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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양당 구조 정착시킨 제퍼슨 대통령


1801년 미국은 토마스 제퍼슨을 새 대통령으로 맞았습니다. 그와 함께 새 정당인 공화당이 정권을 차지했습니다. 이때는 당의 명칭이 공화당(Republican Party)이었지만 나중에는 민주당(Democratic Party)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제 미국은 양대 정당 체제가 됐습니다.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제퍼슨은 자신의 정당인 공화당과 알렉산더 해밀턴의 정당인 연방당의 극심한 대립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연방당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공화당입니다. 우리는 연방당입니다. 몸과 마음으로 하나로 뭉칩시다. 우리의 관계를 평화와 사랑으로 만듭시다. ”

그러나 알렉산더 해밀턴은 그같은 화해의 손길을 뿌리쳤습니다. 제퍼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는 제퍼슨을 공격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해밀턴은 미국의 민주주의 운동에 계속 반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제퍼슨은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연방당원들에게 자신의 정책이 모든 사람을 위해 좋다는 것을 제시할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제퍼슨은 해밀턴과 같은 연방당 최고위 인사들은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퍼슨은 그 아래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데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1801년부터 초기 얼마동안은 제퍼슨에게 있어서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당시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태양아래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없다고 말할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나라에서 이루어놓은 것은 모두 새로운 것입니다. 국민 여론에 의한 힘은 새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기쁜 새로움은 우리가 폭력 없이 정권을 바꾸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우리 공화국에 오래 지속될 미국적 개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출판, 언론, 사상의 자유가 건강한 나라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토론을 하도록 합시다. 토론은 극렬한 논쟁으로 변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논쟁은 언젠가는 지나갈 구름입니다. 그리고 그 논쟁이 끝나고 나면 진실이 등장할 것입니다.”

해밀턴을 제외하고는 연방당 지도자들도 기뻐했습니다. 제퍼슨은 그의 취임사에서 우리 모두는 공화당이기도 하고 연방당이기도 하다고 말했었습니다. 따라서 연방당원들은 제퍼슨이 자신들의 정책을 말살시키려는 생각조차 갖지 않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뉴 잉글랜드의 강력한 연방당 지도자 죠지 캐보트(George Cabot)는 거의 언제나 해밀턴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습니다. 캐보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우리 대통령이 전쟁을 원치 않는 것으로 믿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제퍼슨이 프랑스와 싸우는 영국에 가담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우호적이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그가 정부 요직에서 우리들을 제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아담스 대통령 아래서 국무장관을 역임한 또 다른 연방당원 티모디 피커링(Timothy Pickering)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제퍼슨이 정부 정책에서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려 하지 않는데 만족한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정당인 공화당보다 우리 연방당의 협조를 더 원하고 있다는 점에 만족한다.”

새 정부 출범후 몇주동안 연방당 지도자들은 제퍼슨이 자신들을 두려워 하고 있으며, 자신들에게 굴복하고, 결국에는 공화당 지도자의 위치에서 몰락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어느 연방당원은, 언젠가 제퍼슨은 추한 민주주의자들의 이빨에 물려 그아픔을 느끼게 될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안가 제퍼슨은 공화당원들로부터 그가 연방당에 너무 호의적이라는 불평을 듣게 됐습니다. 이른바 제퍼슨 주의자로 버지니아 출신인 윌리암 가일스(William Gile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나는 대통령의 취임사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대통령의 정책은 옳다. 그 정책은 국민의 의견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나는 대통령의 성공이 그가 어떻게 그 정책을 수행해 나가느냐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그가 연방당에게 화해를 제시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는 그 우호가 허약을 가져오도록 해서는 안된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맨 처음 해야될 일이 행정부를 정화하는 일인 것으로 믿고 있다. 그는 공화당 정책에 적이 되는 자들을 모두 해임해야 된다. ”

제임스 몬로마져도 제퍼슨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강경한 서한을 보냈습니다.

“당신의 연설과 정책은 건실하고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앞에는 심각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하나가 아니라 두개의 정당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인 연방당은 12년 동안 정부를 장악했으며 그 동안 국가를 크게 손상시켰습니다. 그중 일부 연방당원들은 이제 당신에게 부드럽게 말하면서 협력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언제나 협력을 아끼지 않은 수천명의 공화당원들이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연방당원들을 정부에 그대로 둔다면 이들 선한 여러 공화당원들은 당신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될것입니다.”

제임스 몬로의 서한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제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요. 저는 고위직만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연방당이라는 이유로 하위직 관리들까지 모두 해임하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정치적인 소신을 가질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직장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십시요.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이 다른 정치적 의견도 수용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줄수 있을 것입니다.”

연방당과 공화당 지도자들이 제퍼슨에게 정부 요직을 계속 요구하자 제퍼슨은 자신의 내각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즉시 국무장관과 재무장관을 물색했습니다. 제퍼슨의 오랜 친구이자 미국 헌법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버지니아의 제임스 매디슨은 국무장관으로 적합했습니다. 재무장관에는 펜실바니아의 알버트 갈라틴을 선정했습니다. 그는 의회에서 공화당을 이끌어가는 대단히 명석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알렉산더 해밀턴 만큼이나 금융과 경제를 잘 알았습니다.

전쟁장관에는 뉴잉글랜드의 헨리 디어본 장군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해군 장관으로 처음 주목된 사람은 판사인 로버트 리빙스턴이었습니다. 그러나 리빙스턴 판사는 그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제퍼슨은 결국 메릴랜드주 발티모어의 로버트 스미스를 선정했습니다.

제퍼슨 대통령은 이미 뉴잉글랜드 출신 디어본을 전쟁 장관으로 각료에 등용했습니다. 그러나 제퍼슨은 두 각료직을 다시 뉴 잉글랜드 출신으로 채웠습니다. 제퍼슨은 뉴잉글랜드가 전국 어디보다도 연방당 세가 강한 곳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퍼슨은 뉴잉글랜드를 연방당 영향권에서 분리시키기 위해서는 그 지역 출신들에게 각료직을 주는것 보다 나은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제퍼슨은 매사츄셋즈 주의 리바이 링컨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디어본과 마찬가지로 링컨도 미국 혁명의 애국자였습니다. 그는 매사츄셋즈주에서 변호사로 유명했으며 그 지역 공화당의 지도자였습니다.

제퍼슨은 우정국장에도 뉴잉글랜드 출신을 임명했습니다. 우정국은 아직 각료급 기구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편 업무는 갈수록 커지고 있었습니다. 제퍼슨은 기든 그랜져를 우정국장에 임명했습니다. 그랜져는 변호사이며 사업가였고 작가였으며, 코네티커트에서 강력한 제퍼슨 주의의 지도자였습니다.

제퍼슨 대통령의 각료들은 모두충성스럽고 열렬한 공화당원들이었습니다. 연방당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단 한자리도 연방당에 돌아온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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