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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영화관에서 감상하는 오페라' - 첨단기술 타고 대중에 접근


안녕하세요? 미국내 문화계 소식을 전해드리는 ‘문화의향기,’ 부지영입니다. 오늘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이 이번 시즌부터 새로 시도하고 있는 ‘Opera Goes to the Movies (영화관에서 감상하는 오페라)’ 사업을 소개해 드립니다.

오페라 하면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일부 특별한 사람들 만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몇백 달러에 달하는 입장권 가격이 큰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이구요. 거의 3시간 동안 정장차림으로 귀에 익숙치않은 고전음악을 들으며 우아하게 앉아있어야 하는 것도 큰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 8월 피터 겔브 씨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총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메트는 일반 대중과 오페라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여러가지 과감한 전략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9월 25일에는 오페라 역사상 획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메트가 시즌 개막작인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뉴욕 맨하탄의 타임스 스퀘어에 있는 건물 전광판을 통해 실시간 중계한 것입니다.

주변 교통이 차단된 가운데 뉴욕 시민들은 마치 피크닉을 하듯 간이의자를 들고 나와 세계 최정상급 오페라를 무료로 감상하는 기회를 즐겼습니다. 피터 겔브 총감독은 이번 타임즈 스퀘어 생중계를 가리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주류사회 문화와 현대인들의 생활에 연계되고 청중기반을 넓히기 위해 벌이는 노력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올 시즌에 공연하는 오페라 22편 가운데 6편을 골라 인공위성을 통해 전세계 1백여 극장에서 실시간으로 동시상영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첫번째로 지난 12월말에는 모짜르트의 ‘마술피리’가 상영됐는데요. 특히 마술피리는 어린이들을 겨냥해 독일어 대사를 영어로 바꿨을 뿐만 아니라 2시간이 넘는 공연시간을 1시간 30분으로 다듬었습니다. 이 마술피리 공연은 예매가 시작된 후 얼마되지 않아 매진되는 등 매우 큰 인기를 끌어서 며칠 뒤에 재상영되기도 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이같은 노력은 가만히 앉아서 관객을 기다릴 수 만은 없다는 다급함에서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보통 줄여서 메트라고 불리우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지난 1880년에 설립됐는데요. 미국에서 가장 큰 고전음악 공연장일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영국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와 함께 세계 정상의 오페라 극장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메트는 한 해 2백40편의 오페라를 상연하는데요. 고전음악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떨어지면서 메트의 평균 객석 점유율은 지난 2001년 이후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겔브 총감독이 취임한 후 이번 시즌부터 관객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부 음악팬들은 오페라를 영화관에 현장중계하는 것은 고전음악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반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술피리’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일반 대중의 호응도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지난달 24일에 상영된 ‘세빌리아의 이발사’도 큰 인기였습니다. 워싱톤 지역에서도 몇몇 극장에서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실시간 상영됐는데요. 객석을 꽉 매운 관객들이 팝콘을 씹으며 오페라를 감상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날 극장에 온 관객들은 영화관에서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다니 너무나 멋진 일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버지니아주 알링톤에 거주하는 마크 펜킨 씨는 카메라의 앵글이나 클로즈업에 따라 다른 각도에서 무대를 볼 수 있는 것이 흥미롭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음향이 실제 오페라 극장에서 듣는 것 보다는 못하고 또 카메라가 가수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 무대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놓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또다른 관객 역시 음질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이라고 지적했지만 뉴욕까지 갈 것 없이 워싱톤에서 메트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 만으로도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메트는 또 마치 야구중계 처럼 휴식시간에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풍경도 보여줍니다.

이날 ‘세빌리아의 이발사’ 공연 도중 막간 휴식시간에는 무대 뒤에서 주인공 피가로 역을 맡은 피터 마테이와의 인터뷰가 벌어지는 장면이 그대로 극장화면을 통해 중계됐습니다.

