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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따라잡기] ‘워터게이트 사건’


1974년 3월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문답 도중 주먹으로 연단을 내리치고 있다.
1974년 3월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문답 도중 주먹으로 연단을 내리치고 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최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바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신이 머물던 트럼프 타워의 전화 도청을 지시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에 비유해 큰 파장이 일고 있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재임 중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조상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녹취: 닉슨 대통령 사임 발표]

1974년 8월 9일, 미국의 제37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현직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것인데요. 바로 워터게이트 사건의 여파 때문이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부터 1974년까지 2년 동안 미국을 뒤흔든 권력형 정치 비리 사건을 말합니다. 발단이 된 사건이 일어난 워싱턴 DC의 건물 이름을 따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리게 됐는데요. 최고 지도자의 정직함을 가장 큰 덕목으로 생각하는 미국에서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었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준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시작"

1972년 6월 17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워터게이트 건물에서 근무하던 경비원은 건물 아래쪽 계단의 후미진 곳과 주차장 사이의 문이 접착 테이프로 붙여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경비원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워터게이트 호텔에 입주해 있던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사무실에 불법 침입한 5명의 괴한을 체포하게 되는데요.

조사 과정에서 이 5명 중 전 중앙정보국 CIA 요원과 닉슨 대통령 재선위원회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인물이 포함돼 있고, 이들이 이미 3주 전 이 사무실에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했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재설치를 하기 위해 다시 침입했다 검거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체포된 범인들은 끝까지 단순 절도임을 주장하는데요. 그러나 단순 절도범을 위해 비싼 수임료의 거물급 변호사가 선임되고, 이들이 지니고 있던 수첩에서 백악관 고위 관계자의 연락처가 기록된 수첩을 지닌 채로 검거되면서, 이 사건이 단순 절도 사건이 아니라 대통령과 연관돼 있는 것이라는 의혹이 일기 시작합니다.

이에 백악관 측은 ‘3류 절도 사건’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면서 백악관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건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닉슨 대통령의 사건 은폐시도와 거짓말”

워터게이트 사건 발생 초기, 이 사건은 국민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단순 절도 사건이라는 백악관의 해명과 더불어 당시 공화당 후보로 나선 닉슨 대통령의 재선이 거의 확실한 분위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닉슨 대통령의 선거 비용 중 10만 달러 이상이 사건 용의자 중 한 사람의 계좌로 들어갔다는 사실이 보도되고, 미 연방수사국 FBI까지 수사에 착수하자 닉슨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나는 이 사건에 백악관 직원이나 행정부 직원 중 누구도 관련돼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닉슨 대통령과 측근들은 사건 은폐, 축소와 FBI의 수사 방해를 지시하는데요. 대통령이 비밀리에 전용할 수 있는 CIA 운용자금으로 증인 매수를 하려던 정황이 밝혀지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사건은 점점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닉슨 대통령의 재선 이후 열린 상원 워터게이트 사건 청문회에서 알렉산더 버터필드 전 대통령 부보좌관이 대통령의 집무실에는 모든 대화가 녹음되는 장치가 설치돼 있고,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지시한 내용이 녹음돼 있다는 폭로를 하게 되는데요.

이를 계기로 녹음 내용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이에 닉슨 대통령은 대통령의 통치 행위이자 정치적 사안이 포함된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논리로 공개를 거부하고 특별검사를 해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녹취: 닉슨 대통령 연설]

그러면서 지금 들으신 것처럼 닉슨 대통령은 직접 기자 회견을 통해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는데요. 이 말이 오히려 미국인들로 하여금 닉슨 대통령을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결국 제출된 녹음 내용으로 닉슨 대통령이 수사 방해와 사건 은폐를 지시한 것이 드러나게 됐는데요. 미국인들은 지도자에게 그 무엇보다 정직함을 최우선 덕목으로 요구하는데, ‘미국인들은 도청한 사실 때문이 아니라 거짓말 때문에 닉슨에게 등을 돌렸다’라고 할 정도로 닉슨 대통령이 했던 거짓말과 위증은 국민들의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진실을 파헤친 사람들”

진실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두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이 사건을 지속적으로 파헤쳐 진실이 밝혀지는 데 큰 공헌을 했는데요.

이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벌어진 시점부터 닉슨 대통령이 하야하는 시점까지 약 3년여의 시간을 오로지 이 사건에만 매달렸습니다.

이 두 기자가 포기하지 않고 사건을 추적할 수 있었던 데에는 ‘딥 스로트(Deep Throat)’, 이른바 ‘깊은 목구멍’이라고 불리는 내부 고발자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는데요. 내부 고발자는 자기 원칙과 용기를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했고, 매체는 끝까지 내부 고발자를 보호함으로써 언론 역사에 큰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내부 고발자의 존재는 수십 년이 흘러 지난 2005년에야 공개됐는데요. 사건 당시 FBI 부국장이었던 마크 펠트가 자신이 내부 고발자였다고 스스로 밝히면서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마크 펠트와 사적인 친분이 있던 밥 우드워드 기자가 취재를 하면, 칼 번스타인 기자가 사실 확인을 하는 식으로 사건에 매달렸고, 이 취재를 통해 그 전까지 속보 경쟁만 하던 미국의 신문과 방송의 보도 방식에 일대 경종을 울리면서 탐사보도 저널리즘의 표본이 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단순히 미국 정치사의 부끄러운 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정치평론가들은 말하는데요. 비록 임기 도중 대통령이 사임한 최초의 일로 미국 역사의 오점을 남기기는 했지만, 의회와 연방 대법원, 사정 기관, 언론이 각자의 책임을 완수하여 민주주의 정신이 지켜졌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조상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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