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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탈북자 "나오미"의 미국 생활 2주


미국이 북한 인권법 제정이후 처음으로 받아들인 탈북자 6명이 23일 로스엔젤리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뉴욕에서 본격적으로 정착을 시도할 예정입니다. 이 시간엔 이들 탈북자가운데 인신매매와 중국인과의 강제 결혼, 체포와 강제북송 그리고 북한 재탈출 등 가장 극심한 고난을 겪었던 나오미씨로부터 지난 2주간의 미국 생활에 대한 느낌과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들어보겠습니다. 나오미씨는 대담에서 중국에 거주할때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의 애청자였으며 방송을 통해 이번 미국 입국을 주선한 천기원 목사를 알게됐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워싱턴 근교에서 나오미씨를 만났습니다.

문: 미국에 입국한지 2주째를 맞고 있다. 느낌이 어떤가?

나오미: 자유를 찾은 느낌이 너무 좋다. 기쁜 마음을 일일이 표현할 길이 없다. 북한에서 교육받을때는 미국에 대해 너무 좋지 않은 것만 배워서 인식이 좋지 못했다. (중국에 살면서) 그저 잘살고 자유로운 나라란 것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여기 와서 체험해 보니까 미국인들이 친절하고 남을 많이 도와주려는 것 같다. 상상하고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뉴욕과 워싱턴의 건물과 도시를 보니까 환경보호가 너무 잘돼있는것 같다. 뉴욕은 고층 건물이 빼곡히 들어차서 복잡하기도 했지만 자유를 찾은 느낌에 (보는 것들이 모두) 좋았다.

문: 미국땅에 첫 발을 내딛었을때의 느낌은?

나오미: 우리가 중국에서도 그렇고 3국에 도착해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할때까지만해도 정말 마음을 조였다. 미국땅에 도착해야 자유를 찾았다는것을 느낄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미국땅에 도착하는 순간 ‘내가 정말 자유의 땅에 왔는가?’ 하는 생각…..믿어지지 않았고…정말 꿈만 같았다.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기자: 지난 과거의 시간을 뒤돌아봤을때 만감이 교차할것 같다. 나오미: 지금은 생각하기조차 싫다. 돌이켜보기 싫다. 북한에서의 생활은 이루 말할수 없다. 우리는 북한에서 오직 사회주의가 제일이란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식량이 너무 바빠서 (결국) 중국으로 넘어왔다. 처음에는 친척들의 도움 받고자 나왔다. 중국에서 먹고 사는것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정말 인간다운 삶이란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힘들게 살았고…돈에 팔려갔으니까.. 그리고 탈북자란 신분때문에 어디가서 일해도 월급을 못받고….(중국인과) 가정을 꾸리고 살아도 남편하고 (대화할때) 사소한 일까지도 탈북자란 신분을 트집잡고..그래서 엄청 힘들었다.

문: 중국에 있을때 미국의 소리 방송을 자주 청취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듣게 됐는가?

나오미: 미국의 소리 방송을 듣기 시작한 해는 2000년부터다. (중국에 살면서) 텔레비젼도 없고 너무 고독해서 라디오를 얻어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른 주파수는 다 중국말이 나오는데 한 (주파수에서) 조선말 방송이 나와 너무 반가운 마음에 듣기 시작했다. (특히) 방송에서 탈북자들의 체험 스토리가 마음이 많이 와 닿았다. 매일매일 관심을 갖고 들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수기를 들으면서 한번은 몽골을 통해 남한으로 간다는 얘기를 듣고..나도 갈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희망을 가졌다. 그런 와중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단체들의) 이름(주소)을 듣고 친척에게 부탁해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많은 교회 이름이 있어서 이리저리 찾다가 나중에 두리하나 선교회를 선택해 접촉을 했다.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이 나의 미국행에 큰 도움이됐다.

문: 방송을 들으면서 어떤 프로그램이 가장 인상적이었나?

나오미: 탈북자들을 위해 뒤에서 숨은 노력을하는 분들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느끼는것이 많았다. 그때 천기원 목사와 여러 인권 운동가 선교사분들이 탈북자를 돕다가 감옥에 투옥되고 고생하는 이야기, 또 석방됐다는 얘기를 방송을 통해 들었다. 그러면서 진짜 이분들이 우리를 위해 큰 일을 하는 분들이구나..하는 것을 느끼고 큰 힘을 얻었다. ‘우리 탈북자들이 매일 이렇게만 사는것은 아니구나 이런 도움의 손길이 있구나’하는 것을 그때 느꼈다. 방송의 힘이 크다는 것을 그때 느꼈다. 정말 (방송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나를)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문: 북한에서 외부 방송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가?

나오미: 전혀 생각도 못했다. 거기 사상에 너무 젖어있어서 텔레비젼도 그렇고 (외부)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그런 것을 듣거나 전파하면 정치범이 되니까 상상도 못했다.

문: 남한과 미국중 어디로 갈까? 고민이 많았을것 같다.

나오미: 당연히 고민이 많았다. 미국이란 땅은 탈북자들이 많이 밟아본 땅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난민으로서는) 처음이고. 한국은 탈북자들이 너무나 많이 들어가고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실패한 사람도 엄청 많고, 정착을 제대로 못해서 한국인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지 않은가? 중국에서 항상 라디오를 듣고 오기 전에 인터넷을 배워서 소식을 접할수 있었다. 이곳에 오기전에 천기원 목사가 미국과 한국 가는길이 있으니 스스로 선택하라고 했다. 미국가면 (남한 처럼) 정착금도 없고 집도 없고 스스로 열심히 살면 사는 만큼 생활이 보장되는 사회다! 한국은 정착금도 주고 임대주택도 제공하고….. 그런 (장단점을) 설명해줬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질은 몇년 쓰면 다 없지 않은가? 그러나 미국에 가서 정말 열심히 살면 그만큼 노력한 대가가 있으니까…그런 생각에 미국을 택했다. 물론 인권도 보장이 되니까.

문: 이제 미국에 정착해 살아야한다. 어떤 소망을 갖고 있는가?

나오미: 어깨가 무겁다. 우리 6명이 처음으로 (난민 지위를 받아 ) 정착을 하기 때문이다. 기대하는 분도 많고 도와주려는 사람들도 많다. 돈이나 물질보다 우리가 잘 정착할수 있도록 방식을 알려주고 일자리를 알선하고 기술을 가르쳐주려는 사람이 많이 어깨가 무겁다. 그러나 북한이나 중국같이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살아봤고 하니까..그런것을 이겨나갈 힘과 용기가 있다. 중국에는 많은 탈북자들이 아직도 수모를 받으며 힘들게 살고 있다. (인신매매를 당하고 북송 경험이 있는 ) 나보다 더 험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은 내가 조건이 되지 못하지만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도우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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