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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의 정치적이용 용인할 수 없어…금강산 상봉 거부 (오디오 첨부)


남한의 이산가족을 대변해온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가 제한적으로 실시돼온 금강산 상봉을 거부하고 나섰습니다. 극소수에게만 가족상봉이 허용될 뿐 아니라 정치적 분쟁만 생기면 중단을 거듭하는 지금의 금강산 상봉은 정치적 볼모로 이용될 뿐 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자세한 소식 도성민 통신원 연결해 알아보겠습니다.

(김동우,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지금과 같은 형식의 금강산 상봉은 단호히 거부한다! 거부한다! 거부한다!""이산가족 상봉의 기회를 누린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 서로가 남북으로 흩어져 60년이 지나도록 안부도, 주소도, 생사도 모른 채 무작정 상봉의 그날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이들에 대하여 정부는 무슨 대안이 있는가를 밝혀보라!"

문: 이산가족들의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네요. 그동안 쌓여온 이야기가 표출된 것이겠지요?

답: 그렇습니다. 이산가족을 볼모로 삼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북한에 대해서 또 이런 북한의 정치적 이용에 끌려가기만 하고 800만 이산가족을 대변하지 못하는 남한 정부에 대한 불만이 나타난 것입니다. 지난 15일이 ‘25회 이산가족의 날’이었는데요.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이산가족 생사확인 촉구대회’를 통해 북한에 퍼주는 대가성 상봉을 거부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남한 이산가족들의 모임인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김영관 사무총장입니다.

(김영관,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사무총장): “첫째는 60여년 동안에 이산가족이 생사확인도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어필한 것이고, 두 번째는 금강산 상봉행사가 너무 틀에 박힌 것이고 좀 더 발전된 것이 없고 많이 지원해 준것에 대해서 보다 많은 결실이 없어서... 그런 것을 금강산 행사 안 된다는 그런 2가지 목표를 가지고 했습니다.”

문: 이산가족의 생사확인이 지지부진하다. 또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보여주기 위한 행사에 가깝다.. 는 것이 이분들의 주장이군요.

답: 그렇습니다. 이산가족재회추진위는 1982년에 이북5도민회가 당시의 남한 국토통일원과 협의해 만든 사단법인인데요. 이듬해인 1983년에 KBS와 함께 ‘이산가족찾기운동’을 벌인 것을 비롯해 북한 수해돕기 모금, 실향민 실태조사, 학술대회, 해외 서명운동, 남북 인간띠 잇기 등을 이산가족의 문제 실향의 아픔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려온 근본적인 이산가족 상봉의 문제가 한계에 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남한 정부에 믿고 맡길 수 없어 거리로 나왔다는 것이고, 혈육의 아픔을 미끼로 쌀과 비료를 챙기는 북한에 분노한다고 말했습니다.

문: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도 하지 않겠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인가요?

답: 그렇습니다. 아직도 추석이나 설날 등 이벤트성으로 열리는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조건 없이 연중 수시로 할 수 있는 상봉이어야 하고 더불어 상봉 후 편지 교환과 수시·자유 상봉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를 했습니다.

문: 그동안 금강산과 서울 평양 등지에서 가족을 만난 이산가족들이 어느 정도나 되나요?

답: 1985년 서울 평양 교환방문이후,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으로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6월 까지 14차례 이루어졌는데요. 북측 가족을 만난 남한의 이산가족은 1490가족입니다. 적지 않은 수입니다만 1988년 이후 남한 정부에 상봉신청을 해 놓은 12만 4800명 에 비하면 비교할 수 도 없는 숫자입니다.

문: 지금처럼 일년에 두차례의 만남이면 기다리기만 하다가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네요.

