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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북한에 "많은 양보" 시사 - 남북정상회담 제의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반 년이 넘게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금융제재와 인권 문제 제기 등으로 북한에 대해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하겠다며 사실상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9일 몽골 방문 중 울란바토르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가진 동포간담회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다양한 구상을 내비쳤습니다. 그가 밝힌 구상은 그동안 정부의 각종 정책으로 드러난 내용보다 훨씬 더 전향적인 것이어서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다음달로 예정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거론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 전 대통령과 만나면 북한도 융통성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싶어 상당히 기대를 갖고 있다"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많은 양보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많은 양보'를 언급한 이유에 대해 "서로가 옛날에 싸운 감정이 있고 불신이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이 경제적으로도 부유하고 자연히 군사력이 세니까 혹시 북한 정권이 무너지기 바라거나 그쪽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는데, 그 불신이 있는 동안은 어떤 관계도 제대로 진전이 안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또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연연해 하지 않겠다'고 했던 지금까지의 입장과는 달리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분명히 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저는 북한에 대해 완전히 열어놓고 있다"면서 "언제 어디서 무슨 내용을 얘기해도 좋으니 만나서 얘기해보자"고 말했습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방북 사실을 거론하면서 "미국과 주변국가들과의 여러가지 관계가 있어 정부가 선뜻선뜻 할 수 없는 일도 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길을 잘 열어주면 저도 슬그머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6자회담 등과 관련한 현재의 지체상황을 타개하고 필요한 진전을 이뤄내기 위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장관은 또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는 발언과 관련해서는 "대북 지원과 관련해 뭔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들이 있지만 그런 것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노 대통령의 몽골 발언이 있은 당일 남한의 재계 지도자들과 함께 남북이 합작으로 건설한 개성공단을 방문했습니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개성공단은 계속 추진할 것"이라면서 "한반도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남북한은 이 사업을 결코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장관의 이런 발언은 최근 미국 내 일각에서 개성공단이 남한 정부에 의한 또다른 형태의 `대북 퍼주기' 란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나온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 내에서는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북한 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 혹은 실마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진지하게 논의됐다고 한국의 연합통신은 보도했습니다. 노 대통령과 이 장관의 발언은 정부 내 이런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많은 양보'와 `조건 없는 남북 정상회담' 발언은 즉각 한국 내 보수적 여론의 강한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일부 언론은 사설을 통해 `일방적 퍼주기를 본격화하겠다는 뜻으로 들리며, 남북 정상회담도 원칙없는 구걸일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경제 전문지인 매일경제신문은 "대북 지원은 작년 한 해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제외한 공식 규모만 2천138억원에 달했지만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 것은 별로 없다"며 "북한 문제를 푸는데 한-미 공조체제보다 퍼주기 정책이 더 효과적이었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국민일보는 "노 대통령의 `많은 양보' 발언에 대해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제안은 없다'고 했지만 도무지 믿을 수 없다"면서 "상호주의를 포기한 지 오래인 이 정부가 무슨 제안인들 못하겠는가"라고 혹평했습니다.

반면 진보적 언론인 경향신문은 "노 대통령이 한반도 안정과 남북관계 발전이라는 절박한 심정에서 사실상 마지막 카드인 정상회담 개최라는 승부수를 띄웠다"면서 "정치권이나 일부 언론이 노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문제삼아 발언의 본뜻을 훼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 신문도 지적한 노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표현' 자체만으로도 이미 껄끄러운 한-미 관계의 불협화는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특히 북한이 개성공단 및 금강산 개발에 동의한 것을 남침 포기로 간주하는 듯한 발언, 그리고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을 불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 발언은 미국을 크게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한 외교 전문가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발끈할 소지가 다분하다"면서 "노 대통령이 다시 할 말을 하겠다는 집권 초기의 대미관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 신문은 그러나 노 대통령이 정부로서 할 말을 했다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연세대 김기정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한-미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겠지만 미국 정부도 남북한의 해빙무드가 동북아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가 미묘한 시점에 나온 노 대통령의 이번 몽골 발언은 남한 내 보수와 진보 간의 대립각을 더욱 날카롭게 하면서 한-미 관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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