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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대북지원 10주년 맞아


지난 1996년 북한의 대홍수를 계기로 북한주민 돕기에 나선 한국의 대북 지원단체가 있습니다. 한국의 천주교, 불교, 기독교 등 6대 종단과 시민사회단체가 연합해 북한 지원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지난 8일로 창립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자세한 소식 도성민 통신원 연결해 알아봅니다.

문: 대북한 지원 10년을 맞은 단체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인가요?

답: 그렇습니다.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이 외부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1996년에 창립한 북한지원 민간단체입니다. 말씀하신대로 한국의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가 결성된 국민운동조직을 갖추고 있는데요. 지난 8일 서울 63빌딩에서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열었습니다. 북한지원 10년의 의미를 들어봤습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강영식 사무국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사무국장) “10년을 이 운동을 계속해 왔고,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나름대로 우리민족서로돕기를 비롯한 민간의 대북지원운동이 남북관계나 민족화해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는 자부심과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현재의 상황이 여러모로 어렵지만 10년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비롯한 민간운동이 나름대로 이러한 성과를 가지고 왔다..또 남북관계 진전이나 민족화해에 나름대로 교두보가 되었다..자축하는 의미에서 이번 10주년 행사를 치뤘지 않나 생각합니다.”

문: 10년 전, 1996년이면 남북관계를 주로 대립의 관점에서 보았던 때가 아닙니까. 이럴 때 북한지원을 생각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답: 그렇습니다. 흔히...공산당과 빨갱이라는 수식어가 더 익숙했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에서도 긴급구호가 필요한 어려운 상황이어서 동포애 차원의 지원을 시작하지만 당시의 남북관계에서 북한동포돕기운동이 얼마나 가능할지.. 또 몇 년이나 지속될지... 의아스러운 점이 많았다고 창립당시를 되돌아 봤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사실은 북한동포가 어렵다~ 도와줘야겠지만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없었지요. 50년 동안 서로 반목했으니까요.. 또 그때는 물론 정부차원에서도 북한주민을 돕는 것에 대해서 나서지 않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당시에는 유일한 창구가 적십자사 였습니다. 저희가 96년도 시작할 때는 많은 민간단체가 모금한 물자를 적십자사를 통해서 지원했고.. 물론 그것은 대한 적십자사가 아닌 , 국제적십자사 통로로 지원했고..그러한 과정이 2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남쪽의 동포들이 지원하는 물자를 왜 국제 적십자사 지원하느냐 하는 반성들이 나왔고...”

문: 그러니까 처음부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가 공식적인 지원창구였던 것은 아니군요?

답: 그렇습니다. 국제 적십자사의 이름으로 지원되던 구호품이 한국 단체의 이름을 달고 전해진 것은 98년부터였습니다. 98년 당시 남-북한은 서로 왜곡되고 적대적인 인식을 가진 것이 사실이었고, 인도적인 지원을 하기는 하지만 구호품이 북한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될까.. 혹시 다른 의도로 사용되지는 않을까... 불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을 계기로 그러한 분위기가 화해와 협력 쪽으로 전환되었었다고 기억했습니다. 강 사무국장은 지난 10년이 지나오는 동안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가 북한 주민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만큼 한국에 대한 신뢰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 남과 북 또, 해외동포들이 서로가 어려울 때 서로 돕자는 의미에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라는 이름을 썼고, 또 10년이 지난 지금은 많은 북한 주민들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라는 이름을 압니다. 그것은 남쪽의 하나의 단체라는 이름보다도 남쪽의 동포들이 어려운 자신들을 돕는 다는 것을 돕는 운동이라는 것을 압니다. 사실은 2001~2년도 전만해도 ‘우리민족’이라는 말을 안 썼습니다. 남쪽에서는 한민족 북쪽에서는 조선민족이라는 말을 했는데... ‘우리민족’이라는 따뜻한 표현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하면서 가져온 성과가 아닌가 합니다.”

문: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 대가나 목적을 두고 일을 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습니다. 순수하게 어려운 사람들이 더 이상의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인도주의적 지원이 바탕이 되지 않나 생각하는데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의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지원의 성격도 발전했다고 할까요? 달라졌음을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답: 그렇습니다. 크게는 먹을 것 입을 것을 전해주던 긴급구호에서 북한식의 자력갱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대북한 지원이 달라졌습니다. 이런 흐름은 비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뿐 아니라 북한주민을 지원하는 대부분의 한국민간단체들의 움직임도 다를바가 없습니다만.. 더욱 고무적인 것은 북한 당국도 자신들의 가속화되는 경제난의 원인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단순히 식량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식량을 ..생산을 증대시킬 수 있는 농법의 전수라든지. 또 농기계나 여러 가지 농자재를 지원하는 이러한 식의 개발지원으로 바꿔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기의 긴급구호운동에서 북한의 개발지원으로 변화하고 있는데요, 그런 것들이 최근의 농업이라든지 보건의료 분야에서 이제는 북한 스스로 그런 어려움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도 눈에 보입니다. 저희가 초기에 98년에도 북에 갔을 때 사실 2명으로 시작했는데요. 올해만 해도 62번째였습니다. 지난 10월말로 북한을 방북한 햇수가 62번이고, 연 인원만 해도 2000명이 넘고...”

