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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제도(DACA)


지난 2월 뉴욕에서 정부의 불체 청년 추방 유예 연장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지난 2월 뉴욕에서 정부의 불체 청년 추방 유예 연장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인터넷 트위터에 글을 올려 ‘DACA’ 합의가 더는 없을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국에 들어와 있는 불법 이민자들이 DACA를 악용하려 한다고 비난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 이 시간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DACA’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정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논란의 중심 - ‘다카(DACA)’란 무엇인가”

‘DACA’는 어렸을 때 미국에 온 사람들에 대한 조처를 유예한다는 뜻의 영어 ‘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의 머리글자를 딴 말입니다. 이 제도는 지난 2012년 미국의 바락 오바마 행정부가 도입했습니다.

[녹취: 오바마 대통령] “Specifically for certain young people sometimes called dreamers…”

2012년 6월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DACA를 시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주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불법으로 미국에 들어와 사는 젊은이들의 추방을 미뤄준다는 겁니다.

DACA 수혜자들은 미국에서 일하거나 공부할 수 있고 운전면허를 딸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처음 시작됐을 때 당시 31세 이하로 16세가 되기 전 미국에 들어왔고, 또 2007년 6월 이후 미국에 계속 살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만 DACA를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밖에 DACA 수혜자가 되려면 범죄 경력이 없어야 했고, 고등학교나 대학에 등록하거나 군에서 복무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DACA 수혜 자격은 2년마다 갱신됐습니다.

“다카의 상징 - 드리머”

미국에서는 DACA 혜택을 받는 사람들을 보통 ‘드리머(DREAMer)’라고 부릅니다.

‘드리머’란 명칭은 지난 2001년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당시 불법체류 청년들을 구제해주기 위한 법안인 ‘The Development, Relief and Education for Alien Minors Act’가 발의됐고, 이 법안의 머리글자를 따 ‘드리머’란 용어가 나왔습니다.

그간 드림법안은 여러 번 다양한 형태로 발의됐지만, 연방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미국 연방 이민국은 2017년까지 드리머가 약 8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했습니다.

드리머들은 대부분 멕시코나 온두라스, 과테말라, 그리고 엘살바도르 같은 중미 나라 출신으로 이 가운데 멕시코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아시아 쪽에서는 한국이나 필리핀에서 온 청년들도 있습니다.

드리머들은 미 전역에 퍼져 살고 있지만, 서부 캘리포니아주에 가장 많고, 다음 텍사스, 뉴욕, 플로리다, 그리고 일리노이주 순입니다.

“드리머들에게 닥친 시련 - 다카 폐지 결정”

제프 세션스 미 법무부 장관은 2017년 9월 5일 DACA를 폐지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합니다.

[녹취: 세션스 미 법무장관] “The Department of Justice has advised the President…”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2016년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이민문제와 관련해 발동했던 행정명령들을 없애겠다고 공약한 바 있었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They support unconstitutional executive amnesty…”

DACA 제도가 헌법에 어긋나는 사면 조처이기 때문에 이걸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공화당 소속 주 법무장관들도 지난해 세션스 법무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DACA를 겨냥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위협했고, 보수 진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 측에 선거 공약을 지키라고 압력을 가했습니다.

“다카를 둘러싼 중앙 정치권의 공방”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DACA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도 연방 의회에 2018년 3월 5일까지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드리머들을 구제해줄 의향이 있다며 그 임무를 의회로 넘긴 것입니다.

이후 연방 의회는 DACA 문제를 둘러싸고 양보 없는 줄다리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진전은 없었습니다.

[녹취: 라이언 하원 의장] “We want to solve DACA, but we also want to solve DACA in a comprehensive way…”

공화당 소속인 폴 라이언 하원 의장은 2018년 1월 기자회견에서 DACA 문제 해결을 원하지만, 이를 포괄적인 이민개혁 안에서 풀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라이언 의장 말처럼 공화당과 백악관은 DACA 문제를 다른 이민 개혁 항목과 같이 해결해야 한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공화당이 DACA 문제와 연계한 항목으로는 멕시코 접경 지역에 장벽을 세우고 합법 이민을 대폭 제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민주당 측이 DACA 외에 다른 항목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면서 DACA 문제 해결은 요원한 실정입니다.

