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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퍼슨 후임 매디슨 대통령, 영국과의 전쟁위협에 직면



1808년 버지니아의 제임스 매디슨이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그는 토마스 제퍼슨의 뒤를 이어 2차를 연임했습니다. 매디슨의 첫 4년 동안은 평탄했습니다. 그는 제퍼슨이 해결하지 못했던 외교 문제, 즉 영국과의 긴장 관계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2차 임기 4년은 어려웠습니다.

제임스 매디슨은 1809년 3월 4일 워싱턴에서 취임했습니다. 워싱턴 시민은 즐겁게 새 대통령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새 대통령이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미국 주재 프랑스 대사는 그를 별로 중요한 인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디슨은 지적이나 약한 사람이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언제나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 일을 추진하지는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의 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매디슨도 소수의 내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국무장관과 재무장관이 있었습니다. 매디슨은 알버트 갈라틴 (Albert Gallatin) 을 재무장관에 유임시키기로 했습니다. 갈라틴은 누구보다도 국가의 재정 상태를 잘 아는 사람으로 간주됐습니다.

국무장관 임명은 정치적인 고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매디슨은 한 상원의원의 동생인 로버트 스미스 (Robert Smith)를 기용했습니다. 매디슨은 그 자신이 직접 외교를 처리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스미스의 능력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제퍼슨의 외교상 최대 문제는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에서 비롯됐었습니다. 이들 두 나라는 미국의 중립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들 나라는 미국이 상대 국가와 무역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이들 두 나라는 미국의 통상을 방해했습니다. 영국 함정은 가끔씩 미국 선박을 나포했습니다. 제퍼슨은 유럽과의 무역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에 대한 적대 행위를 중지시켜 주지 못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매디슨이 대통령으로 당선될때도 여전히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역 금지를 위해 의회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은 미국이 영국, 프랑스와 교역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매디슨에게, 두 나라중 하나가 미국 선박의 수송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미국도 무역을 재개하도록 조치할 권한을 주었습니다 .

매디슨은 이법이 영국과 프랑스로 하여금 미국의 중립을 인정하게 만들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는 전쟁을 원치 않았습니다. 동시에 독립 국가로써의 미국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도 원치 않았습니다. 매디슨이 취임한지 한달후 미국 주재 영국 대사 데이비드 어스킨(David Erskine) 은 본국으로부터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영국과 미국의 입장 차이를 해결하는 모든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어스킨은 미국이 통상 금지법(Non-Intercourse law)을 철회한다면 영국도 미국 선박 나포를 중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합의를 위해 영국이 제시한 여러가지 조건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한가지 조건은 미국이 프랑스에 대해서는 그 법을 계속 적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것을 위반하는 미국 선박을 영국이 나포할수 있도록 허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스킨은 그같은 조건을 제안 사항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미국에게 그 법을 준수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4월 19일, 매디슨 대통령은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는 미국이 영국과의 무역을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인들은 그같은 합의를 환영했습니다. 대통령에 취임한지 두달도 안돼 매디슨은 전쟁의 불안을 씻어버린듯 했습니다.

미국은 합의대로 6월 10일 영국과 무역을 재개했습니다. 수백척의 선박들이 출항했습니다. 영국과의 관계는 정상을 되찾은듯 했습니다. 매디슨 대통령은 1809년 여름을 버지니아의 산속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가 집에 도착하자 놀라운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영국이 어스킨과 합의한 협정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한 영국 신문은 그 합의가 영국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썼습니다. 이 신문은 어스킨이 지시를 위반했으며 런던으로 소환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새 대사로 프란시스 제임스 잭슨(Francis James Jackson)이 임명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매디슨은 신임 영국 대사가 부임한지 약 한달후쯤 워싱턴으로 돌아왔습니다.

매디슨은 스미스 국무장관이 영국 대사와의 회담에서 아무런 진전도 이룩하지 못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매디슨은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했습니다. 매디슨은 영국이 왜 합의를 거부하는지 정확한 내용을 알려고 했습니다. 매디슨은 양측의 의사 소통을 모두 문서로 작성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더 이상 대화는 없었습니다.

서신이 오고 갔습니다. 그러나 영국 대사는 무슨일이 벌어졌었는지를 만족한 만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서신은 미국이 협상을 정직하게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듯 했습니다. 매디슨은 결국 모든 의사 소통을 단절시켰습니다. 영국 대사는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에 대하는 무역 정책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됐습니다. 1810년초 의회는 그같은 무역을 단속하기 위한 새로운 법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주 동안 토의를 거친끝에 양원은 타협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은 영국과 프랑스에 대한 무역 금지법의 효력을 없앴습니다. 새 법은 어떤 나라와도 무역을 하도록 허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새 법은 대통령에게 영국과 프랑스에 동시에 또는 별도로 무역 금지를 다시 선포하도록 하는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이해에도 미국과 영국의 관계는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매디슨 대통령은 다시 한번 영국과의 무역 금지를 선언했습니다. 1811년 초 미국과 영국의 무역은 다시 중단됐습니다. 그러나 무역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영국이 토착 인디언들을 도와 미국에 저항하도록 하는 것으로 믿는 미국인들이 갈수록 늘어났습니다.

미국인들이 북부와 서부로 진출함에 따라 미국 정부는 각기 다른 인디언 부족들과 협정을 맺었습니다. 이들 협정은 어떤 땅이 인디언 소유이고 어떤 땅이 백인이 정착할수 있는 땅인지를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착민들이 협정을 매번 준수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샤우니 인디언(Shawnee Indian) 추장인 테컴세(Tecumseh) 는 행동을 단행했습니다. 그는 백인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인디언을 규합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부 전역에 걸쳐 미국인들은 카나다에 있는 영국인들이 테컴세의 그같은 운동을 부추기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들은 인디언 조직을 파괴하기 위해 영국과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워싱턴에서는 새로운 의회가 개원됐습니다. 일부 새 의원들은 과거 국회를 장악했던 의원들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이들은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타협보다는 전쟁을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곧 전쟁의 매 (War Hawks) 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새 의회는 신속히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중 하나는 미국 군대를 정규군 2만 5천, 지원병 5만명으로 늘리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미국은 새로운 국무장관을 맞았습니다. 매디슨 대통령은 로버트 스미스의 업무 수행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스미스를 신뢰하지도 않았습니다. 대통령은 스미스가 정부의 제안들을 수용할 것인지에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매디슨은 가까운 친구 제임스 몬로 (James Monroe)가 국무장관직을 맡아주기를 원했습니다. 당시 몬로는 버지니아주 지사로 있었습니다. 몬로는 매디슨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당시 미국은 영국에 대사를 파견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매디슨이 영국과 관계를 끊자 영국 대사 잭슨은 본국으로 돌아갔었습니다. 또 영국에 있던 미국 대표 윌리암 핀크니도 되돌아왔습니다. 두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본국에 보고할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두 나라는 전쟁을 향해 한발 한발 닥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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