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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


오늘은 그 첫번째 시간으로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과 그 뒤를 이은 여러 탐험가들의 아메리카 진출 이야기 입니다.

북 아메리카 대륙에 유럽인들이 발을 디딘 것은 약 2000년전의 일입니다. 오늘날의 북 유럽에서 온 레이프 에릭슨 이라는 사람은 그린랜드를 출발해 미 대륙의 북동부 해안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본 신 대륙을 고향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기위해 그린랜드로 되돌아 갔습니다. 그는 신대륙을 Vinland 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후 신 대륙에 새로운 사람이 정착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약 30년전 전문가들은 카나다 동부에서 그린랜드와 아이슬랜드, 노르웨이에서와 비슷한 주거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북 유럽인들이 북미 대륙에 영구히 정착한 흔적은 찾아볼수 없습니다. 기원 천년경, 유럽은 커다란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됩니다. 그 이유중 하는 십자군 전쟁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주로 로마 카톨릭 그리스도인들에 의한 성지 회복 운동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오늘날의 중동으로부터 회교도들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11세기 말경부터 시작해 약 200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중동 지역의 유럽군 진주는 베니스와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 상인들에 의해 장사가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상인들은 군인들을 수송하고 군수물자를 조달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십자군은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양념, 향수, 비단, 철제 물건, 약품등 새롭고 유익한 물건들을 갖고 왔습니다. 그런 물건들은 전 유럽에서 매우 귀중한 존재가 됐습니다. 상거래의 증가는 도시의 성장을 가져왔고, 수많은 유럽의 부호들이 등장하는 요인이 됐습니다. 그같은 여건속에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부강해졌습니다. 이들은 군대와 정부 체제를 강화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들여야 했습니다. 15세기에 이르러 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됐습니다. 유럽 국가들중 처음으로 신대륙 발견에 착수한 나라는 폴튜갈이었습니다. 1400년 무렵이 되면서 폴튜갈은 유럽에서 양념 무역의 주도권을 노리게 됐습니다. 유럽 상인들은 베니스나 아랍 상인들에게 계속 비싼 돈을 지불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이들은 자기들 스스로의 거래망을 형성하려 했습니다. 만약 이런 물건들을 사기 위해 자신들이 직접 아시아로 갈수 있다면, 그 이윤은 엄청난 규모가 될 것이었습니다.

폴튜갈 탐험을 앞장서 추진한 사람은 국왕 죤 1세의 아들인 헨리 왕자였습니다. 그는 바다를 여행하고 탐험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때문에 그는 항해사 헨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헨리 왕자는 전문가들을 폴튜갈로 초빙하고 탐험에 관련된 과학을 연구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별을 공부하기 위해 천문대도 세웠습니다. 폴튜갈 선장들은 배를 몰고 인도와 동 아시아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아프리카 동부 해안을 돌아다녔습니다. 결국 이들은 Cape of Good Hope 라 불리우는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을 발견했습니다. 폴튜갈인들이 양념 무역을 장악하는데는 불과 약 50년의 세월이 소요됐습니다. 이들은 아프리카, 페르샤만, 인도, 그리고 중국에 무역 기지를 건설했습니다. 이들의 성공은 기술의 발달에 힘입은바 컸습니다. 기술 발달의 한가지는 배의 구조였습니다. 개선된 배는 폭풍과 바람을 뚫고 바다를 항해하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콤파스와 같은 그외 발명품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육지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폴튜갈 인들은 현대적인 대포를 설치해 배를 무장했습니다. 이들은 그같은 대포로 회교도들과 동아시아 상인들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다른 유럽 국가들은 폴튜갈의 독점 무역을 언제까지나 허용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디난드 국왕은 이탈리아 항해사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게 선박과 선원과 보급품을 제공해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도록 했습니다.

콜럼버스는 최단 거리로 아시아에 도달하려면 대서양을 서쪽으로 항해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생각은 옳았지만 틀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세계를 실제보다 훨씬 작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또 다른 거대한 대륙이 있고 또 하나의 거대한 대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콜럼버스와 88명의 선원들은 1492년 8월 3일, 세척의 배로 스페인을 떠났습니다. 10월 12일, 이들은 어느 육지에 상륙했습니다. 콜럼버스는 이곳을 산살바도르로 명명했습니다. 그는 이 섬과 그 주변 섬들을 탐험했습니다. 이곳은 오늘날의 쿠바와 히스파니올라입니다.

콜럼버스는 그곳이 인디스(Indies), 즉 인도로 불리우는 동 아시아의 일부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그곳 사람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습니다.

