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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전 美 대통령 타계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이 향년 93세를 일기로 26일 타계했습니다. 미국의 제 38대 대통령을 지낸 포드 전 대통령은 미국이 정치적으로 가장 힘겨웠던 시기를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도록 헌신한 대통령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 타계 소식과 그의 삶, 정치역정 등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26일 향년 93세를 일기로 타계한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캘리포니아에 소재한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포드 전 대통령의 부인 베티 포드 여사는 이날 포드 전 대통령의 사망소식을 짧게 알렸으나 그의 임종 장소와 사망원인 등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생존해 있는 미국의 대통령들 가운데 최고령이었던 포드 대통령의 사망은 최근 그가 자주 병원에 입원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돼 왔습니다.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은 지난 1973년, 스피로 애그뉴 당시 부통령이 부정부패 의혹으로 사임하면서 후임으로 지명된 미국 최초의 선출되지 않은 부통령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채 1년도 되지 않은 1974년 8월 9일,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은 미국을 발칵 뒤흔들어 놓은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닉슨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사임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포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닉슨 대통령이 결국 사임하면서 당시 미국은 국가 최고 지도자들의 연이은 부정 의혹으로 국가의 근간마저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에 따라 신임 포드 대통령이 처음 취한 행동은 국민들에게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포드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오랜 국가적 악몽은 이제 끝났습니다. 위대한 우리 미국은 사람이 아닌 헌법이 지배하는 국가이며, 헌법은 제 기능을 다하고 있습니다 “라고 역설했습니다.

1913년 7월 14일 미국 중서부 네브라스카주의 작은 마을 오마하에서 레슬리 킹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포드 전 대통령은 생후 몇 년만에 생부와 이혼한 어머니가 제럴드 포드 1세와 재혼하면서 포드라는 성을 얻게 됩니다.

포드 전 대통령은 1930년대 중반 미시간대학 재학 중에는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해군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포드 전 대통령은 전쟁이 끝난 뒤 예일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1948년 포드 전 대통령은 미국 의회선거에 처음으로 출사표를 던지며 정치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포드 전 대통령은 비록 불법도청 사건으로 촉발된 워터게이트 사건의 여파로 갑작스레 대통령이 됐지만 3년이 채 못되는 재임기간 중 별다른 큰 정치적 사건없이 성실하고 개방적인 정치인의 모습으로 무난히 격변기의 미국을 이끌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포드 전 대통령은 또 재임 중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휴전협정을 이끌어 냈으며,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는 핵무기 제한협정을 체결하는 등 중동 평화와 냉전시대 긴장완화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75년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워터게이트와 베트남전쟁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민주당의 지미 카터 후보에게 접전 끝에 패배하고 맙니다.

포드 전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이 됐을 때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카터 대통령에게 국가를 넘길 수 있게 돼 다행스럽게 여긴다면서도, 국민의 신뢰회복을 위한 자신의 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포드 전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난 뒤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면서 정기적으로 강연회를 갖는 등 꾸준히 활동했습니다. 포드 전 대통령에게는 전임자들의 불명예 퇴진으로 선거도 치르지 않고 부통령과 대통령직을 승계함으로써 무임승차했다는 꼬리표가 붙어다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은 포드 전 대통령이 특유의 솔직함과 성실성으로 대통령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시킨 훌륭한 정치인이었으며, 국가의 가장 어려운 시기를 현명히 극복해낸 위대한 지도자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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