연방 의회는 최근 1조3천억 달러에 달하는 지출안을 통과시켰지만, 결국 DACA 해결 방안은 이 지출안에 포함하지 못했습니다.

[녹취: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Look, I think it's absolutely terrible that the Congress has failed to act…”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3월 5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DACA와 관련해 연방 의회가 책임을 다하고 있지 않다고 비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금까지 이 문제에 진전이 없자 민주당을 비난하면서 DACA와 관련된 합의는 더 없고, 이젠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이민관련법을 강화하는 방안만이 남았다고 위협했습니다.

“드리머들의 현재 상황”

2018년 3월 5일부로 DACA 효력은 중단됐지만, 드리머들이 당장 추방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연방 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조처에 속속 제동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2018년 1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연방 지방법원은 모두 DACA의 효력을 그대로 유지하라고 결정했습니다. 관련 소송이 마무리될 때까지 DACA 효력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연방 법무부는 2심에 항소하고 동시에 연방 대법원에 신속 심리를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연방 대법원은 2월 26일 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연방 지법과 연방 대법원 결정에 따라 기존 DACA 수혜자들은 그대로 혜택을 받습니다. 하지만, 신규 DACA 신청자는 받지 않습니다.

DACA 관련 소송은 이제 2심이 진행 중입니다. 만일 연방 의회가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드리머들의 운명은 결국 연방 대법원이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뉴스 속 인물: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

1965년 흑인 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앨라배마주 셀마에서 연설하고 있다.
1965년 흑인 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앨라배마주 셀마에서 연설하고 있다.

최근 뉴스에서 화제가 됐던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인공은 흑인 민권운동가인 고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입니다.

2018년 4월 4일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사망한 지 50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킹 목사는 이날 테네시주 멤피스에 있는 한 모텔에서 총에 맞아 암살됐습니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1929년 1월 15일, 미국 남부 조지아주 애틀랜타시에서 침례교 목사인 마틴 루서 킹 시니어와 어머니 앨버타 윌리엄스 킹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크로저신학교를 거쳐 보스턴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54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 있는 한 교회에 목사로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킹 목사가 있던 몽고메리시에서 미국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로자 파크스’라는 흑인 여성이 버스 앞자리에 있는 좌석을 백인에게 내어주지 않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었습니다.

로자 파크스 여사는 이에 소송을 제기했고, 흑인 사회 지도자들은 이런 인종차별적 행태에 항의해 버스 안 타기 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합니다. 킹 목사는 이 운동을 이끌어 나갔고 이를 통해 전국적으로 주목받게 됩니다.

이후 킹 목사는 비폭력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킹 목사가 주도한 저항운동에 힘입어 1965년 당시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이 흑인들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흑인들도 마침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1963년,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습니다. 킹 목사는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최초의 흑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4년, 킹 목사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역대 가장 젊은 수상자였습니다.

당시 킹 목사를 보좌했던 민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는 VOA에 킹 목사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녹취: 잭슨 목사] “He really is a symbol of power, justice, peace and reconciliation…”

킹 목사는 그야말로 힘과 정의와 평화 그리고 화합의 상징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킹 목사는 1968년 4월 4일 극우파 백인인 제임스 얼 레이에게 암살당했습니다. 당시 킹 목사는 불과 39세였습니다.

킹 목사 암살 후 미국에서는 그를 기리는 연방 공휴일을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지난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 마틴 루서 킹 목사의 탄생을 기리는 연방 공휴일이 공식적으로 지정됐습니다.

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불법체류 청년 추방유예 제도’인 DACA와 ‘뉴스 속 인물’로 사망 50주기를 맞은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김정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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