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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A 밀착취재] 탈북여성 나오미씨의 하루


지난 5월 미국 정부가 북한인권법에 의거해 탈북자를 처음 받아들인지 7개월이 지났습니다.

6명의 탈북자들은 뉴욕 등 미국 동부 도시에서 자립의 꿈을 키우며 비교적 착실히 정착에 적응해가고 있는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는 이들 탈북자가운데 미국 동부의 한 도시에서 홀로서기를 시도하고 있는 나오미씨의 하루 이야기를 보내드립니다.

30대 후반의 나오미씨는 넉달 전 탈북자들과 함께 지내던 뉴욕의 둥지를 떠나 한 도시에서 공부와 일을 병행해 가며 현재 자립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나오미씨와 동행하며 그녀의 하루 일과를 취재했습니다.

나오미씨는 버스를 기다리며 녹음기에서 들려오는 영어 문장을 열심히 따라 읽고 있습니다.

나오미: 그 시간이 더 아깝죠. 한 두시간씩 차를 기다리는데 그냥 가만히 서 있으면 그 시간이 얼마나 아까워요.”

나오미씨는 옷을 재단하고 재봉하는 양재 기술과 손톱과 발톱 미용 즉 네일 기술을 배운 뒤 취직하겠다는 일념으로 석달 전 뉴욕에서 이 도시로 이주해 왔습니다.

탈북자들과 함께 지내던 뉴욕의 둥지를 떠나 새 도시에 정착하는 것이 약간 두렵기도 했다는 나오미씨!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은 하루 빨리 미국에서 자립해야겠다는 그녀의 신념을 꺽지 못했습니다.

나오미씨는 이제 언제 어디서나 미국인들처럼 능숙하게 버스와 전철을 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이 있기 까지 버스를 여러번 놓치고 차 번호를 잘못 읽어 다른 노선 버스를 타는 등 적지 않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나오미: “ 한 정거장 더 남았겠지 생각했는데 밖을 내다보니까..(내려야 할 곳을) 훨씬 지나친거예요. 그래서 정신 없이 막 내리고 그랬죠.이제는 차를 타면 근심도 불안도 없어요. 어떤 때는 길도 잃어가면서 배워야 익숙해지는거잖아요. 처음부터 실수하지 않으면 (웃으며) 기억 못하죠.”

나오미씨는 이곳에서 양재학원과 네일학원, 영어학원을 번갈아 다니며 별도로 네일 미용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원들이 모두 먼 곳에 떨어져 있기때문에 나오미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버스를 갈아타야 합니다.

나오미씨는 버스를 기다리며 미국인과 가끔 갖는 대화를 통해 적응에 대한 자신감을 키웁니다.

나오미: “난 미국사람들과 전혀 대화가 안 통하면 어떻게하나..많이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밖으로 다 알아들을 수 있고 ..말은 잘 못해도 알아들을 수 있다는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지….”

나오미씨는 현재 자신의 미국행을 도와준 기독교 선교단체 두리하나 미국지부의 소개로 이 지역의 기독교인 이용식씨 가정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나오미: “전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는데도 자기 가족 처럼 편안하고 자기 형제처럼 편안하고..그래서 제가 밖에서 속상한 일이 있으면 집사님한테 다 얘기해요. 그 날에 무슨 일이 있었던간에 마음에 안 좋은 일이 있거나 불편한 일이 있으면 집에 가서 다 얘기해요. 그러면 제 마음도 한 결 편안하구요.”

나오미씨는 집주인 이씨 부부, 그리고 이씨의 10대 자녀 세명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며칠 전 이씨의 둘째딸 다정양의 생일 잔치가 있었는데 나오미씨는 평생 처음으로 생일 파티를 봤다고 합니다.

나오미씨는 생일 파티가 참 부럽고 행복해보였다고 했습니다.

나오미: “ 가족이 이렇게 모여 앉아서 파티하니까 정말 단란한 가정 같은것이 남의 집 같지 않고 내 집 같았어요.”

나오미씨는 그러면서 북한의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나오미: 북한에는 생일 파티란 것이 없죠. 자기 생일 알고 부모들이 생일 챙겨줄때는 있지만 여기처럼 생일 파티란 것은 없어요. 지금은 잔치가 있어도 손님들 청하고 그러지 않아요. 먹을것이 야박하니까요. 제가 있을때도 친척집에 놀러가도 양식을 싸가지고 가야지 안가지고 가면 가까운 친척이라도 안좋아하죠. 친구집에 가도 도시락 싸서 가야해요.”

