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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정상회담 이래 우여곡절 겪어 온 남북관계 현주소


남한과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분단 이래 처음 열린 역사적인 6.15 정상회담에서 민족 화해와 자주, 평화통일 등 5개항의 공동선언문에 합의한 지 오늘로 6년이 지났습니다. 정상회담 이래 여러차례 우여곡절을 겪어온 남북관계의 현주소는 지금 어떤지, VOA 윤국한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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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6월15일, 북한의 수도 평양의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환하게 웃으며 두 손을 맞잡고 높이 치켜든 모습을 기억하십니까. 두 정상은 `우리 두 사람이 공동선언문에 합의했습니다'라며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새 시대를 선언했습니다.

남북한의 국민들은 벅찬 감격 속에 두 정상이 합의한 5개항의 공동선언문이 분열과 대립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민족 화해와 단합, 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두 정상의 역사적인 회담 직후 남북한 간에는 즉각 선언문의 합의를 구체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다각도로 시작됐습니다. 정상회담이 끝나고 열흘 뒤에는 금강산에서 제1차 남북 적십자회담, 7월에는 서울에서 제 1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열린 데 이어 한달 뒤 8.15 광복절을 맞아서는 제 1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이뤄졌습니다.

9월 초에는 남한 내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송환돼 대결의 시대가 남긴 상처의 한 장을 마감했고, 같은 달 임진각에서는 경의선 열차 복구를 위한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분단 이래 처음 열린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과 북한 주민들에 대한 남한인들의 생각을 극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미국 워싱턴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맨스필드연구소 소장 고든 플레이크씨는 이같은 인식변화가 곧바로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에 반영됐다고 말합니다.

" 가장 큰 변화는 북한을 보는 위협인식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정상회담을 하기 전에는 북한을 위협으로 여기고 있었고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역시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국제위기그룹의 동북아 사무소장인 피터 벡씨의 관찰은 좀더 구체적입니다.

"6.15 회담 이후 특히 남한에서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개념인 위협 인식이 많이 변했습니다. 이제 대통령, 지도자들끼리 만날 수 있고, 악수할 수 있고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북한이 위험한 나라가 아니고 경제난을 90년대부터 겪었기 때문에 불쌍한 나라라고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와 그 뒤를 이은 현 노무현 대통령 정부는 이같은 분위기 속에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렸습니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대북 지원은 남북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크게 늘어 지난해에는 2138억원, 그리고 올들어서는 5월 말 현재 1788억원에 달합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9월 북 핵 6자회담에서 원칙성명이 채택되자 곧바로 `앞으로 9~13년 간 약 6조5천억에서 11조원 정도의 대북 에너지 지원' 계획을 밝혔습니다. 쌀과 비료 등 물품을 추가할 경우 대북 지원 규모 합계는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사실 정상회담 6년이 지난 지금, 남북한 간의 인적, 물적 교류는 거의 제도적으로 정착됐습니다. 한 예로, 남한인들은 매일 평균 1~2천명이 금강산을 관광하고 있고 개성공단에도 1천명 가까운 남한인들이 상주하는 가운데 하루 방문객만도 5백명에 이릅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대남 정책에서 `정경분리론'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남한과는 경제협력 등 교류만 하고 핵을 포함한 정치, 안보 문제는 철저히 미국과 협상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남한 내에서는 북한이 현금 등 경제적 실리만 챙기고 있고, 남한 정부는 핵 등 안보 문제에서 아무런 성과도 없이 북한에 일방적으로 퍼주고만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정상회담 과정에서 북한에 거액의 돈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같은 비판은 대북정책의 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졌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이 양국 정상의 민족의 장래에 대한 걱정에서 시작됐다는 생각과는 달리 대북 송금사건이 특별검사의 수사 결과로 기업이 돈 4억5천만 달러가 건네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상회담의 순수성이 해쳐졌구요, 북한이 선의를 갖고 남쪽을 대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기 때문에 우리가 환영했던 것인데 북한 핵무기 개발이 알려지면서 정상회담이 진행되던 그 순간에도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다는 점이 남한의 많은 사람들을 실망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남한의 유력신문인 동아일보의 워싱턴특파원인 김승련 기자는 남한 내 보수층은 이같은 기류 때문에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더욱 높이게 됐다고 지적합니다.

