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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관심끄는 워터게이트 사건 - 그 배경과 의미 (영문 + 오디오 관련기사 참조)


미국에서 ‘딥스로트’로 알려져온 신원미상의 제보자의 정체가 공개되면서 지난 19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추락시킨 이른바 워터게이트 추문사건에 대한 관심이 또 다시 고조되고 있습니다. VOA 특파원이 전하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자세한 배경과 그 의미에 관한 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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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6월 이곳 워싱턴, 포토막강변에 자리한 최고급 아파트건물, 워터게이트안에 있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사무실 불법 침입 사건으로 시작됐습니다. 체포된 절도범 다섯 명 가운데 일부는 당시 닉슨대통령의 백악관과 연관이 있음이 들어났습니다.

미국의 유력신문 워싱턴포스트지의 초년병 기자였던 우드워드 기자와 번스타인 기자는 닉슨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백악관의 워터게이트 침입 사건에 대한 연관성을 은폐하려 시도했고, 또 당시 야당인 민주당을 대상으로 정치적 기만술책을 사용했음을 파헤쳤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물러나지 않으려고 2년을 버텼지만 결국 1974년 8월, 미국 대통령 역사상 처음으로 임기를 마치지 못한채 대국민 사과연설을 행하고 사임했습니다.

“미국인들은 미국의 대통령이 협잡꾼인지 아닌지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저는 협잡꾼이 아닙니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은 지금까지 제힘으로 힘껏 노력해서 얻은 것입니다”

닉슨에 이어 제럴드 포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고 포드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야기된 정치적 상처를 신속하게 치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나라의 긴 악몽은 끝났습니다. 미국의 헌법은 제 기능을 합니다. 미국인들의 위대한 공화국은 사람들의 정부가 아니라 법치에 의존하는 정부입니다. 미국에서는 국민이 통치자들입니다.”

워터게이트 침입사건의 범인들은 닉슨 대통령 재선 진용으로부터 돈을 받은것이 들어났고, 이는 그후 연방의회가 선거자금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게된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또, 1963년 존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시작으로, 인기없었던 베트남전쟁을 치르면서 극에 달했던,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10여년에 걸친 환멸을 매듭지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워터게이트사건에 뒤이어, 지금까지, 미국의 역대 대통령과 의회는 정부에 대한 미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합니다.

이제 딥스로트의 정체가 연방수사국 FBI의 전 관리 마크 펠트로 확인되었다는 것은 30여년간 오래동안 지속돼온 워터게이트 시대의 수수께끼중 하나가 풀렸음을 의미합니다.

딥스로트는 워싱턴포스트 신문의 밥 우드워드 기자와 칼 번스타인 기자가 워터게이트아파트 건물에 있었던 민주당 전국 위원회 본부사무실에 대한 1972년 불법 침입 사건에 백악관이 관련되었다는 설의 진위를 파헤치는 과정에 핵심 제보자로 인용한 익명의 정부 소식통을 가리키는 별명이었습니다.

변호사이자 펠트 가족의 친구인 존 오코너씨는 이번주초, 미국잡지, ‘배너티페어’에 딥스로트의 정체는 곧 [마크 팰트]씨임을 폭로한 기사를 기고했습니다.

“팰트씨는 밥 우드워드기자를 신뢰했습니다. 팰트씨는 이 사건에 대한 당국의 수사가 집권층의 방해를 받지 않고 순리대로 지속되려면 그 조사과정에 자유 언론의 빛을 조명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드워드 기자와 번스타인 기자는 펠트씨와 팰트씨가 사망한 뒤에야만 정체를 밝히겠다는 사전 약속 을 했기 때문에 30년이상, 제보자의 신원에 대한 비밀을 지켜 왔습니다.

마크 펠트씨의 손자 닉 존스씨는 최근 몇 년 간 가족들이 할아버지에게 신원을 공개하도록 설득했다고 밝혔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신원을 공개하는 것과 이 행동이 전직 FBI 요원으로써 적절한 일인가에 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왔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최근 제 어머니에게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딥스로트를 그동안 범죄인으로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그를 영웅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연방수사국, FBI 부국장이었던 마크 펠트씨를 영웅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에게 오랫 동안 충성했던 측근들 가운데 상당수는 워싱턴포스트 신문을 도와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팰트씨를 배반자라고 규정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연방 정부운용방식을 개혁하는데 매우 광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딥 쓰로우트, 마크 펠트씨는 정부의 불투명하고 불법적인, 부당한 행동에 일반인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사람들을 일컫는 이른바 ‘휘슬블로워’의 초기 본보기가 됐습니다. 미국에서는 이제, 모든 휘슬블로워들이 직접 체험적으로 접했던 제도적 모순과 부당성을 공개할때, 당국의 합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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