그저 밥(이밥)을 먹으면 최고의 생일을 보내는 줄로 알았던 북한의 생활! 그런데 이곳 미국에서는 애완동물이 오히려 북한 사람보다 더 잘 먹는다며 나오미씨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나오미: “우리집에서는 항상 이밥 먹으면 (생일을) 잘 보내는 줄로 알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여기는 수준이 그렇지 않잖아요. 밥이 평상시에 먹는 주식이니까요. 최하 수준도 밥은 먹고 사는데, 밥이 없어서 못먹는것이 아니라 먹기 싫어서 안 먹으면 안 먹어도. (북한에서는) 여기서 최하로 못 사는 사람들이 먹는것도 제대로 (못먹죠) 정말 여기 짐승들보다 못하죠. 여기 짐승들은 진짜 고급이예요. 여기 짐승들은 참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웃음)

풍요로 상징되는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지만 이곳에서도 낯선 사람에게 오래 동안 거처를 제공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유시경: “저희 집이 우선 한인 커뮤니티에서 가깝고 혹시 시내에 직장을 갖게 되도 여기에서 대중교통이 편히하거든요. 또 탈북자분들 처음 이 도시를 방문했을 때 우리가 나오미씨를 너무 너무 좋아했고 그리고 마침 아래층에 방과 샤워실이 있고 해서 기회가 좋다…”

이용식씨 부인 유시경씨는 나오미씨덕택에 북한사회를 더 이해하게 되고 가족끼리도 더 자주 시간을 갖는 계기가됐다며 오히려 나오미씨에게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유시경: “같이 지내니까 북한아 바로 윗 나라인데…수학 가르칠때 덧셈 뺄쌤 공부하며 미국 GI 가 몇 명인데 몇 명 쏴 죽이면 몇 명이 남는가…뭐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정말…이게 거짓말이 아니구나…하는 것을 알게되구요. 또 나오미씨가 함께 지내니까 가족들간에도 더 가까워졌어요.”

치아가 좋지 않은 나오미씨는 한 달에 두 번씩 한인이 운영하는 치과에서 치료를 받습니다.

나오미: “ 어금니가 어릴때부터 다 썩었어요. 어금니가 아래에는 한 대씩 밖에 없어요. 한 대 밖에 없는 그 어금니들도 모두 앓거든요.”

탈북자들은 북한의 열악한 의료 환경때문에 치료를 못받아 대부분 치아가 좋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탈북자들의 초기 정착 교육을 담당하는 하나원내 의료 기관들가운데 치과의 인기가 가장 높다는 것은 그런 북한 주민의 의료 실태를 잘 보여줍니다.

나오미: “시스템이 너무 다르죠. 여기와서 저는 놀랬어요. 이빨 사진도 다 찍고 거기 북한에는 그런 것 이빨 사진찍는 거 없어요.제가 어릴때 생각나는게 여기는 치과 가면 마취약 넣기 때문에 그렇게 아프지 않잖아요. 어릴 때 병원 치과에서 검사 치료차 학교에 왔었어요. 그런데 거기(북한)엔 마취약이 흔치 않으니까 뺀치 같은걸로 제 이빨이 하나 썩었다고 흔들리지도 않는 생 이빨을 뺀치로 뽑는데…(내가 아파서) 돼지 잡는 소리를 냈더니만 뒤에서 줄서 있던 아이들이 모두 다 도망갔어요. (웃음)

그런 치아에 대한 악몽, 그리고 열악한 의료 환경 때문에 학창 시절 이후 치과 문턱에도 가 보지 못했던 나오미씨… 그러나 이 곳 치과에서는 상당히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이준영: “ 한 마디로 말하면 틀니가 필요한 상태예요. 어떤 것은 빼기가 아까운 것은 신경치료를 해 살려서 틀니를 잡을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예요.”

나오미씨는 현재 정부에서 수입이 적은 사람들에게 지급하는 의료 프로그램! 즉 메디케이드의 수혜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치과는 아직 그런 혜택에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치료비를 부담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인 치과의사 이준영씨는 나오미씨가 탈북자란 사실을 알고 전액 무료로 치료해주고 있습니다.

이준영: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탈북자이기때문에 그런겁니다. 우리가 돕지 않으면 다른 도울 사람이 없기때문입니다. 그리고 동포들이 도와줘야 자립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만약에 나오미씨가 자립을 해서 왔을 경우 내가 돈을 받아야겠죠.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이 도와줘야 할 거예요.”

