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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뱁티스트 김 '북한 찬양한 세월 후회'


22년 전 18살의 나이로 조국에 대한 증오를 품고 한국을 떠났던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언어도 통하지 않는 프랑스라는 낯선 땅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살다가 30살에 어린시절 동경하던 또다른 조국, 북한을 만나게 됩니다.

그 후 무려 10년 가까이 북한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아온 그가 북한을 찬양했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한다고 공개 고백했습니다.

최근 영국의 공영방송 `BBC’에 출연해 참회의 심정을 토로한 프랑스 국적의 한국인 장- 뱁티스트 김 씨는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의 파리특파원을 지냈고, 런던에 소재한 북한 정보 웹사이트 ‘한국의 소리 (Voice of Korea)’를 운영했었으며, 올해 5월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다가 취소된 “평화를 위한 록큰롤 (Rock for Peace)” 행사를 기획한 인물입니다.

유미정 기자가 장- 뱁티스트 김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문: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사회에 대한 증오감에 한국을 떠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배경을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답: 사회가 부의 분배가 공평하게 잘 된다던가 아니면 지나친 빈부격차가 없다던가 아니면 빈부 격차가 어느 정도 있더라도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다던가 한다면 극단적인 증오감이 없겠지만, 제가 살았던 1970년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전혀 그런 사회가 아니었고 저는 소외된 계층 중에서도 아주 소외된 계층이었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소외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증오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한국을 떠나고 싶어서 떠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떠난 것이었고, 그 이후로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문: 한국에 대해 증오심을 갖게 된 이유 가운데는 아버지로 인한 사연이 컸던 걸로 아는데요,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요?

답: 제 아버지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70~80년대 한국사회는 그렇게 민주적인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마디로 민주화 운동에 개입돼 계셨던 분이었고 그 것으로 인해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못했던 분이세요.

그 때문에 우리는 경제적으로 아주 어렵게 살았었고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상생활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결정적으로 한국에 대해서 등을 돌리게 된 가장 기초적인 이유였던 것 같아요.

문: 한국에 대한 증오심이 강했던 만큼 한편으로 어린 시절부터 북한을 동경했었다고 하는데요?

답: 제가 이해한 북한은 사회주의, 사회 민주주의 국가였어요.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곳, 강한 사람이나 부자나 갈등없이 공평하게 평등한 기회 속에서 사는 국가, 그 다음 국가의 보장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기초적인 인간다운 곳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곳 등등 그렇게 이해했었고 솔직히 지금까지도 그 생각에는 큰 변함이 없습니다.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싶지는 않고 다만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난 지금 깨닫게 된 것은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라기 보다는 다소 ‘이상한’ 사회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제 이상과의 괴리감 때문에 등을 돌리게 된 것 뿐이지 아직까지 북한 사람들 너무 힘들게 살죠…하지만 그 당시 70~80년대 그리고 90년대 아주 초반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나쁘지는 않았었어요, 괜찮았어요.

문: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의 파리특파원을 지냈고 런던에 소재한 북한 정보 웹사이트인 ‘한국의 소리 (Voice of Korea)’도 운영하셨는데요, 좀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답: 저는 이곳 유럽에서 북한 국가, 북한 정부, 북한 지도자,북한의 정치적인 모든 것들을 모순된 것을 모순되지 않게끔 꾸미고 잘못된 것도 잘못된 것 같지 않게 꾸미고 정당하지 않은 것도 정당한 것처럼 꾸미고 선전하고 알리고 설득하고 변론하고 변호하고 그게 제 직업입니다.

따라서 과거에 유럽 신문 방송사들과 했던 모든 인터뷰들을 점검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과거에 제가 한 말 가운덴 거짓말도 많았고 말 그대로 포장된 것도 많았고 그런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다고 말하면서 그게 북한을 비방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문: 얼마 전 영국의 공영방송 `BBC’에서 북한을 위해 헌신해온 10년의 세월을 후회한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이처럼 큰 심경의 변화가 생긴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죠, 모든 교육이나 의료나 모든 것이 다 국가에 의해서 보장되고 국가에 의해서 지급이 주어지고 등등 여러 개념으로 볼 때 사회주의 국가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제가 꿈꾸던 사회주의는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전 말 그대로 국민들이 국가의 주인이 되고 국민을 위해 국민을 중심으로 국가가 운영되는 그런 사회주의가 이상이었는데,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임에는 틀림없지만 정치구조로 볼 때 봉건주의와 비슷한 사회주의 국가예요.

그래서 북한의 정치구조는 굉장히 권위주의적이예요. 보통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사회주의예요. 그래서 제가 결정적으로 싫었던 것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사회주의가 싫어요. 국민 위에 군림하는 이상 순수한 사회주의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제가 떠난 결정적인 동기예요.

문: 언론을 통해서 북한주민들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나보니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다르던가요?

답: 일단 사회적으로 얘기할 때 사람들이 보다 더 순진하고 더 착하고 보다 더 성실하고 거짓이 없고 역사적으로 얘기할 때 말 그대로 옛날 고구려 사람들처럼 아주 강하고 자존심 강하고 두려워 하지 않고 무서움이 없고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볼 때 중국이나 대륙적 문화가 굉장히 강했었어요. 남한하고 너무 틀려요.

