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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 = 3300ff>[미주한인 100년의 발자취]</font> 1902년, 정식이민의 시작


한인이민사를 연구하시는 김지수 씨를 모시고 100년이 넘는 한인들이 미주 이민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한인들이 미주에 이민해 한인 사회가 형성되기 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한인사절단 11명이 처음으로 미국 땅을 처음 밟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는 얘기 지난 주에 전해드렸는데요… 이들은 기차로 대륙횡단을 해서 뉴욕으로 가 당시에는 뉴욕에 체류하던 체스터 아서 미국 대통령을 만나게됩니다.

"이분들이 뉴욕까지 가서 당시 맨하탄에 있는 어느 호텔에서 미국 대통령한데 인사를 드리는데 당시 조선에서 신하가 왕에게 인사를 드릴때 하는 식으로 사절단이 궁중의상을 곱게 차려입고 신하가 왕에게 인사하는 것처럼 대통령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 대통령이 아주 당황했다고 그래요."

궁중복을 입고 미국 대통령께 큰 절을 올렸다니 대통령이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하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그같은 광경들이 미국 신문들에 대서특필되기도 했습니다. 조선사람들이 처음으로 미국 땅에 와서 대통령한테 인사를 드리는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이들이 워싱턴 방문 후 다음해 5월에 미국 군함 투렌톤에 탑승해 귀국함으로써 한국과 미국의 공식적인 교류가 시작되는거죠. 하지만 당시 조선 사람들의 본격적인 미국 이민이 시작되기 앞서서 조선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납니다. 결국 실패를 하게됨에 따라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개화파 대부분이 망명이나 유학길에 오르게 됩니다.

"한국에서 그때 구 한말에 수구파와 개화파가 있었는데 그 개화파가 1884년에 갑신정변을 일으키죠. ... 그 사람들이 미국에 온 첫 망명 유학생들입니다."

1884년 도에 유학온 대부분 개화파들인 이들 유학생들 가운데는 유길준과 서재필, 조광범, 박영효등이 포합됩니다. 그후 1888년부터 윤치호와 김규식 신성구가 유학을 오게됩니다. 도꾜에 유학중이던 고종의 아들 의화군, 1902년에는 안창호 부부와 이대위, 이승만, 박용만 등 유명인들이 1905년까지 유학생으로 미국 땅을 밟습니다.

"그 당시 1905년도에 을사보호조약을 맺어서 한국이 외교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그때까지 한 60명이 미국으로 건너와 공부했고... 대부분 미국에 체류해서 한국 독립운동의 1세대가 됩니다."

그후 1902년도에 정식 이민이 시작됩니다. 1905년까지 7천 2백 26명이 이민 길에 오릅니다. 그 때 이들 이민자가 맨 처음 도착한 곳은 하와이였습니다.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 이민으로 온 것이 1903년부터 1905년까지였는데 이민자 수는 7226명으로.... 가족이민도 어느 정도 왔다는 얘기죠."

이들이 미국에 도착함으로써 현재 미주한인 사회를 형성하는 씨가 됩니다.

다음 주에는 한인 이민이 시작되기 앞서 그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중국인들에게 인기를 모았던 조선의 명물 인삼을 팔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 조선인 인삼장사에 관한 얘기 계속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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