나오미씨는 치과의사 이씨가 자신에게 차비에 쓰라며 2백달러를 건네준 적도 있다며 주위분들의 그러한 온정이 낯선 이국땅에 홀로 정착하는 자신에게 큰 격려가 된다고 말합니다.

나오미: “내가 항상 고마움을 느껴서 미안해 하고, 항상 부담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면 그 분들은 이렇게 애기해요. 나한테 감사하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앞으로 보답하려면 나 개인한테 보답하려 하지 말고 당신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 이웃들, 탈북자들을 위해서 그 사람들한테 하나라도 더 잘해 주고 그 때 가서는 당신이 정착 잘해서 그 분들을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어느분들이나 저한테 모두 그런 말을 해요.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듯이 다 그래요.”

치과에서 나온 나오미씨는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바쁘게 네일 학원으로 향합니다.

나오미씨는 차창 밖을 내다보며 미국에서 처음 맞았던 가을을 떠올립니다.

나오미: 여기 오니까 곳곳마다 붉게 다 물들고 이러니까 참 가을이란 맛이 정말 마음에 다가오는게…

이북에 있고 중국에 있을때는 사는게 힘들어서 그런지 이런 풍경에 대해 신경을 별로 안썼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을에 대한 정서를 제대로 못느꼈는데….이런데 와서 삶이 여유로워졌는지 그런것을 다 생각할 겨를이 되고 참 좋습니다.”

고향에는 살구나무가 참 많았다며 잠시 회상에 젖은 나오미씨에게 미국생활에 불편한 것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나오미: 안그래도 사람들이 자주 물어봐요. 고향 떠나서 타국에 왔으니 사는게 많이 힘들겠다구요. 그런데 사실 어느때보다 제 평생에 지금이 제일 편안한 순간인것 같아요. 북한에서는 생활이 고단하다 보니까 근심 걱정에, 장사를 하려면 장사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사는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정신적으로 힘들고 육체도 힘들고 그랬어요.”

나오미씨는 육체적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중국에 왔지만 늘 체포에 대한 불안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었다고 합니다.

나오미: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죠. 먹는것만 조금 좋아졌을뿐 사는 것은 마음 조이고 살고, 오히려 북한에 있을때보다 스트레스를 더 받고 살았습니다. 잘 있다가도 잡힐까봐. 그게 제일 큰 걱정이었죠. 맨날 마음 조이고. 밖에서 사이렌 소리! 여기는 얼마나 싸이렌 소리가 자주 나요. 소방차! 거기 (중국)엔 경찰차가 사이렌 소리를 자주 내며 달려요. 그러면 길가에서 그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 두근 거려요. 그래서 심장이 많이 나빠졌어요.”

나오미씨의 미국 생활은 이제 7개월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나오미씨는 북한과 중국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그 악몽같은 싸이렌 소리가 이젠 정겹게까지 느껴진다며 깔깔 웃습니다.

나오미: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런 걱정 없고 마음이 편안하니까 스트레스도 없고.첫째로 마음이 안정됐다는 것이 좋구요.

기자: “가끔 싸이렌 소리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

나오미: “항상 그 소리 날때면 옛날 생각이 나죠. 저 소리 중국에서 들을 때 왜 그렇게 싫었던지….지금은 오히려 그 소리 들으면 정답게 들려옵니다. (웃음) 자유라는게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경찰차가 지나가면 오히려 여기서는 마음이 놓이죠. 두려움이 아니라 저를 보호해준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안정돼죠.”

나오미씨는 미용 학원을 석달째 다니고 있습니다. 이젠 동료들과도 많이 친숙해졌습니다.

한인이 운영하는 이 미용 학원은 강사와 학생들을 합해 약 2십여명으로 손님들을 상대로 값을 적게 받고 직접 머리도 손질하고 손톱도 다듬기 때문에 하루가 매우 분주합니다.

학원 강사 김인애씨는 나오미씨의 솜씨가 참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김인애: “잘하시는것 같아요. 아주 적응 잘하시구요. 지금 여기서 연습 삼아 손님들도 몇번 했는데 손님들도 굉장히 좋아하시구, 열심히 하려고 애쓰고…제가 학생들을 많이 가르쳐봤는데 손재주가 참 있으신분 같아요. 그래서 몇개월 가르쳐주면 응용해서 훨씬 더 좋은 것을 해놓고….잘 선택하셨다고 생각해요.”

