범이었기 때문에 딸자녀를 가진 분들이 거부하는 사례들이 제법 있었거든요. 그런 걸 겪으면서 언젠가는 모든 딸자식을 가진 한국 부형들이 태권도 사범이 아니면 결혼을 안 시키겠다라는 그런 생각을 가질 때까지 내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나 발전을 도모하고 태권도 발전을 도모해서 그런 계기를 만들겠다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살아왔던 거 하구요.”

그런 각오로 열심히 살다보니 오늘에 이르게 됐다는 이현곤 씨, 지금까지 이 씨가 배출한 제자들 만도 1만여명에 달합니다. 버지니아주 헌던시 부시장을 지냈으며 현재 퍼슬빌시 경찰국장인 대럴 스미스 씨는 나이 차이가 얼마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현곤 씨를 두번째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르고 있습니다.

스미스 경찰국장은 젊은 시절 무절제한 생활을 하던 중 이현곤 사범과 태권도를 알게 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습니다. 스미스 경찰국장은 이현곤 사범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라며 자신이 부모님 외에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스미스 경찰국장은 지난 14일에 열린 이현곤 씨의 회갑연에도 참석해 축사를 했습니다. 가족과 제자들이 정성을 모아 마련한 회갑연에서 이 씨는 50년 태권도 인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저를 그냥 자기 친 부모같이, 안 그러면 자기 선생으로서 예우를 할 때 어떻게 고마운 지 모르겠어요. 자부심을 갖게되고.. 많은 제자들이 공공연한 장소에서 저를 세컨드 파더(제 2의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내 위치가 격상되다가 보니까 그거에 대해 느끼는 보람, 참 태권도 사범이기 때문에 느끼는 보람도 큽니다.”

-나의 삶 나의 보람, 이현곤 씨 편 얘기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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