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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섬나라 피지, 이라크에 많은 인력 공급 (Eng)


남태평양의 피지 제도는 중동의 전쟁터와는 무관한 듯이 보이지만, 피지섬은 이라크에서 필요로 하는 많은 인력들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피지 주민들은 바티 상무문화에 기초한 강력한 전사전통을 갖고 있으며, 현재 이라크 주둔 영국군에서만도 2천여명의 피지 인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수백명의 피지 인들이 사망할 경우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유엔의 바그다드 사무소나 현지의 민간경비용역회사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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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사 랄라킬라 씨는 야자나무가 우거진 피지의 부레루아 마을의 한 공원에서 부인과 또 서른 네살 된 아들 티마우티의 두개의 무덤 옆에 서 있습니다.

랄라킬라 씨의 아들 티마우티 씨는 지난 2005년에 이라크에서 사망했습니다. 랄라킬라 씨는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접한 순간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어느 날 아침 한 장교가 찾아왔을 때 마침 그 공원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그 군장교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말을 꺼내려 했다고 랄라킬라 씨는 말했습니다. 아들, 티마우티는 몇명의 장교들을 호송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고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저항세력들이 헬리콥터에 총격을 가하는 바람에 총탄에 맞아 사망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랄라킬라 씨는 미군 당국이 아들의 시신을 회수해 피지섬으로 운구했고, 이제 그 아들이 어머니 무덤 바로 옆에 누워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사 문화를 갖고 있는 피지 인들에게는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되는 것이 하나의 인기있는 선택이 되고 있습니다. 해마다 300여명의 피지 인들이 영국 시민 자격으로 영국군 신병에 선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티마우티 랄라킬라 씨처럼 많은 피지인들이 현지의 민간경비용역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티마우티 씨는 2003년 미국 주도의 침공 이후 이라크에서 사망한 20여명의 피지 인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바티 군가는 피지 인들이 싸움에 나갈 남자들을 모으면서 부르는 전통적인 노래입니다.

부레루아 마을의 남자들이 이 고장의 마취음료인 카바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이 마을의 대변인인 레온 마타이 씨는 바티 문화는 사람의 치아들과 관계가 있어, 깨무는 것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피지섬의 모든 부족들은 대부분 저마다 독특한 바티 부족 문화를 갖고 있고, 자신은 그중의 하나라면서 레온 씨는 피지섬에서는 누구나 특정한 신분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카톨릭교 신부라면 태어날 때 그런 운명을 갖고 태어난 것으로 믿어진다고 말합니다. 직업과는 관계가 없이 당신이 거리에 있다면 당신은 자동적으로 거리 전사가 되는 것이라고 레온 씨는 말하고, 이것은 유전자 속에 들어있어서 당신이 전투를 벌이게 되면 최고의 전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에 피지에서 일어난 군사쿠데타 때문에 영국과 유엔은 이곳에서의 모병을 중단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이제는 해외에 나가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지의 경비용역회사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경비용역회사 ‘콘트롤 리스크’사의 피지 책임자인 조네타니 카우키모체 대령은 수바 의류공장에서 회사 제복을 들어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앉아서 파수를 보는 호랑이 그림의 뱃지로 ‘보안’을 의미한다고 카우키모체 대령은 설명했습니다.

카우키모체 대령의 사무실에는 이라크에 파견될 150명의 직원들의 사진이 핀으로 꽂혀 있으며, 이미 또 다른 150명이 현지에 파견되었는데, 이 가운데 2명이 사망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카우키모체 대령은 자기 회사는 통상 유가족이나 경비임무 수행중 영구불구가 된 사람들에게 개인당 17만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말했지만, 사망한 두 명의 유가족들은 아직 한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 회사에서 이라크에 파견된 사람들 중의 일부는 중간에 다른 회사로 전직한다며, 카우키모체 대령은 옮겨간 회사에서는 이들에게 호송업무를 맡기는데, 호송에 나갈 경우, 자칫하면 저항세력의 저격을 받기 쉬우며, 실제로 다른 회사로 옮겨간 이들은 저항세력의 매복공격을 받고 피살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마지막 회사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이들의 시신을 받아 유가족들에게 인계하게 됐다며, 자신은 사망자들의 미망인들에게 아무 보상금도 전할 게 없다고 말했다고 카우키모체 대령은 전했습니다.

이같은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라크에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금은 당연지사가 아닙니다.

이름을 밝히기를 원치 않는 ‘조’라는 중년의 한 남자는 이라크의 한 미국 경비용역업체에 가기로 결정했을 때, 피지에서 받던 월급은 겨우 100불에 불과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라크에서 하는 일이 매우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자신은 약 6천불은 받을 줄 알았다며, 조 씨는 이것은 사담 후세인 재판정에 출두할 국가 증인을 경호하는 일이었는데, 자신은 증인들을 적색지대에 데려왔다가 다시 사마라의 두자일 마을까지 데려다주는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나중에 그가 받은 돈은 당초 약속했던 것에 훨씬 못미치는 액수였다고 조 씨는 털어놓았습니다.

그들은 한달에 1,200달러를 지급했으며, 이것도 자신들의 은행계좌로 입금하지 않고 현금으로 주었다고 조 씨는 밝혔습니다.