이씨는 그러나 네일 미용 기술을 배우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특히 영어로 치뤄야 하는 이론 시험은 합격하기가 여간 까다로운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김인애: “실기하고 이론을 다해서 시험을 쳐야하는데 약 150 시간정도 공부를 해야합니다. 교과서가 꽤 어렵습니다. 이론공부를 많이 하셔야 합니다. 나오미씨 같은 경우는 영어공부를 더 많이 못했기 때문에..어려움이 더 많을 것같아 단어 공부 부터 시키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취득해야 합법적으로 취업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험을 영어로 치뤄야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도 자격증을 취득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고 강사는 말합니다.

나오미씨는 시험공부를 하다 책 한 장을 제대로 못 읽고 잠드는 경우가 많다고 고백합니다.

나오미: “기술에 필요한 영어죠. 그런데 이제 생활영어도 알아듣기 힘든데 그걸 하려니까 안되죠. 그런데 (함께 사는) 권사님이 시험문제지 뒤에다 답안을 깨알처럼 번역해 주셨어요. 밤을 새시면서 제 공부에 도움이 되라구요. 그런데 나는 그걸 펼쳐들면 (웃으며) 한 장 펴놓고 그 다음날도 다음날도 같은 것 펴놓고 ..못 끝나요. 외웠다가도 돌아서면 다 잊어버려요. 참 속상하죠.”

나오미씨는 그러나 어려워도 서두르거나 포기 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나오미: 당분간은 인차 안되죠. 영어라는게. 여기서 몇년씩 사는 사람도 영어가 안되는 이도 많은데. 우리가 지금 당장 급하다고 해서 그걸 머릿속에 넣는다고 해서 되는것이 아닌것 같아요. 시간을 갖고 그저 꾸준히! 공부를 해서 꾸준히 하면 들어가고 남는것이 또 있겠죠. “

미용학원 원장 여경구씨는 나오미씨를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고 있습니다. 여 원장은 나오미씨의 사정을 듣고 강습비를 전혀 받지 않고 있습니다.

여경구 원장: “우리 동포고 저희가 또 그런 어려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기회가 왔기 때문에 동참하는 것이고…단순한거죠. 우리가 내세우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냥 저희가 도와줄 수 있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나오미씨는 학원 사람들의 마음이 참 따뜻하다며 감사를 잊지 않습니다.

나오미: “한국 같으면 북한사람이라면 이상한 눈으로 보고 이런게 있을 수 있는데 여기와서는 그런 거 못느꼈어요. 다 똑같이 대해주고. 오히려 마음에 상처 받을까봐 따뜻하게 대해주고. 오히려 남모르게 도와주려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나 나오미씨가 항상 주위 사람들로부터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 산 바지가 너무 길다며 툴툴거리는 선생의 바지를 제법 능숙한 양재기술로 줄여주기도 하고, 교회에서 아기를 가진 젊은 부부들이 예배를 편히 드릴 수 있도록 대신 아기를 돌보는 일등은 모두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나오미씨가 스스로 시간을 내서 하는 일들 입니다.

나오미: 내가 할 수 있는 것! 누구를 도와줄 때가 제일 행복하고 긍지가 있어요. 한 가지 예를 들면 (수줍어 하며) 이렇게 얘기하면 안되는데….요즘엔 교회에서 1~2 살 짜리 아기들을 돌봐줍니다. 부모님들이 예배를 보는 동안에 2 시간씩 봐줘요. 선생이 많이 필요하고 아기들이니까…처음에 하지 않던 일이니까 서먹서먹하고 내가 이걸 해야 되는가? 안해도 되는데…내가 왜 이런 일을 하는가..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차츰차츰 하면서 보람도 느끼고…내가 이런 일도 안하면 어디서 보람을 느끼겠는가…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자원봉사에 힘을 얻은 나오미씨는 최근엔 노숙자들을 위해 밥짓는 일까지 참여했다고 합니다.

“우리 집사님이 학교 동창들과 음식을 준비해 노숙자들의 끼니를 도와주는 일을 한다고 해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다른 것이 없잖아요. 그래서 노숙자위해 봉사를 하니까 비록 큰 일을 아니지만 그런 작은 일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어디가나 있구나. 어려운 사람들을 할 수 있는 일이 나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구나! 그런데서 참 보람을 느끼게돼요.”