콜럼버스는 세척중 한척에 싣고온 나무로 병영을 짓기 위해 약 40명을 그 섬에 내려놓았습니다. 콜럼버스는 섬에서 잡아온 원주민, 새, 식물, 금등을 갖고 스페인으로 돌아왔습니다.

1493년 3월 그가 스페인에 도착하자 그는 국가적 영웅으로 환대를 받았습니다.

콜럼버스는 5개월후 대서양을 건너 카리브해 지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더욱 많은 인원과 각종 동물, 그리고 히스파니올라에 식민지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각종 장비를 갖고 왔습니다.

그러나 남겨두었던 선원들이 지은 방어용 요새는 흔적도 없이 불에 타 파괴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원들은 한 사람도 볼수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7개월후 콜럼버스는 7척의 배를 스페인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들 배는 더욱 많은 인디언들을 노예로 팔기위해 스페인으로 싣고 갔습니다. 현지 여건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포함해 일부 사람들을 남겨 놓은채 콜럼버스도 스페인으로 돌아갔습니다.

콜럼버스는 1498년 6척의 배로 또 한차례 항해를 했습니다. 이번에 그는 남 아메리카 해안을 보았습니다. 새 식민지에 정착한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에 극도의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결국 콜럼버스는 포로가 된채 스페인으로 실려갔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통치자들은 그를 용서했습니다.

1502년 콜럼버스는 마지막 행해로 일부 사람들이 신대륙이라 불리우는 곳을 탐험했습니다. 그는 1505년 스페인으로 돌아갈때까지 자마이카에서 머물렀습니다.

이들 모든 여행에서 콜럼버스는 섬과 물길과 인도로 가는 행로를 찾기위해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인도로 가는 길은 찾지 못했습니다. 콜럼버스는 양념도 금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언제나 자기가 인도를 발견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땅이 새로운 곳이라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유럽인이나 아시아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상한 식물, 동쪽에서 사용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등 그것이 신대륙이라는 것을 뒷받침 해줄 증거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항해는 새로운 세계를 열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탐험가들은 나중에 북미 대륙을 모두 탐험했습니다. 만약 콜럼버스가 신 대륙에 정착을 하려고 시도한 최초의 유럽인이었다면 왜 이땅이 아메리카로 불리워 지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이탈리아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부치에서 비롯됩니다.

아메리고 베스부치는 1499년 남아메리카 해안을 탐험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책으로 써서 유럽 전역에서 널리 읽혀지게 됐습니다. 1507년, 한 독일인 지도 제작가가 베스부치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는 베스부치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으로 믿고,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 땅의 이름을 아메리카라고 명명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메리카라는 명칭은 그렇게 해서 시작됐습니다.

스페인의 탐험가들은 신 대륙에서 금과 권력을 얻기 위해 애썼습니다. 이들은 또 자신들이 믿는 그리스도 신앙을 전파하기 원했습니다. 이들 스페인 탐험가들중 첫번째 인물은 [후앙 폰체 데 레온] 이었습니다. 그는 1513년에 북 아메리카에 도착했습니다. [후앙 폰체 데 레온] 은 오늘날 미국 남쪽 땅인 훌로리다의 동해안을 탐사했습니다. 그는 유럽 사람들이 신대륙에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특이한 물을 찾기 원했습니다. 유럽인들은 그 물이 늙은 사람을 젊게 만드는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후앙 폰체 데 레온]은 그런 물을 찾지 못했습니다. 같은 1513년, [바스코 누네아 데 발보아]가 파나마 지협을 건너 태평양에 도달했습니다.

1519년에는 [헤르난 코르테스]가 멕시코에 군대를 상륙시키고 아즈텍 인디언 제국을 멸망시켰습니다. 같은해 [훼르디난드 마젤란]은3년에 걸친 세계 일주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1530년대에는 [후란시스코 피자로]가 페루의 잉카 제국을 멸망시켰습니다. 그로부터 10년후 [후란시스코 바즈쿠에즈 데 코로나도]는 오늘날의 미국 중부지방인 캔사스와 그랜드 캐년까지 깊숙히 탐사를 했습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헤르난 데 소토]는 미시시피 강에 도달했습니다. 콜럼버스가 산살바도르에 상륙한지 50년이 지난후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의 엄청난 영토를 자기 나라 땅이라고 선언하게 됐습니다. 이처럼 신 대륙을 탐사한 스페인은 당시 유럽의 최강대국이 됐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스페인의 그같은 영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뒤를 이어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등의 탐험가들도 북 아메리카를 여행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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