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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31년 만에 탈북한 최욱일씨 무사귀환하나?


1975년 동해상에서 32명의 동료 선원과 함께 나포됐던 납북 어부 최욱일 씨… 이제 최 씨의 무사귀환에 한국사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서울의 도성민 통신원과 함께 최욱일 씨의 탈출 경위와 현재의 상황, 또 납북자단체의 반응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문: 천왕호 선원 최욱일 씨의 북한 탈출소식이 오늘 한국언론을 통해 일제히 전해졌지요?

답: 그렇습니다. 최씨의 북한 탈출은 지난달 12월 22일 최씨가 살고 있는 함경북도 김책시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요. 지난달 25 일 두만강을 건너 중국 모처에 은신해 있다가… 새해 첫날 아내 양정자 씨를 31년만에 만났고 최씨의 탈북소식은 아내 양모씨가 어제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언론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문: 지금 최욱일 씨.. 중국 모처에 안전하게 은신해 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31년만에 남편을 만난.. 부인을 만난 부부의 심정…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답: 물론입니다. 납북당시 건장한 체격이던 최씨가 40여 kg의 마른 몸으로 그것도 31년만에 부인앞에 선 모습… 반갑기에 앞서 안타까울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납북당시 생후 7개월된 아들와 위로 세딸을 홀로 키워야 했던 부인 양정자씨와의 해후는 만나는 사흘내내 눈물의 해후였다고 합니다.

문: 함경북도 김책시에서 혜산을 거쳐 두만강을 넘기까지… 최 씨의 탈북경로가 순탄치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현재 탈북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불편한 상태라구요?

답:그렇습니다. 중국의 은신처에 다다라.. 안도하는 가운데 생긴 사고였습니다. 최씨가 탄 차량이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사고를 당했고 최씨는 오른쪽 이마를 8바늘 꿰매는 수술을 받았구요. 아직 가슴에 통증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문: 납북 이후 최 씨는 김책시에 있는 남새농장에서 농장원으로 일했다고 하던데…. 북한 당국의 감시 속에서 어떻게 탈북에 성공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탈북경로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답: 최씨가 탈북을 결심한데에는 납북자 가족모임 최성용 대표의 끈질길 노력이 큰 힘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 대표는 지난 2001년부터 8차례에 걸쳐 북한내‘협력자’를 보내 탈북을 도우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최씨는 ‘북한 당국이 자신을 떠보려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4차례나 보위부에 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9월 9번째 권유에 나선 협력자를 만나면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돕겠다는 말을 믿지 못하던 최씨는 안내원이 보여준 부인 양정자씨 필체의 1남 3녀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받아본 뒤 탈북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12월 22일 가족들에게’ 시내에 다녀오겠다’라는 말만 남기고 조선족 안내원을 따라 화물차에 몸을 실어 3일만에 혜산시에 이동했습니다.

이후 25일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넜구요…. 안내원이 미리 마련해온 여행증명서 등 합법적인 관련서류 덕에 중국 은신처까지 10여개의 검문소를 무사히 통과했다고 합니다. 납북자 가족모임 최성용대표는 최씨의 탈북 성공은 북한과 중국내 협력자들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습니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저는 시키는 입장이고....북한에서 협조자들이 많이 고생했지요. 부인니야 33년 만에 보니까... 여기서 갈 때하고 가서 보는 것은 많이 틀리지요....제가 한국 정부에게 공식으로 25일 요청했구요. 그 부분에 대해서 협의중입니다. 잘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국민인데 구해와야지요,””

문: 자, 이제 한국 정부가 최 씨의 귀환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는데요?

서울: 그렇습니다.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중국 선양 한국 총영사관도 외교통상부의 지침을 받는 대로 중국과의 교섭에 들어갈 것이라는 내용을 전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부 한국언론의 미온적인 대응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최씨를 위한 사전교섭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이라며. 오히려 언론을 통해 공개로 교섭에 어려운 점도 있다는 이야기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최성용 대표는 적극적인 대응을 위해 언론에 알린 것이며 정부에 공식적으로 요청한 만큼 잘 해결 될 것이라 믿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중국정부가 다행히 납북자하고 국군포로는 잘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납북자나 국군포로가 탈출하면...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외국 쪽에서 많이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문: 최 씨와 같은 납북된 가족이 있는 사람들의 심정.. 어떨까요? 최 씨의 무사귀환을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답: 물론입니다. 20년~ 30년 넘는 세월을 언제나 돌아올까 살아있기나 한걸까 애타게 기다리는 납북자 가족들의 지금심정은 최씨 가족의 현재의 모습이 자신의 상황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납북자 가족협의회 최우영 회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는데요, 오늘 때마침 지난 1987년 동진호 선원으로 피랍된 아버지의 귀환을 빌며 가족들과 함께 임진각 소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걸고 있었습니다.

