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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 북한, 제 13차 남북이산 가족 상봉식에 참여자 최종명단 교환


한국과 북한은 지난 9일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오는 20일부터 25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리는 제 13차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여할 200명의 최종 명단을 교환했습니다.

이번 상봉에 참여하는 200명 가운데에는 형제자매간의 만남이 모두 129명, 부부와 부모, 자식 등 직계가족은 46명으로, 고령이산가족의 사망 등으로 부모 자식 등 세대간의 상봉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시간에는 가족상봉을 1주일여 앞두고 있는 한국의 상봉예정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서울: 네 서울입니다.

VOA: 전쟁 때 헤어진 이산가족들이 많으니까... 이제 햇수로 56년만의 만남이 되는 군요

서울: 그렇습니다. 불과 몇 년만에 만나도 달라져서 못 알아보겠다는 것이 의례적인 인사이기도 한데요. 50년 넘는 세월 목소리 한번 못 들어 보다가 마주서면 무슨 말부터 하게 될까..뭐라고 말할 수 없는 심정일 것 같습니다.

VOA: 상봉예정자들의 명단을 보니까 점점 9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줄어들고 있네요.

서울: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산가족의 아픔을 시간의 해결에만 맡길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상봉대상자 선정은 한국의 전체 13만 이산가족 가운데 상봉 신청을 기다리고 있는 3만1천명 가운데 고령자와 직계가족을 우선으로 한 컴퓨터 추첨으로 이루어 지는데요. 남측 방문자 100명 가운데 90세 이상이 단 8명이고 최고령자 역시 90대 초반이라고 할 수 있는 93살입니다. 이런 상황은 북측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한국이 90세 이상 80대 70대 60대로 구분한 것에 비해, 북측은 상봉명단을 아예 80세 이상, 70대, 70대 미만으로 나누고 있는데요. 최고령자가 85세의 리광우氏인 것을 보면 남북한 모두 고령 이산가족의 만남은 앞으로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실정인 것 같습니다. 남측 이산가족가운데 서울에 사는 85살 권오중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아이고 말도 말아요. 세상에 눈물로 살았어요. 눈물로 살고 이렇게 살다보니까 그래도 때가 오네요. 때가 왔기 때문에 이번에 만나보나 봐요. 5남매인데.. 다 죽고 여동생 하나하고 남동생 하나만 살았나 봐요. 12살 10살 이랬던 사람인제... 60년만에 만나는 거예요..."

VOA: 헤어질 때 12살 10살이었던 어린 동생들을 모습이 아니라 칠십 노인이 된 것 보면 세월을 실감할 수밖에 없겠네요.

서울: 그렇습니다. 권오중 할아버지~ 연세가 있으셔서 전화통화가 쉽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묻기도 하고, 또 들리는 소리가 작으니까 당신 소리가 되려 커져서 힘이 부쳐 들리기도 했습니다. 들으신 대로 북한에 있는 동생이야기만 꺼내도 할아버지 목소리에 눈물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VOA: 금강산에서 2박3일간의 일정이 할아버지에게 무리가 도지 않을까요... 긴장도 많으실테고 또 가족을 만난 뒤 정신을 놓아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지 않습니까?

서울: 그렇습니다. 다행히 권 할아버지의 경우는 북측 가족들이 할아버지을 찾는 경우여서 아드님이 동행할 수 있습니다. 평생 두고 온 가족을 만나는 것이 할아버지의 소원이었지만 행여 만나는 기쁨보다 오히려 마음의 충격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이 가족의 마음입니다. 지난 주말 상봉대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서 보고 싶은 마음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면서 목이 메였습니다.

"아이고 그것을 말로 어떻게 해요. 이루 말로 다 못해요. 요즘에 잠 못자요. 그런데 내가 눈이 잘 안보여요. 눈이 안보여서 우리 큰 아들하고 같이 갈려고 그래요. "

VOA: 이산 1세대들의 고령화~ 정말 빨리 해결되어야 할 문제네요... 만나고 싶어 하는 이산가족들은 많고 만나는 기회도.. 한번에 만날 수 있는 인원도 제한되어 있구요.

서울: 그렇습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시작되기 전인 2000년에 8월 전에 비하면 상당히 진전된 것이지만 지금처럼 한번에 100명씩만 만나게 된다면 언제 10만명 가까운 이산가족의 소원을 들어 줄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VOA: 이번 남측 상봉자 가족 중에 북측가족을 두 번씩이나 만나게 된 경우도 있다구요.

서울: 그렇습니다. 경기도에 사는 73살 강금란씨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VOA: 상봉행사 대상자로 선정되는 것만으로도 부러워하는 이산가족들도 많지 않습니까?어떻게 두 번씩이나 북측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인가요?

서울: 네. 가족들간에 다른 세대가 이루어져 있는 경우, 독립된 이산가족으로 인정되고 관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으로 피난올 때 함께 내려온 남매가 각기 가정을 이루고 있는 경우 독립된 세대가 되지요. 그래서 강금란 씨의 경우도 경기도에 사는 남동생과는 별도로 이산가족 등록이 되어 있었는데요. 먼

저 지난해 여름 강씨의 남동생이 컴퓨터 추첨을 통해 북측 동생을 만났고, 이번에는 강금란 씨가 다시 대상자로 선정 된 것입니다. 가족들도 혹시 뭔가 잘못된 일이 아닌가 해서 몇 번이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그렇지요. 그건 당연하죠. 그래서 내가 자꾸만 사무착오가 아닌가 물어보니까 (적십자사에서) 가기 싫으냐고 해서 아니 형제간에 만나는데 가기 싫을 리가 있느냐. 안 믿기지요. 한 가족이 1년에 아니 반년동안에 두 번씩이나 만났는데 안 믿기지요."