하지만 실시간 중계이니 만큼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장면이 바뀔 때 카메라가 흔들리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고 관객들이 지적했듯 오케스트라 연주도 오페라 극장에서 듣는 것 만큼 웅장하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워싱톤 지역의 한 극장에서는 기술적인 문제로 화면만 나오고 소리는 들리지 않아 관객들이 환불을 요구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첨단기술을 이용해 대중 속으로 과감하게 파고 들어가려는 메트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인데요. 메트는 거리 상영과 영화관 생중계 외에도 위성 라디오 중계, 인터넷 서비스 등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오페라 팬들도 호암아트홀 등을 통해 실시간은 아니지만 녹화를 통해 메트의 오페라 공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문화의향기’, 이번에는 미국의 신간서적을 소개해 드립니다. 아프리카 시에라 리온의 내전 당시 정부군 병사로 전투에 참가했던 한 소년의 얘기가 미국인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시에라 리온의 소년 병사 출신으로 현재 미국 뉴욕시에 거주하고 있는 이스마엘 베아 씨는 ‘A Long Way Gone: Memoirs of a Child Soldier , ‘소년 병사의 회고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자서전 ‘멀리 간 길’를 얼마 전에 발표했는데요. 현재 이 책은 미국의 주요 베스트셀러 순위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군, 또는 반군병사로 전쟁에 나가 AK 소총을 휘두르는 어린이 병사의 수는 전세계적으로 3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스마엘 베아 씨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그동안 언론인들의 보도를 통해 어린이 병사에 관한 사실이 알려졌지만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일을 바탕으로 한 책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베아 씨의 회고록은 실제 전투에 나갔던 소년 병사의 관점에서 전쟁이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평범한 10대 소년이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병사가 될 수 있었는지, 또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올해 26살인 저자 이스마엘 베아 씨는 시에라 리온을 떠나온 지 거의 10년이 됐지만 아직도 전쟁에 관한 악몽에 시달린다고 말합니다.

베아 씨는 지금도 자신이 직접 누군가에게 해를 가하거나 다른 사람이 끔찍한 행위를 저지르는 장면이 꿈에 나타난다고 말했습니다. 베아 씨는 과거 소년 병사로 전투에 참가했을 때는 그같은 일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베아 씨는 지난 1991년에 발발한 시에라 리온 내전의 와중에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었습니다. 당시 12살이었던 베아 씨는 미국의 랩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베아 씨는 친구들과 함께 이웃 마을에서 벌어지는 장기자랑 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가족과 헤어지게 됩니다. 베아 씨는 나중에 부모를 비롯한 나머지 가족이 모두 반군의 습격으로 살해된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후 반군에 밀린 시에라 리온 정부군이 병사 수를 채우기 위해 어린 소년들까지 징집하면서 베아 씨도 전쟁에 휩쓸리게 됩니다. 베아 씨는 회고록에서 ‘브라운-브라운’ 이라고 불리우는 코케인과 탄약을 섞은 가루를 흡입했고 대마초를 물고 살았으며 잔인한 살해장면이 나오는 헐리우드 영화를 매일밤 감상했다고 말했습니다. 늘 마약에 절어있는 상태에서 전투에 나갔고 아무런 거리낌이나 양심의 가책 없이 잔인한 행동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베아 씨는 3년 동안 소년 병사 생활을 한 뒤 유엔산하 ‘국제연합 아동기금 (유니세프)’ 에 의해 구제돼 재활교육원에 보내집니다. 재활원에서의 생활도 쉽지 않았습니다. 재활원생들은 반군과 정부군 출신으로 갈려 매일 싸웠고 마약 기운이 떨어지면서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베아 씨는 간호사 에스터 등 재활원 직원들의 인내심과 사랑에 차츰 마음을 열게 됩니다. 베아 씨는 96년 유엔에서 어린이 병사 실태에 관해 증언하기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했고 이 때 자신을 돌봐준 여성과 인연이 닿아 그 가정에 입양됩니다.

지난 1998년에 미국에 온 베아 씨는 이제 자신이 좋아했던 랩 음악의 본 고장인 뉴욕에서 살고 있습니다. 베아 씨는 여느 소년들처럼 축구를 즐기며 미국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자신이 소년 병사였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밝히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베아 씨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개인적인 얘기를 털어놓지만 자신은 거의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과 사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습니다. 베아 씨는 미국인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강인한 지 내세우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폭력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베아 씨는 이제 새로운 미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베아 씨는 자신이 전쟁에서 받은 상처를 치료하는 길은 모든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베아 씨는 전쟁 전이나 전쟁 동안, 그리고 전쟁 이후에 겪은 모든 일들이 오늘날의 자신을 있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 모든 경험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생겼고 또 인생을 그 만큼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베아 씨는 지난 2004년에 오벌린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베아 씨는 지난 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니세프 국제회의에서 증언하는 등 여러 대중 연설을 통해 소년 병사들이 처한 현실에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도록 노력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베아 씨는 또한 전쟁으로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재단을 설립하는 중이며 회고록의 판매에서 나오는 수익의 일부도 유니세프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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