피터 벡 소장은 더 나아가 경제협력에 대한 북한의 의도 또한 그 진정성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북한이 진짜 남한과의 경제협력을 원하는지 아직도 확인 못합니다. 예를 들어 남북철도 문제도 3년 전에 완벽하게 끝낼 수 있었는데 아직 왜 해결하지 못하는지, 만족하지 못하는지.."

이런 가운데 북한의 핵 개발과 2002년 발생한 서해교전, 2003년의 핵비확산조약 (NPT) 탈퇴와 동해상에 발사한 지대함 미사일, 탈북자와 인권 문제, 위조달러화 제조 의혹 등은 남한 내 많은 사람들의 북한에 대한 시선을 더욱 싸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특히 오랜 동맹인 남한과 미국 사이의 관계에 균열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고든 플레이크 소장의 말합니다. "위협인식, 경향을 보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미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특히 9/11 이후 북한을 보는 위협인식이 높아가고 있고, 한국은 떨어지고 있고.. 같은 위협인식이 우리 동맹관계의 기초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떨어져 간다면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거죠."

김승련 기자는 이와 관련해 노무현 정부의 이념적 성향을 문제로 지적합니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핵심층에서는 북한에 대한 우호적인 생각을 80년대부터 갖고 있었고, 그런 관점에서 현재의 정책을 이어나가는데, 그것이 핵 개발과 대북 송금사건 이후 북한을 다시 보기 시작한 대중의 정서와 괴리가 생긴 것 같습니다. 괴리를 극복하는 것이 우리 내부적인 문제만 갖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독특한 대외정책 스타일, 미국의 세계전략이라는 큰 변수가 작동했기 때문에 국내의 괴리를 한국정부의 정책으로 좁히기 좀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남한 내 분위기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의 일관되게 대북 경제지원을 추진했고 최근에는 아예 핵 문제의 진전과는 상관없이 북한에 큰 지원을 할 계획임을 밝혀 보수층을 중심으로 한 남한 국민들의 반발을 한층 높이고 있습니다. 지난 5월31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집권 열린우리당이 완패한 것은 대북 정책을 비롯한 노 대통령의 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임이 핵심적인 이유였습니다.

북한 문제 전문가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임을출 교수는 "북한의 핵과 인권 문제 등 국제규범을 무시한 채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은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면서 남한 정부의 대북 교류협력은 국제규범을 반영해 이뤄져야 하며 아울러 일방적 지원의 성격이 아닌 상업적 거래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가운데 남한 내부에서는 핵 문제 등 정치안보 현안이 진전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미국의 대북 강경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노무현 정부 들어 높아진 민족주의 성향과 이라크 침공 등 미국의 공세적 대외정책이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줄곧 미국이 자신들을 향해 호전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협상에 진지하지 않다고 불만을 나타내 왔습니다. 피터 벡 소장은 이같은 북한의 주장에는 분명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고 말합니다.

"힐 차관보, 진짜 훌륭한 외교관입니다. 그러나 지금 직업 두 가지 갖고 있습니다. 아태 담당자하고 6자회담 담당자. 문제는 그 자리는 두 일자리입니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진짜 북한하고 협상하려면 한 사람이 새벽부터 밤까지 해도 시간이 모자란데...94년 제네바 협상을 보면 수백시간을 준비했는데 동북아 뿐아니라 동남아까지 담당하는 차관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동아일보 김승련 기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이 전세계 전략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이란 핵이나 이라크 전쟁과 같은 우선순위가 북한보다 앞설 수 있는 굵직한 사안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덜 쏟아진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고든 플레이크 소장은 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데 있다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달 말로 예정된 북한 방문 중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안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남북 사회 문화 경제적 관계를 진전할 수 있는 폭이 제한돼 있습니다. 해야 할 말씀이 6자회담에 다시 나와서 이 어려운 핵 문제나 안보 문제를 해결해야만 우리 남북관계를 계속 진전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의 시각이죠."

역사적인 6.15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 6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감격과 흥분은 깊숙히 가라앉았고, 핵과 미사일 등 핵심 현안 외에 새롭게 불거진 인권과 탈북자, 위조지폐 제조 의혹 등 불법행위와 관련한 북한의 비타협적 태도는 완강합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북한의 태도가 한-미 동맹관계는 물론 정상 간에 합의한 남북관계의 진전에도 갈수록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우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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