VOA: 아무리 핏줄이고 가족이라도 50년 넘는 세월 만에 만난다면 참 서먹서먹하기 마련인데...이번에 나오는 잘 있다는 소식도 듣고, 또 사진도 보고 했으니까요.... 참 복이 많은 가족이네요.

서울: 부러우실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가장 이산가족들의 가장 이상적인 만남이 이런 모습이 아닐 까 합니다. 만난 뒤에 언제나 EH 만나게 될지 기약없는 이별을 하고 또 편지도 자유롭게 왕래 하지 못하는 일회성의 만남이 아니라 최소한 명절 때 만이라도, 혹은 몇 년에 한번씩의 만남이라도 이제는 못만날것이라는 마지막의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는 자주보자라는 반가운 만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금란씨는 벌써 동생을 만난 듯 목소리가 아주 가볍습니다. 12살이었던 동생이 지금은 69인데 아직도 귀여운 동생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56년이요. 동생이요. 남동생 하나하고 장조카하고 조카딸이요. 여자같이 싹싹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귀여운 동생이었어요. 이번에 가서 사진 찍어 온 것 보니까 너무 늙은 할아버지가 되어 있더라구요. ... "

VOA: 이산가족들의 목소리가 늘 이분 같다면 이산의 아픔이라는 말도 필요가 없겠지요...

서울: 늘 같을 수는 없더라도 이런 즐거움이라도 있으면 분단의 아픔을 잠시나마 잊고 지낼 수 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도 이번 상봉 대상에 속해 방북교육 등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방을 꾸리는 마음이 그럴 것 같습니다. 20일 금강산에서 북측가족들과 만나는 남측 신청자들이 하루전인 19일 속초 설악한화 콘도에서 금기사항이나 주의 사항 등 방북교육을 받게 되구요.

북측 가족들에게 전할 1~2개의 가방은 이동의 편리를 위해 먼저 금강산 상봉장소로 실어 보내게 됩니다. 대한적십자사에서는 북측가족들에게 전할 선물에 사항도 구체적으로 안내를 하고 있는데요. 생필품 등 선물을 적당한 크기의 1~2개의 가방에 담도록 하고 현금은 미화 500달러 정도가 적당하다고 안내를 했습니다만 강금란씨는 그런 내용은 그저 참고사항일 뿐입니다.

"궁금하고 설레는 마음은 이루 말로 못하죠. 최대한 갖다 주고 싶어서 이민용 가방으로 셋을 사다놨는데 어제께 아들이 와서 보더니 이걸 어떻게 싣고 갈려고 사놨냐고 해서 어떤 방법으로든 싣고 가자 내가 그랬더니....아! 즐겁지요. 그리고 내가 평생 동안 동생한테 뭘 좀 남겨주고 죽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내가 가지고 가고 싶은 만큼 가져가니까 그래도 내 마음이 좀 편하지요. 공식적으로 쓰는 돈이 1500불이거든요..."

VOA: 이민가방이라면 탑처럼 쭉쭉 늘어나는 가방 아닌가요? 그 가방 속에 무얼 담으셨을까요?

서울: 이것 저것 동생한테 주고 싶은 것 다 담으신 모양입니다. 하고 싶은 대로 담아서 마음이 편하다고 하시는 것을 보면서 가방속 물건들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더니 신발, 옷, 이불, 설탕, 라면. 초콜릿도 있구요. 북한에서 귀하고 필요한 것이라면 다 들어있다고 하는데.. 왠만한 살림집의 이사 가방이 아닐 까 하구요. 거기에는 어머님의 임종을 지킨 동생에 대한 고마움과 누이로서의 미안함도 담겨 있는 듯 했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야.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동생이 고생했으니까 수고 했다고 말하고 싶고.. 물어보고 싶은 것 마음대로 다 물어볼 수 가 없잖아요. 이념이 다른 곳에 사니까 마음대로 못 물어보지요."

서울: 일각에서는 실향민의 극소수인 겨우 100명씩의 만남을 가지고 짧은 만남 뒤에 긴이별이 자명한 일에 흥분하고 감동하는 것은 어느 면에서 보면 참 처량한 노릇이라고 자조섞인 말을 하기도 합니다. 분단 55년에, 615남북공동선언 여섯해가 될 때까지도 속 시원히 해결되지 더 많은 수의 이산가족 실향민이 있기 때문인데요. 73의 나이에도 소녀같은 웃음을 보이는 강금란 할머니처럼 남북이산가족의 모두에게도 만남과 설렘의 기쁨이 있었으면 합니다.

"할머니라고 부르면 안 되지... 나, 17살 단발머리 학생으로 피난 나왔는데...우리 동생 12살로 돌려주고 나 17살로 돌려달라고 하니까 (적십자 직원이) 막 웃더라구요. "

지금까지 서울에서 전해드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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