나오미씨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순수하게 봉사한다는 것은 북한에서는 상상 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겪은 북한의 사회주의, 즉 수령 독재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오미: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마음 가짐이 더 훌륭한것 같아요. 우리가 학교 때 배운것은 자본주의 사회는 무섭고 병든 사회라고 얘기하고 다 남을 착취하고..그렇게 배웠거든요. 사회주의는 다 우월하구요. 그런데 이렇게 보면 자본주의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해요. 서로 봉사하고 서로 돕고 불행한 이웃들을 서로 도와주고 하는 것을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일이 있지. 북한 사회에서는 위에서 강제로 내려 먹여서 그렇게 하지. 사람들이 마음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와서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우월성이 나타나는것 같아요.”

지난 5월, 미국에 처음 도착한 후 며칠 뒤 가진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오미와 동료 탈북자들은 미국에 입국한 소감과 정착에 대한 포부를 이렇게 얘기했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너무 다른 나라예요”

“ 미국땅에 도착하는 순간 내가 정말 자유의 땅에 왔는가 믿겨지지 않았어요. 꿈 같이 생각되고”

“지금 현재까지 받은 느낌만해도 이 나라가 엄청나게 예의가 바르고 인권을 존중하고 사람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식으로 표현하자면 인민대중 중심의 나라란걸 진짜 느끼게 돼요.”

“우리가 진짜 누구 말씀하신것처럼 다른 별에서 또 다른 별로 옮긴 느낌이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엄청 뒤떨어지고 하니까..이걸 따라가려고 하면 힘든일이 많겠죠. 그러니까 좀 부담스러운감도 있고. 과연 잘 따라갈 수 있을까..하는 느낌도 들구요. 근데 우리는 많은 고생을 해 봤으니까 열심히 하면 되겠죠.”

그리고 7개월이 흐른 지금 나오미씨는 그동안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제는 많이 안정이 됐습니다. 적응됐습니다. 마음이 많이 안정이 돼서 이젠 내가 이 사회에 언제든지 살 수 있다는 의욕이 생기고. 음식 문화도 그렇고 모든 문화에서 조금씩 다가가고 있어요. 처음엔 북한에서 공산주의 도덕 배운것처럼 여기서도 사회에서 지켜야 할 공중도덕과 문화가 있잖아요. 그런것도 처음엔 몸에 많이 서툴었어요. 미국 사람들은 지나가다 실수로 몸을 스쳐도 익스큐즈미 하고 자기가 먼저 얘기하잖아요. 그런 것도 우린 처음에 몸에 배지 않아서 선뜻 입에서 안나갔어요.”

하지만 나오미씨는 이제는 옷깃만 스쳐도 입에서 영어가 튀어나온다고 합니다.

나오미: “이젠 자연히 몸에 배서 이 사람들의 습성을 따라가니까. 차가 실수해서 내가 옆 사람을 부딯혀도 익스큐즈미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나가고..어떻게 해서 잘못하면 아엠 쏘리란 말이 자주 나가는거예요. 북한에서는 그런 상황 상상도 안해요. 상대방 물건이 떨어져도 그런가보다. 상관안하고 가요. 그렇지만 이젠 여기 문화가 몸에 배서 상대방이 물건을 떨어뜨리면 가서 주워주고 그래요. 지금은 미국 문화가 많이 몸에 배고 적응이 생각보다 잘되가는 것 같아요.”

그러나 나오미씨는 가끔 난처한 일을 겪기도 합니다.

나오미: “가족이 북한에 있고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이 말이 퍼지지 않게 하자고 약속했는데, 갑자기 첫 수업시간에 ‘이 분은 진짜 어려운 곳에서 오신 분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큰 어려움을 겪지 못했기때문에 이런 분을 따뜻한 마음으로 도와줍시다’이렇게 얘기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막 당황했어요. 지금은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친북단체가 적지 않잖아요. 그래서 나는 그런 (낯선) 사람들이 (내 신분을) 아는 것을 썩 반가워하지 않았는데 생각밖에 그 얘기를 하시니까 무척 당황했어요 그런 얘기를 하시면 안된다고 말 할 수도 없잖아요 그 분도 좋은 의미에서 얘기하신건데….참 난감하죠”

어둠이 석양 노을이 붉게 물든 하늘을 재촉할 무렵 나오미씨는 네일 학원에서 나와 영어 테입을 들으며 다시 버스를 기다립니다.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인 양재학원에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오미씨는 북한에 있을때 공장에 다니며 재봉틀을 조금 다뤄봤다고 합니다.

양재 기술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지역 사회에서 무료로 기술을 가르쳐 주는 학원에 등록했지만 배우는 것이 만만한 것 같지 않습니다.

