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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대선에 '북풍' 예상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해에는 유난히 바람이 잦다고들 합니다. 이른바 북풍, 병풍, 총풍, 세풍인데요. 자연발생적이 아니라 인위적인 바람이지요. 이 바람은 위력이 커서 선거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바람을 일으키려는 쪽과 이를 차단하려는 쪽의 공방이 거셉니다. 이 가운데서 북한변수를 가리키는 북풍(北風)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는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였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특히 북한이 전례없이 남한의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의 김세원기자를 연결하여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문: 북한이 새해들어 여러 경로를 통해 남한의 대통령 선거에 개입할 의사를 밝혔다면서요?

답: 네 그렇습니다. 북한은 먼저 1월1일자 공동사설에서 “지금 한나라당을 비롯한 반동보수세력이 발악적으로 책동하고 있다”면서 “각계 각층 인민들은 반보수 대연합을 실현해 올해의 대선을 계기로 매국적인 친미 반동세력을 결정적으로 매장해 버리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여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대남선전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도 4일 “한나라당의 재집권 책동은 결코 남조선 내부 문제로만 될 수 없고 나라의 평화와 통일, 민족의 사활과 관련된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조평통은 또 “한나라당과 같은 반동보수세력이 집권하게 되면 6.15공동선언이 날아나고 북남화해와 협력이 중단되며 우리 민족이 핵전쟁의 참화를 입게 될 것이 너무도 명백하다”면서 “우리 민족의 누구도 이 땅에 재앙을 몰아올 한나라당의 재집권 책동을 결코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9일 ‘2007 공동사설에서 보는 올해 전망’이란 글을 통해 북한은 올해 1년간의 북남관계와 통일의 정세가 연말의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게 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신문은 “대통령선거는 단순히 다음 대통령을 뽑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6.15의 자주통일 흐름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가 없는가를 판결내는 매우 중요한 계기점”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문: 북한이 특정 정당 이름을 공개적으로 거명, 비판하고 한나라당이 집권하게 되면 핵전쟁의 참화를 입게 될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것은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인데요. 이렇게까지 나오게 된 특별한 배경이 있습니까?

답: 북한이 한나라당을 비롯한 남한의 보수 진영을 공개적으로 겨냥해 공세에 나서는 이유는 남한 민심의 향방이 보수 쪽으로 돌아섰다는 위기감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유엔의 대북제재로 어려운 상황인데 남한의 보수 세력이 집권할 경우, 남북교류를 통한 경제적 지원 확보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 것이지요.

여기에 북한의 핵실험으로 남한 내에서 인도적 대북지원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위기의식이 고조된데다 납북자 송환과 탈북자 재송환 문제가 불거지면서 ‘우리 민족끼리’라는 북한의 감성적 구호가 더 이상 먹혀들지 않게 된 것도 일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청년실업이 가중되면서 북한에 거부감이 적던 개혁 진보적 성향의 젊은 층마저 북한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문: 그동안 남북한의 권력자들은 항상 민족통일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뒤로는 분단 상황을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고 정통성을 부여하는데 활용해 왔습니다. 김세원기자가 선거와 북풍의 역사를 정리했다면서요?

답: 70년대까지 ‘선거철은 간첩단 사건 발표의 계절’이라고 할 만큼 간첩사건이 북풍의 소재였습니다. 1967년5월3일 대통령 선거 때는 선거를 열흘 남짓 앞둔 4월21일 무장간첩단 사건이 발표됐고 1971년 대통령선거때는 선거 일주일 전 재일동포 간첩단사건을 비롯해 총 5건의 간첩사건이 발표됐습니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보름전인 11월30일 발생한 대한항공 858기 공중폭파사건은 전국민을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북한 공작원 김현희는 선거 하루 전날, 양 손목과 입에 자해방지용 테이프가 붙여진 모습으로 서울로 압송됐고 이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는 야당의 김영삼,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습니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북풍은 중부지역당 사건이었죠.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인 이선실이 서울에 잠복하면서 조직원 300명의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을 결성했다는 이사건 역시 대통령 선거 2개월 전에 발표돼 87년에는 북풍의 피해자였던 김영삼 후보가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997년 선거에서는 북풍의 변형인 이른바 총풍이 등장했습니다. 당시 이회창 후보가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북한측과 접촉, 대선 직전 판문점에서 북한군이 총격시위를 하도록 요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법정으로까지 비화됐지만 실제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았습니다.

문: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북풍은 일대 전환을 맞게 됐습니다. 그전에는 살을 에는 듯한 삭풍이었는데 이제는 추위를 녹이는 따뜻한 훈풍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에 따라 북풍이 불면 유권자들의 안정희구 심리와 북한 경계 심리가 발동해 강경한 대북정책을 펴는 여당후보에게 유리하다는 도식도 무너졌다면서요?

답: 그렇습니다. 2000년 4.13 총선을 사흘 앞두고 김대중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 한나라당은 ‘총선용 신북풍’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따뜻한 북풍인 셈이지요.

하지만 집권 여당은 오히려 총선에서 패배했습니다. 이 경우에는 정략성이 너무 드러났다고 할까요. 유권자들도 그동안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북한관련 이벤트를 통해 저의를 간파하게 된 것입니다.

2002년에는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두고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이용한 핵개발에 나서면서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됐습니다. 투표 일주일 전에는 핵동결 해제선언을 함으로써 위기는 더욱 고조됐습니다.

이 경우는 남측이 인위적으로 일으킨 가짜 북풍이 아니라 진짜 북한발 바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당시 노무현 후보는 북핵위기가 다시 찾아온 상황에서 대통령을 누구로 뽑느냐는 것은 곧 전쟁이냐, 평화냐를 선택하는 것이라면서 햇볕정책을 계승한 대북포용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했고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탄생으로 북한과의 화해협력세력이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으로 편입되면서 선거와 북풍과의 관계는 한층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변수가 많고 남한의 유권자들도 현명하기 때문에 과연 이번 선거에서 북한의 개입이 궁극적으로 어느 쪽을 돕게 될는지 속단하기는 아직 이른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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