답: 지금까지 만난 이산가족 1490명의 20배가 넘는 2만 9000명이 돌아가셨습니다. 4년전 임진각에서 82살의 한 실향민이 ‘상봉 신청 접수증’을 품은 채 목숨을 끊었던 사건이 있었는데요. 이산의 아픔의 어느 정도인지. 실향민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사회문제인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지금도 상봉 신청자의 70% 이상이 70대 이상 노인입니다.. 지금처럼 한 차례 100명씩, 1년에 두 차례 또, 컴퓨터로 추첨해 상봉시켜서는 500년이 걸리는 일이 됩니다. 사람의 수명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이산가족 상봉 계획은 근본부터 잘못 된 것인데.. 1985년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자리 걸음 수준이라고 불만을 터트렸는데요. 이런 이산가족문제에 미온적인 정부의 대처를 더 이상 믿고 따를 수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일천만 이산가족 재회 추진 위원회의 이재운 위원장입니다.

(이재운,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위원장): "그저 북한을 거스르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 우리가 하는 대로만 가만히 수긍해달라... 이런 식으로만 나오는 거예요. 그 것도 참았는데 이제 이번에 이 것도 중단사태가 생긴 것을 보니까 정부 말 믿고 참다가는 아무 일도 안 되게 생겼지 않습니까?"

문: 이번 집회에서 200여명의 이산가족들이 가두시위를 하기도 했다던데. 남한 정부의 공식 반응이나 연락은 없었던가요?

답: 그렇습니다. 사전에 집회를 하지 말아 달라. 행사 규모를 축소해 달라는 요구는 있었지만 집회 후의 반응은 없었다고 합니다. 남한 정부에 대한 신뢰나 믿음은 없는 상태라며 추석을 즈음해 이산가족상봉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항간의 기대도 희망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관,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사무총장): “저희들은 그런 것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안될 거라고 보고 있구요. 최대한 로 앞으로 얼마만큼 지원을 해줘서 이문제가 해결될지....북한 당국에서도 이 문제를 최대한 으로 이용하려고 할 것이고 당분간은 기대하지 않고 있고, 더 나아가서 내년에 대선정국으로 돌아서게 되면 북한과의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서는 대화가 막힐 것으로 보고 있고....”

문: 앞으로 남한 정부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인 움직임을 하겠다는 것이 이산가족단체의 주장인데 말이지요. 이 분들의 가장 우선적인 메시지는 이산가족의 생사를 확인해 달라는 것이 되겠지요?

답:그렇습니다. 이산가족들의 가장 우선적인 바람입니다. 상봉을 기다리다 그렇게 기다리던 가족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할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 생사만이라도 확인해 준다면 답답함이라도 덜 수 있고, 막연한 기대로 남은 생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70대 80대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단 한번만이라고 고향에 갈 수있도록 하는 것, 금강산 면회소를 빨리 완공해 상시 가족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단단한 체계를 구축하라는 것이 주요 메시지입니다.

(김영관,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사무총장): “ 그렇습니다. 제일 시급한 문제는 생사확인을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60년동안에 생사확인된 것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300통의 편지 한번 보내온 것. 그것 밖에는 없습니다. 생사확인을 해 달라.!..네”

일천만이산가족 재회추진위원회 관계자는 더 이상 정치적인 볼모나 실적 위주의 상봉에 이용되고 싶지 않다면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사태에도 불구하고 수해를 당한 북한 주민에게 식량을 보내고 구호물자를 보내는 것이 최소한의 인도주의 차원의 결단이라면, 늘 제자리걸음인 이산가족 문제의 현실에서도 최소한의 인권적 배려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영관,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사무총장): “이제는 우리 실향민들이 이산가족들이 보다 더 힘을 합쳐서 정부를 압박하고 그것이 북한에 전달되도록 행사규모를 키웠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이산가족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이산가족들을 바라봤으면 좋겠고 그러한 측면이 확산되었으면 우리 이산가족문제가... 인권차원의 문제가 더 부각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한편 이산가족들의 상시 상봉과 만남의 장소로 활용될 예정이던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는 북한의 미사일 사태 이후 남한 정부의 비료 등 식량 지원 중단에 따른 북한당국의 조치로 지난 7월 22일 모두 철수돼 당초 계획했던 내년 6월 완공이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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