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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 = 3300ff>[미주한인 100년의 발자취]</font> 1893~1903 조선 인삼장사들의 미국유입 - 미국내 한국 상인의 효시


한인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의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시간입니다.

한인 사회가 형성되기 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 있는데요… 지난 주에는 조선의 개화파 유학생들이 미국에 건너온 얘기까지 해드렸죠?

당시 조선인들 가운데 유학생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중국인 노동자들 틈에 섞여 도미한 조선의 인삼장사들이었습니다.

"그당시만해도 벌써 중국사람들은 미국에 많이 와 있었죠. 하와이에도 있고 미국 본토 주로 서부에 중국 사회가 형성됐었는데 중국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고려인삼입니다. 그래서 고려 인삼장사가 많이 왔는데 1893년부터 1903년까지 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때까지 약 100명이 왔습니다. 그때 입국 기록을 보면 이들은 Ginseng Seller, Druggist (약장사) 로 쓰고 미국에 들어왔는데 이들은 중국과 가까운 신의주 사람들로 당시 한국 여권이 없었기 때문에 중국으로 가서 중국 노동자 틈에 끼어서 중국사람으로 가장해 입국한 사람들입니다. ''

이들 조선인들은 미국에 와서 중국사람을 상대로 인삼을 팔았는데 당시 중국 사람들이 고려인삼을 특히 좋아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보기 힘든 차림으로 장사를 하고 다녔습니다.

"이 사람들이 파는 인삼이 고려 인삼임을 돋보이기 위해서 전통 한복을 입고 짚신을 신고 머리에는 상투를 틀고 중국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장사를 했습니다. 이들 인삼장사들이 바로 미국내 한국 상인들의 효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인삼 장사는 미국에서 현재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든 상공인의 시초라는 면에서 인삼장사들의 공로는 굉장히 크다고 볼수 있는데 이들은 가족을 미국으로 데려오지는 못했습니다.

"불행한 것은 이들이 가족을 데려오지 못했고 중국 노동자들 틈에 끼어 입국한 홀애비들이어서 후손들이 없었습니다. 후손들이 없이 모두 그냥 이름도 없이 사라진 것이 안타깝습니다."

당시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인은 4만 5천명 정도였습니다.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 리버사이드, 새크라멘토 스턱톤 등지에 거주하는 중국인을 상대로 이들 조선인들은 인삼 장사를 했고 인삼이 떨어지면 배편으로 다시 인삼을 가져와 이른바 보따리 무역 장사를 계속했습니다.

이들은 후손이 없어 지금까지 기록에 남은 것도 없고 기록이라고는 단지 중국 기록에 남아있는 것 뿐입니다. 다음 주에는 하와이 초기 농장 이민과 사진 신부에 관한 얘기가 이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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