강사 김영주씨는 양재 기술을 배우는 것이 보는 것 만큼 쉬운것이 아니라며 나오미씨의 수준은 이제 걸음마 단계라고 지적합니다.

선생으로부터 꾸중을 받고 다시 옷을 손질합니다.

나오미씨는 부업 차원에서 양재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재봉틀로 옷을 손질하면 수입이 짭짤하기 때문입니다.

나오미씨의 절약 정신은 생활 곳곳에서 보입니다.

미국인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1센트짜리 페니 마저 나오미씨에겐 소중합니다.

나오미: “(버스안에서 대화를 나누며) 그런데…

“(동전들을) 이렇게1 불씩 딱딱 말아서 오늘은 갈 때 1불 25센트씩 준비하고 올 때 얼마들겠다 예상해서 하루에 3불이 들면 3불값을 (종이에 말아서) 넣어가는 거예요.”

밤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나오미씨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빡빡한 일정때문에 피곤하지 않냐는 질문에 나오미씨는 ‘일 없다’고 말합니다.

“중국에 있을때는 2-3 시간 자면서…

하지만 인간이기에 객지생활이 지치고 외로울때도 가끔 있습니다.

나오미: “외로울때…(웃으며) 글쎄 있겠죠… 없다면 (사람이 아니죠) 그런데 지금은 아직까지 그런데 신경을 쓸 겨를이 안된다고 할까..그래요”

밤 하늘에 별들이 더욱 선명해질 무렵 버스에서 내린 나오미씨는 홀로 집으로 걸어가는 이 시간이 되면 유독 북한에 있는 노년의 부모님 생각이 간절합니다.

나오미: “(버스에서 내려 네일 샾으로 가며) “우리 엄마 아빠랑 다 빼빼 말랐어요. 연세는 얼마 안됐는데 너무 말라서 70먹은 할머니처럼 보입니다. 여기서는 60 이면 한창이잖아요.그래서 60대 어른들을 보면 자꾸 우리 엄마하고 대비하게 되고.. 엄마 생각이 간절하구 그래요.”

나오미씨 등 6명이 미국에 처음 입국한 이후 미국에 관심을 갖는 탈북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나오미씨는 그러나 미국에 오고 싶어하는 제 3국의 탈북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나오미: ‘진실을 얘기해주고 싶지 (선전이나 가식적으로) 도움이 안되는 말은 해주고 싶지 않아요. 그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마음의 준비를 왠만히 하지 않고는 미국사회에 정착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봐요.”

미국에서 법만 잘 준수하고 자기만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나오미: 이번에 저와 함께 온 6명은 모두 정신력이 강해요. 진짜 살겠다는 의지! 중국에서 이렇게 고생했는데 뭐 이만한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정말 여기 와서 마음 편한 것 하나만으로도 진짜로 감사하고 자기만 열심히 살면 되는 거잖아요.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잖아요. 열심히 살려고 해도 자기 신분때문에 돈도 제대로 못받고, 쫓겨다니고, 신분이 들통나면 북송돼가고. 이런 위기때문에 마음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열심히 살고 싶어도 못하는거예요. 그렇지만 여기는 우리에게 조건이 다 주어지고 노동허가증 있지, 앞으로 영주권 받게되는 혜택도 있죠. 다 주어진 조건속에 자기만 법을 준수하며 열심히 살면 되는데. 그 것 마저도 이겨나갈 용기가 없으면 안되겠죠.”

긴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때면 나오미씨는 늘 주위 사람들의 온정을 생각하며 마음 다짐을 새롭게 합니다.

나오미: 주위 분들의 도움 없이는..경제적 도움 보다도 이렇게 마음으로 어려운 일에 발벗고 나서는 주위분들의 노력이 없으면 제가 적응하기 힘들었을것 같아요. 내가 지금 다니는 학원도, 치과도, 네일학원도 다 이 분들이 사랑으로 해주는 거지. 나에 대해 대가를 바라고 해주는 아니잖아요. 우리 탈북자들을 위해서 어렵게 살던 사람들을 진심으로 도와줘야 겠다는 마음 갖고 진심으로 해주는거기 때문에 참 많이 고맙고 그분들에게 항상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앞으로 정착을 진짜 이런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해야 겠다는 그런 생각 갖고 사니까 하루가 힘들어도 보람이 있는것 같아요.”

나오미씨는 인터뷰를 마친 몇일 뒤 네일 가게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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