대륙성 문화를 가진 것도 신기했었고. 그래서 모든 면이 제겐 색다른 경험이었고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남한 사람들과 너무 틀리고 좋았구요, 무엇보다 사람들이 좋았었어요. 정치하는 사람들이야 어느 나라들 막론하고 거짓말쟁이들이 있겠고 북한도 예외는 아니겠죠. 하지만 보통사람들은 너무 좋았어요. 참 좋은 나라예요. 그리고 도와주고 싶어요.

문: 북한의 상황이 아주 어렵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렇다면 그렇게 애정을 갖고 있는 북한주민들을 돕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 제가 내부에서 본 것은 (북한이) 어려움에 봉착한 현 상황에 대한 원인이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내부적인 원인과 외부적인 원인이 있어요. 내부적인 원인은 북한 내에서도 30대, 저처럼 40대 사람들은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래서는 안되는데 바꿔야 하는데 왜 이런지 모르겠다 불평하고 참 답답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북한에도 ..다만 문제는 정책권자, 소위 말하는 70대, 60대, 50대 후반 사람들이 문제예요. 그 사람들은 집권층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 때문에 변화를 만들려고 하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세대간의 갈등은 북한에도 있어요. 따라서 저는 세월이 지나가면은 세대교체가 되고 하면 틀림없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어요.

외부적인 요인으로서는 북한이 이처럼 어렵게 된 것은 미국의 영향이 상당히 커요.다른 방법으로 풀 수도 있는데 무작정 봉쇄하고 압박하고 무작정 쥐어짜고 그거 별로 좋은 방법 아니예요.

오히려 풀어줘서 자유롭게 무역하고 자유롭게 장사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돈버는 맛에 사람들이 변하게 돼 있어요. 근데 너무 쥐어짜요. 그렇게 되면 북한사람들은 역사가 증명하듯이 외부에서 압력이 들어오면 점점 더 내부적으로 뭉쳐요. 그게 제가 보기에는 미국의 잘못된 전략이에요

문: 북한 문제 해결은 총(Gun)이 아니라 돈(Money)이라는 말씀이신데요, 한국을 증오했던 이유가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면모 아니었던가요?

답: 자본주의라고 다 자본주의는 아니죠. 예를 들어서 미국식 극단주의적 자본주의가 있고 남한식 극단적 자본주의가 있는가 하면 유럽식 사회주의적 자본주의도 역시 있거든요 따라서 이 세상은 굉장히 넓죠.

미국식 원칙만이 세계를 지배하는 원칙은 아니죠. 따라서 북한이 돈을 벌면 달라질 거라고 하는 말은 미국식 극단적인 자본주의를 따라가라는 말이 전혀 아니구요, 지금 현재 북한이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 원칙을 그대로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자본주의를 도입하고 유럽식 모델을 닮았으면 하는 게 제 개인적인 바램이에요.

문: 미국에 대해 아주 비판적이신데요, 북한에 대한 생각을 잘못됐다고 나중에 깨달았던 것처럼 선생님이 현재 갖고 있는 미국에 대한 생각 역시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답: 맞습니다. 서울 안가본 사람이 서울 더 잘 안다고 저는 태어나서 미국 땅을 한번도 밟은 적이 없습니다. 아직까지. 제가 아는 것은 말 그대로 이론적으로 혹은 주워 들어서 뭐 읽어 봐서 아는 것 뿐이구요.

제 주위에 미국 친구들이 많습니다. 참 좋은 사람들이 많구요 저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도 많구요. 제가 아까 북한을 아직도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북한 사람들 참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그런데 등을 돌린 이유는 정치적으로 제 이상과 멀기 때문에 등을 돌렸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미국도 똑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미국 사람들 좋은 사람 참 많구요 참 좋은 나라죠. 하지만 현 미국 정부의 방침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문: 친북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본인과 가족들이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들었는데요?

답: 어려움이 굉장히 많았죠. 아직까지도 욕설 가득담긴 이메일을 받고있고 나는 공식적으로 등을 돌렸다고 선언까지 했는데도 전 굉장히 불편하게 살았었어요.

모르겠어요, 한국에서 일단은 오지말라 그랬고, 오면 재미없을 거라고 했으니까 가지 않겠고 거기에 대해선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전 아직까지 가끔 고향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전 경상북도에서 태어났는데요, 아직까지 고향에 가고 싶고 그리고 제 할머니가 거의 돌아가셔요. 그런데도 전 못가고 있구요. 그래서 그런 문제들이 맘에 많이 걸려요.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든 그것은 개인 자유죠. 그 개인의 신념을 문제 삼아서 가족 만나는 것도 두려워서 못 간다면 그건 정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건 민주주의가 아닌 거 같아요.

장 벱티스트 김 씨는 `미국의 소리’ 방송과 인터뷰를 하기로 결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북한을 정치적으로 비방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를 원치 않는다면서, VOA가 남북한에 모두 방송된다는 점 하나 때문에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습니다.

장 벱티스트 김 씨는 현재 영국 런던에서 조그만 전화가게를 운영하는 평범한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앞으로 북한 문제의 가장 현실적인 해결방법이라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돈을 많이 벌어서 여러 경로를 통해 어려운 북한주민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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