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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솔리대리티 운동 25주년 - 자유노조 혁명의 원천과 그 결과 (영문+비디오, 관련기사 참조)


폴란드의 자유노조, 솔리대리티가 공산주의 정부로부터 합법적인 노동자 단체로 인정받은지 31일로 25주년이 됐습니다. 1980년 8월 31일, 당시 공산주의 폴란드 정부가 자유노조를 합법단체로 승인한 것은 공산주의 세계에서 전례가 없던 일로 일부 역사가들은 이를 중부 유럽과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체체를 종식시키게된 단초가 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폴란드 자유노조 혁명의 원천과 그 결과들을 전문가들의 견해와 함께 재조명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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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그단스크 조선소 노조연대, 솔리대리티는 당시 37세의 젊은 전기공 레흐 바웬사의 주도로 2주일 동안 파업을 벌인끝에 공산주의 정부 대표들과 수도, 바르샤바에서 역사적인 합의문에 서명했습니다.

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들은 근로조건과 생활여건 개선을 주장하며 항의시위를 벌였었습니다. 솔리대리티의 항의시위는 바웬사와 그 동료 노동자들에 의해 시작됐지만 곧 지식인들과 예술인들 그리고 가톨릭 신자들과 갓 결성된 폴란드 민주야당이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당시 폴란드 주재 미국 대사였던 댄 프리드 국무부 차관보는 솔리대리티의 항의시위를 회의적이고 신중한 시각으로 지켜봤었다고 회상합니다.

“ 당시 우리는 어떤 역사적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예감 같은 것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감스럽지만 저자신을 포함한 많은 미국인들은 1945년 세계대전 종전으로 형성된 냉전현실이 장래의 세계인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

그러나 폴란드의 공산주의 정부가 노동자의 자유로운 단체결성 권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요구사항들을 인정하기로 합의하자 자유노조의 시위를 지켜보던 불안과 우려의 눈길은 경의와 희망의 눈길로 변했습니다. 폴란드 정부는 또한 언론매체에 대한 검열완화와 종교의 자유보장, 민주주의 활동가들에 대한 처벌중단을 약속했습니다.

댄 프리드 차관보는 그런 변화를 목격하면서 공산주의는 영원하지 않을른지도 모른다는 것을 느끼게 됐었다고 말합니다.

“ 그단스크 합의타결 소식이 들려온 것은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되돌이켜 보면 솔리대리티의 의미와 그것이 표방하고 성취해낸 것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성숙됐습니다. 솔리대리티 운동은 애국심과 노동자들의 권리, 공산주의에 대한 도덕적 거부와 민주주의 운동을 동시에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노동자들과 지식인들을 하나로 결속시켰고 폴란드라는 나라를 하나로 뭉치게 했던 것입니다. ”

그렇다고 폴란드 공산주의 정부가 투쟁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폴란드 공산당 제1서기 보이체흐 야루젤스키는 1981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솔리대리티를 해산시켰으며 대부분의 노조 지도자들을 체포했습니다. 그러나 폴란드 정부는 완전한 통제를 장악할 수 없었고 솔리대리티는 지하활동으로 정부에 대항하면서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정권을 약화시켰습니다.

그후 폴란드 공산주의 정부는 마침내 권력의 일부를 포기하는데 동의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뒤에 솔리대리티의 지도자 레흐 바웬사가 2차 세계대전 종전후 폴란드 최초의 민주주의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돼서 여러 나라들의 공산주의 정권들이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폴란드의 솔리대리티는 한 세대가 지난 오늘 날 그단스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우크라이나와 이란 같은 나라들에서 하나의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2004년 12월에 오렌지 혁명이 펼쳐졌습니다. 당시 현지에서 혁명과정을 목격했던 동유럽문제 전문가 야로슬라브 마르티뉴크씨의 말입니다.

“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솔리대리티는 어떤 면에서 21세기 민주주의 운동의 단초였습니다. 공산권 국가였던 그루지아에서 장미혁명이 일어났고 우크라이나에서 오렌지 혁명이 전개됐습니다. 그리고 그보다는 덜하지만 레바논에서 백향목 혁명이 일어났는가 하면 키르기스스탄에서 튤립혁명이 펼쳐졌습니다. 물론 신세대들은 이런 사태를 개별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을 보이고는 있지만, 솔리데리티는, 대중의 단결과 결단력이 범죄적이고 부패한 독재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준 출륭한 표본이었습니다..”

폴란드의 솔리대리티는 오늘 날 이란에서도 민주주의 활동가들의 본보기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솔리대리티는 비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자유를 성취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있습니다. 이란의 반이슬람 시위에서 솔리대리티가 하나의 영감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만 지역 전문가인 샤리아르 아히 박사의 말입니다.

“ 한 가지 예로 이란의 민주주의지도자 아흐마드 바테비가 펼치는 운동의 면모에서 솔리대리티가 본보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999년 이란 학생운동에서 나타난 상징들과 기치들 그리고 시위학생들이 웨치는 구호등을 보면 솔리대리티로부터 시작된 독재정권에 대한 비폭력 저항운동의 거대한 운동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폴란드는 현재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와 유럽연합의 새 회원국으로 가입한 가운데 18퍼센트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과 함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재정권에 저항해 승리를 거둔 보통 사람들의 솔리대리티 혁명정신은 폴란드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먼 지역에서도 똑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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