당초 약속과 다른 봉급에 대해 회사측에 항의해본 일이 있느냐는 물음에 조 씨는 상사에게 말했지만, 그는 단지 최고책임자에게 보고해 보겠다고 말했을 뿐, 아무런 시정조치도 받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이라크에서 업무 수행중 사망할 경우, 보상금은 어느 정도 받게 되느냐는 물음에 대해 조 씨는 이것은 피지에서 맺은 계약에 따라 달라진다며, 피지에서는 여러가지 계약에 서명하게 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수백명의 피지 인들이 이라크의 경비용역업체에서 일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망자들은 업무 수행중에 당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계약마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조 씨는 다시 돈을 벌려고 싸움터로 다시 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다음 파견지로 아프가니스탄을 희망하고 아프가니스탄에 가기로 회사측과 계약을 맺었다며, 조 씨는 한달에 90파운드, 미화로 175달러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들 티아우티 씨의 무덤 옆에 서서 랄라킬라 씨는 다른 아들도 돈을 벌기 위해 곧 이라크로 떠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랄라킬라 씨는 다른 아들이 내일 이라크로 떠난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이라크에 가지 말라고 말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랄라킬라 씨는 이들이 이라크가 위험한 곳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가고 오고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라라킬라 씨는 이라크에 가려는 그의 아들을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라라킬라 씨는 자기 아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내버려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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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cific islands of Fiji may seem a world away from the battlefields of the Middle East, but Fiji has become a rich hunting ground for manpower in Iraq. Fijians have a strong military tradition based on their "Bati" warrior culture, and the British army in Iraq alone includes 2,000 of them. Hundreds more are working in Baghdad for the United Nations, and for private security companies, which can be very lucrative - even if you die. Nicola Fell reports from the Fijian capital, Suva.

In a palm-fringed garden in Fiji's Burerua village, Manasa Lalaqila stands by two graves: his wife's, and that of his 34-year-old son, Timocei. Timocei died in Iraq in 2005. Lalaqila recalls the day he heard the news.

"An officer came one morning. I was staying alone here and they tried to tell me what had happened, which I find very hard to accept," he said. " I was told he got shot in the plane while on duty, flying in a helicopter escorting some officers and then they were shot by insurgents. They managed to collect his body and send it back to Fiji. So he's buried here beside his mother."

With their warrior culture, Fijians are a popular choice as United Nations peacekeepers. As British Commonwealth citizens, 300 Fijian are recruited a year by the British Army. And many more Fijians - like Timocei Lalaqila - work with private security companies. Timocei was one of more than 20 Fijians who have died in Iraq since the U.S.-led invasion in 2003.

The Bati warrior chant is traditionally sung by Fijians to prepare men for battle.

As the men of Burerua village prepare a bowl of kava, the local narcotic drink, village spokesman Leone Matai explains the Bati culture.

"Bati refers to the teeth. It bites. Mostly in every tribe, there's special Batis. I'm one of them," he explains. "People are born with their positions. In Fijian beliefs, we believe if you are a priest, you are born a priest. If you are Bati, well the genes will come through you and so automatically you will be a Bati. It doesn't matter what you do. So, if you are on the street, automatically you will become a street fighter. It's in the genes. So if you're in warfare, you are the best war man ever."

Following a recent military coup in Fiji, the British and the U.N. have stopped recruiting here. The best option to earn good money abroad now is with the security companies.

Colonel Jonetani Kaukimoce is a Fijian agent for the British security company Control Risk. In a Suva garment factory, he shows the uniforms his men work in - and sometimes die in.

"This is the company badge with the tiger sitting and watching - that says security," he explained.

A list of 150 men ready and willing to go to Iraq is pinned on his office wall, and he has already sent another 150 - two of whom died.

He says the company normally pays more than $170,000 to the family of any man killed or permanently disabled while on security guard duty, but the family of those two men received nothing.

"Some of them from this company jumped to another company. When they went there, they went as escorts. Escorts, you are liable to get shot. And when they jumped (to the other company) they were ambushed and got killed," he explained. "I received the bodies here because I was the last company, you know, to help them out. I talked to their wives and said: 'This is the body of your husband - nothing else. We don't have any compensation, no nothing.'"

As this situation shows, getting paid in Iraq is not a sure thing.

Jo, a middle-aged sugar farmer who did not want his full name used, says he was earning $100 a month in Fiji when he decided to sign up with an American security company in Iraq.

"We thought we would be paid about 6,000 - because we were doing a very hard job," he said. "It was looking after the state witnesses in Saddam's court trial. I was in charge of the witnesses: to bring them over and to take them back to the Red Zone, to their villages in Djalil, Samarra and elsewhere."

In the end, Jo says, he was paid a lot less than promised.

"They just paid us 1,200 bucks for a month, but it wasn't going into our accounts, but in cash."

Q. "Did you ever confront this American company about your pay?"

A. "We tell the boss … and he was just telling us, 'Yes, I'm going to inform the big boss.' He was just saying that and end up nowhere."

Q. "How much would they pay if you died?"

A. "The thing is, you were shown here in Fiji a different contract. And we went over, we went and signed a different contract."

Hundreds of Fijians have worked in Iraq for security companies. Most of the fatalities have occurred in security work, and many say their contracts were not honored - yet Jo is preparing to go into a war zone again.

"My next move is I want to leave for Afghanistan," Jo said. "I've got a contract there. I'll be paid 90 pounds a month."

Still standing by Timocei's grave, Lalaqila says his other son is now leaving for Iraq.

"He's leaving tomorrow," said Lalaqila.

Q. "Don't you want to tell him not to go?"

A. "They know that the risk is there, but they keep going and coming."

He does not want to confuse his son, Lalaqila says. He will leave his son to make the decision on hi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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