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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그치지 않는 미국정부의 금융거래 기록 비밀조회


부쉬 행정부가 테러단체 조사를 명분으로 지난 수 년 간 개인의 금융거래기록이 담긴 국제금융전산망을 비밀리에 조회해 왔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를 둘러싸고 정부와 언론은 물론 언론 간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 윤국한 기자로부터 알아봅니다.

-먼저 문제가 된 보도가 어떤 내용인지 부터 소개해 주십시요.

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미국 주요신문들은 지난달 23일 부쉬 행정부가 2001년 9/11 테러사태 이후 지금까지 5년 간 테러분자들의 자금을 추적하기 위해 국제금융전산망을 비밀리에 수시로 조회해 왔다고 보도했습니다. 국제금융전산망은 전세계 7천8백여개 은행과 증권거래소 등 금융기관들이 연계된 시스템으로 하루 거래액수가 무려 6조달러에 달합니다. 이번 보도는 부쉬 행정부의 영장없는 비밀도청 파문에 이어 테러방지를 목적으로 한 무제한적인 감시활동에 대한 논란을 새롭게 불러일으켰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와 관련해 "국민의 사생활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오랫동안 지켜져온 법적, 제도적 장치를 정부가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 언론의 보도에 대해 부쉬 행정부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윤: 주무 부서인 재무부의 스튜어트 리비 차관은 테러용의자의 자금을 추적하는 것은 정부의 합법적이고도 적절한 조치라면서 `금융전산망 조회는 테러와 무관한 시민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안에 연루된 용의자에 한해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부쉬 행정부는 부쉬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까지 나서 언론보도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부쉬 대통령은 이번 일과 관련한 언론의 보도는 `수치스런 일'이라면서 `미국에 큰 해를 끼쳤다'고 말했습니다. 의회의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특히 <뉴욕타임스>를 겨냥해 강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하원 국토안보위원회의 피터 킹 위원장은 정부의 비밀활동과 그 방법을 공개한 것은 반역행위라면서 비밀정보를 반복적으로 유출한 <뉴욕타임스>를 간첩활동 관련 법률을 적용해 소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원은 지난 29일 이번 보도는 기밀정보 공개로 국가안보를 해친 행위라며 주요 신문들을 비난하고, 아울러 테러와의 전쟁에서 모든 언론매체들의 협력을 기대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의결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공화당 소속의 한 하원의원은 <뉴욕타임스>의 의회 출입기자들에 대한 출입증을 취소하도록 요구하는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 이번 보도는 <뉴욕타임스>만 한 것이 아닌데 행정부와 공화당은 왜 유독 이 신문을 겨냥하고 있습니까.

윤: 이번 일은 지난달 23일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몇몇 신문들이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때문에 부쉬 행정부 관계자들과 공화당이 <뉴욕타임스>를 주로 겨냥한 것은 이 신문이 영장없는 비밀도청에 대해 처음 폭로하는 등 부쉬 행정부를 곤혹스럽게 하는 보도를 해온 데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신문들이 이번 일을 <뉴욕타임스>와 같은 날 보도한 것은, 부쉬 행정부가 이 사실을 처음 취재한 <뉴욕타임스>에 국익을 이유로 비보도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비밀을 해제한 데 따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월스트리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부쉬 행정부가 비밀을 해제한 것은 `보다 객관적으로 사실을 다뤄달라'는 취지에서 였습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부쉬 행정부 비판에 초점을 맞출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행정부의 입장을 잘 반영해 달라는 뜻에서 비밀을 해제했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이 사설과 성명 등을 통해 상대의 보도를 비판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지요.

윤: 그렇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에서 `<뉴욕타임스>의 문제는 수많은 미국인들이 더이상 이 신문 편집자들의 선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여러 현안을 통해 분명해진 사실은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전쟁 중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며, 아울러 이 신문은 부쉬 행정부가 이 전쟁을 수행할 정당성이 결여돼 있다고 여기는 것 또한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신문은 만약 자사가 사전에 사실을 파악한 상황에서 정부가 비보도를 요청해 왔다면 아마 보도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뉴욕타임스>가 같은 기사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월스트리트 저널을 여론의 방패막이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의 아더 슐즈버그 발행인은 성명을 통해 `<월스트리트저널>이 기사를 실으면서 그 중요성이나 파장을 몰랐을리 없다'면서 <뉴욕타임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보다는 일반기사를 더 신뢰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 신문의 빌 켈러 편집국장은 2일 과의 회견에서 부쉬 행정부는 오래 전부터 국제 금융거래를 감시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왔다면서 이번 보도는 테러분자들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켈러 국장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딘 바케 편집인과의 공동기고문에서 두 신문은 지난 수년 간 이라크전 정보 오류와 포로학대 등 백악관이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많은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해 왔다면서 , 이번 보도 역시 백악관이 숨기고 싶었던 적법성과 감독의 문제를 제기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에 앞서 `애국심과 언론'이란 제목의 사설에서는 테러단체 조사를 명분으로 국제 금융전산망을 수시로 조회한 부쉬 행정부의 행태는 테러를 빌미로 한 행정권력 확대의 한 사례로, 안보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또 비록 애국적이지 않다는 비난을 받을 소지가 있어도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언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정부와 언론 뿐 아니라 언론 간에도 공방전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이번 파문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습니다. 미국인들의 여론은 어떻습니까.

윤: 보수성향 매체인 <폭스뉴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민들은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국익을 저해하는 것이라며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조사결과 응답자의 60%는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테러분자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고,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밝힌 응답자는 2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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