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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과 비난" 젠킨스 귀향에 엇갈리는 고향 사람들의 반응


1965년 주한 미군으로 복무하다 탈영해 월북한 찰스 젠킨스 씨가 40년 만에 고국땅을 밟았습니다. 젠킨스 씨는 일본인 아내 그리고 두 딸과 함께 14일 이곳 워싱턴에 기착했다가 곧바로 노스 캐롤라이나주 웰던에 있는 누이의 집으로 비행해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들과 상봉했습니다.

이에 관한 좀더 자세한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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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아내 소가 히토미 씨와 미카, 브린다등 두 딸과 동행한 올해 65살의 찰스 로버트 젠킨스 씨는 고향인 노스 캐롤라이나주, 리치 스퀘어에서 서북쪽으로 30마일 떨어진 웰던에 있는 누이 자택에서 91살의 노모와 상봉했습니다.

젠킨스 씨는 91세의 어니와 또 가족들과 상봉한 뒤 밖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매우 기쁘다며 연세가 많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한번 만나보기 원했다면서 일본에서 미국까지 오게 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젠킨스 씨가 사생활 보호를 요청함에 따라 이들 모자 간에 어떤 대화가 이루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965년 1월, 25세의 젠킨스 씨가 남북한을 가르는 비무장지대에서 순찰 활동을 벌이던 중 실종됐을 당시 젠킨스 씨 고향의 많은 주민들은 그가 북한에 의해 납치됐을 것으로 믿었으며 미군 당국이 그로부터 2주후 탈영 월북했음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젠킨스 씨가 강제로 월북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일부 주민들은 떨쳐버리지 못했습니다.

젠킨스 씨가 탈영한 것으로 믿는 일부 주민들은 젠킨스 씨의 귀향에 반대하는 시위를 고려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나 젠킨스 씨가 정작 웰던을 방문했을 때 시위자들은 보이지 않았으며 마침 국기의 날을 맞아 시내 거리에는 성조기들이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사실 현지 주민들 대부분은, 텔레비전 방송사 취재진들이 도착할 때까지 젠킨스 씨의 고향 방문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웰던 주민들은 젠킨스 씨의 방문에 대해 일반적으로 분노와 무관심을 나타냈으며 일부 주민들은 비난과 동정심의 엇갈린 감정을 보였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과거사는 잊어야할 일이라면서 그가 북한에서 생활하는 동안 충분히 벌을 받았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 반면에 젠킨스 씨에 대해 ‘매국노’라고 비난하면서 총살당했어야 했다고 말하는 주민도 있었고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여했던 한 재향군인은 젠킨스 씨가 스스로 월북해 그곳에서 생활함으로써 조국을 실망시켰다는 이유를 들면서 젠킨스 씨의 미국 방문은 허용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주민들은 수십년 동안 자식의 행방을 모르고 지내는 부모의 심정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느냐면서 적어도 젠킨스 씨의 모친에 대해 보다 동정적이었습니다.

40년 전에 월북했던 젠킨스 씨는 북한에서 젊은 장교 후보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도록 강요받았으며 북한의 일부 정치선전 도구로도 이용돼 왔습니다. 그후1978년 북한 요원들에 의해 납치됐던 일본인 소가 히토미 씨와 1980년에 결혼했습니다.

소가 히토미 씨는 수십년이 지난 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북한의 김정일 국방 위원장간 정상회담 이후 2002년 10월 다른 4명의 피납 일본인들과 함께 귀국이 허용됐습니다.

그러나 젠킨스 씨는 미국 당국에 의해 체포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두 딸과 함께 북한에 계속 거주했다가 부인 히토미 씨를 만나기 위해 지난 해 두 딸과 함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갔다가 미군 당국에 자수할 것을 결심하고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젠킨스 씨는 지난 해 군법 회의에서 탈영 및 적을 도와준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금고 30일과 불명예 제대 판결을 받은 뒤 기나긴 탈영병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젠킨스 씨는 당시 재판에서 베트남으로 파병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탈영했으며 그 같은 행동은 실수였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자서전을 집필중인 찰스 젠킨스 씨는 오는 22일 가족과 함께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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