문: 2006년 들어서만 북한 방문이 62번째라는 것인가요? 기술자들이라면 어떤 사람들 인가요?

답: 그렇습니다. 10월말 현재까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를 이름으로한 방북이 62번째라는 것입니다. 주로 평양의 적십자 병원이나 수액제 공장 등에는 의료기기분야 기술자들이 방북을 하고 있는데 병원 설비나 의료보건 분야는 특히 남-북한의 경계가 아닌 서로의 기술을 받으려는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데 이것이 지난 10년 이 운동본부의 가장 의미 있는 성과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문: 사업 분야가 아주 다양하네요. 농업협력, 축산 지원, 의약품 사업, 병원 현대화 사업... 이들 사업의 공통점은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아닌가 싶습니다.

답:그렇습니다. 북한주민을 위한 구호사업이 발전된 것 인만큼 .. 대부분 농업과 축산을 통한 식량증산과 의약품 생산과 병원현대화 사업 등 북한 주민들의 건강도모가 핵심입니다. 이런 사업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의 독자적인 사업이라기 보다 다른 전문단체와 민간단체. 그리고 각 지역 지방자치단체와의 결연형식을 취하고 있는데요.

북한의 최대병원인 적십자병원의 경우, 호흡기 병동은 한국의 을지병원이 , 구강병동은 대한치과의사협회, 안과병원은 대한의사협회, 고려의학병동은 대한한의사협회 등 권위있고 책임있는 기관들이 나서서 지원하고 있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가 정성제약공장을 담당하면 국제적인 구호단체인 굿네이버스는 주사제 공장을 지원하는 체계적인 파트너십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문: 하지만 대북한 지원사업이 이웃집 사람들을 돕듯 간단한 일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만큼 이에 따르는 어려움도 많을 것 같습니다.

답: 물론입니다. 대북한 지원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순수한 인도주의적 지원의 마음이 흔들릴때라고 합니다. 북핵사태나 미사일 발사 등이 가장 주요한 어려움이라고 하는데요. 국제정세와 남북관계 변화에 따른 한국민들의 민감한 반응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 최근에 많은 국민들이 핵실험 정세에서 나름대로 실망감도 많이 갖고 있고, 많은 지원단체들이 10년 가까이 지원하고 있는데, 현재와 같이 다시 또 10년전으로 상황으로 되돌아 간 것에 대해서 많은 자괴심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많이 어렵다고 보구요. 그래서 결국은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은 많이 있습니다만, 그런 정세에도 불구하고 민간차원의 인도적 지원마저 끊긴다면 남-북 관계가 파국이지 않느냐 하는 그런 절대 절명감도 있습니다. 상황이 어렵더라도 더 대북지원이 계속되어서 최소한의 남북간의 화해와 교류의 끊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그런 인식 하에서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문: 대북한 지원사업의 큰 창구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지나온 10년의 역사가 있는 만큼 또 미래를 위한 준비도 있겠지요? ... 앞으로는 어떤 지원을 계획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답: 인도적 분야의 개발협력사업이 가장 우선적인 목표라고 합니다. 병원현대화 사업을 계속 확대해 나가고 지금까지 시범사업 형식을 띄던 농업협력사업의 본격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북한이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개발지원 프로젝트가 구상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60~70년대 한국의 성장을 북한에서 실현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엇습니다. 강영식 사무국장은 50년 반목의 세월 이후 이제 10년의 교류의 토대가 세워진 만큼 앞으로 북한이 스스로 일어서 국제사회에 진출하도록 하는 것이 대북한 지원의 근본적인 지향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통일의 문제는 멋 훗날이라고 보더라도...한반도 남-북이 서로 평화롭고 통합적으로 지내기 우한 지내기 위한 방안들이 강구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희가 창립 10주년 맞아서 10년을 되돌아보니까 ..그렇게 크게 한 일을 없는 것 같아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10년에 대단한 변화입니다. 그래서 조급해 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한반도의 평화라든지 남북 주민들의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느냐..그래서 북한주민들에게 변함이 없고 꾸준한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한편, 지난 8일 이 단체의 10주년 행사는 97년 추진한 옥수수 10만톤 보내기 범국민캠페인을 상징하는 옥수수 만찬이 차려졌고, 800여 명의 후원자가 참석해 북한에 옥수수 1만1천800여t을 보낼 수 있는 돈이 모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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