(최우영, 납북자 가족협의회 회장) “네.. 부럽지요. 저도 그런 희망을 갖고 있어요.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천왕호의 최욱일씨를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정부가 늑장 조치로 인해서... 못 데려온다고 했는데....빨리 데리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

문: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최 씨가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아오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이야기 이군요?

답: 그렇습니다. 납북자 피랍연대 도희윤 대표도 한국정부의 중국과의 협상력이 관건이라고 말했습니다. 자국민으로서 보호해야 할 납북어부 최씨의 건강과 심리 상태를 감안해 빠른 시일내 교섭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도희윤, 납북자피랍연대 대표) “”지금 현재는 최욱일씨 같은 경우는 정말로 몸도 안 좋은 상태이고 심리적으로도 불안한 상태이기 때문에 하루속히... 대한민국으로 들어와서 가족의 품으로 와야 하는데..아직까지 여러 가지 어려운 난관이 남아있습니다. 이 난관을 제대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보다 신속하고 보다 더 정확하게 중국정부와의 협상을 통해서 하루빨리 우리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남아있는데.. 지금까지는 대부분 우리 개인이나 단체가 움직였습니다만 이제부터는 이제 우리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기 때문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신속하고 안전한 우리 국내 입국조치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문: 먹을 것이 없어 토끼가 먹는 것을 다먹었다는 최욱일 씨의 이야기… 또 4남매를 키우기 위해 도둑질 말고는 다 해봤다는 부인 양정자씨의 이야기… 한국내 납북자 가족들의 애환이 아닌가 합니다.

답: 그렇습니다. 아직도 납북자에 대한 명확한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은상태여서 더욱 문제입니다. 실제 최씨의 부인 양정자씨도 이루 헤아일 수 없는 어려운 세월을 감내해야 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요.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다가 막내 아들이 취학할 나이가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사망신고를 했다고 합니다. 이후 배가 출항한 날을 제삿날 삼아 제사를 지냈고.. 제사때 쓰던 영정사진을 앞에 두고 언제 돌아올 수 있을 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잇다고 합니다. 납북자 가족협의회 최우영씨는 남편과 아버지 자식을 잃은 가족의 마음으로 납북자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최우영, 납북자가족협의회 대표)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가족이 납치당했을 때...어떤 마음일까... 어떤 심정일까...를 생각하고.. 이 문제를 접근해 주시면...저희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아요. 다른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버지가 갑자기 납북되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졌을 때..그 상실감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거든요. 그런 심정으로 저희들을 이해하고 저희한테 힘을 보태주시면...희망을 잃지 않고, 노란 손수건을 달고... 저희 가족들도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

또 납북자 피랍연대 도희윤 대표는 지난해 통과될 것으로 예상했던 납북자 특별법이 올해 초에는 반드시 국회를 통과하기를 소원한다면서 납북자에 대하 정부차원의 진상파악과 남은 가족들에 대한 지원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도희윤, 납북자피랍연대 대표) “이것은 앞으로 납북자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는 귀한 법이 될 텐데요. 올 초에 분명히 이 법이 통과되어서... 납북자 가족들에게 ..또 북한에 남아있는 납북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그런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올 초에 이 법이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우리 단체나 개인적으로 적극적으로 노력할 예정입니다. 국회에서 이 부분들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다루어져서 좋은 소식이 있기를 저희들 정말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

한편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에 살던 납북 어부 최욱일씨는 돈 많이 벌어오겠다며 오징어잡이 배 천왕호를 탔다가 1975년 8월 8일 북한경비정에 의해 최씨를 포함해 33명의 선원들과 함께 나포되었으며… 지난 2005년 탈북해 고향 강릉으로 돌아온 천왕호 동료선원 고명섭씨가 1999년 당사 북한에서 한국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천왕호의 납북사실이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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