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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보도: 한국 탈북민 3만명 시대] 2. 탈북민 지원정책, 자활형·사회통합형으로 바뀌어야


지난 10월 경기도 의정부시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 경기도 북한이탈주민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 10월 경기도 의정부시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 경기도 북한이탈주민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이 이달로 3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VOA는 ‘탈북민 3만 명 시대’를 맞아 탈북민들이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의 명암과 한국 정부의 탈북민 정책의 현주소를 짚어 보는 특집을 다섯 차례로 나눠서 보도합니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탈북민 지원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해 전해 드립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8월 의사 출신인 40대 탈북자가 인천의 한 건물 유리벽을 닦다 아래로 떨어져 숨졌습니다. 북한에서 산부인과 의사였던 그는 2006년 한국에 들어온 뒤 공사판 등 막일을 전전했습니다.

하지만 심사를 통해 북한에서의 학력과 자격을 인정해주는 한국의 탈북자 지원 법률에 따라 의사로서 재기할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었던 그는 중병에 걸린 부인과 자녀를 돌보느라 죽기 전까지 공사장 인부로 일해야 했습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북한 사람들의 탈북 동기는 과거 배고픔을 벗어나려는 ‘생계형’ 탈북에서 지금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이주형’ 탈북으로 바뀌는 추세입니다.

한국 통일부가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 ‘하나원’ 수료생들을 상대로 탈북 동기를 조사한 결과 ‘자유에 대한 동경’과 ‘북한체제에 대한 불만’이라고 답한 비율이 2010∼2013년 사이 40% 정도였지만 2014∼2016년 사이엔 65%로 급증했습니다.

또 북한에 있을 때 자신의 생활수준에 대해 보통 또는 중산층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도 2001년 이전 탈북자들 중엔 24%에 그쳤지만 2014년 이후 탈북자들은 67%로 조사됐습니다.

이 때문에 탈북자 정착지원 제도도 이런 추세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이우영 교수입니다.

[녹취: 이우영 교수 / 북한대학원대학교] “이 사람들이 과거와는 달리 남한에 대한 정보나 지식들을 많이 갖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어쨌든 단순 남한 정보 같은 것들보다는 조금 더 비율 자체를 그런 것들을 유지하면서도 그들이 원하는 혹은 가능한 직업적 능력이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한 맞춤형으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어요.”

남성에겐 중장비 기술, 여성에겐 봉제가 주를 이루는 단순한 현행 취업교육도 보다 정교하고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탈북민 취업을 지원하는 한국의 한 커피 로스팅 전문업체.
탈북민 취업을 지원하는 한국의 한 커피 로스팅 전문업체.

탈북자 지원단체 북한인권시민연합의 김영자 사무국장입니다.

[녹취: 김영자 사무국장 / 북한인권시민연합]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사실은 대부분 대학에 가고 싶어하는데 그냥 다 직업교육을 시킨다든가 이런 것이 아니고, 대학을 갈 사람에게는 하나원부터 대학에 갈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만들어 놓는다든가, 직업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다양한 직업들을 위한 눈높이 교육에 맞춰져야지 모두 다 똑 같은 것을 배우고 모두 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건 안 된다는 거죠.”

탈북자들은 한국에 들어오면 하나원에서 3개월 동안 적응교육을 받고 정착지원금 명목으로 1인당 500만 원, 미화 4천200 달러 정도를 받지만 생활을 유지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탈북자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빨리 적응하도록 지원체계에도 경쟁과 장려책을 확대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 한국 통일연구원] “일방적인 현금 지원이나 시혜성 보다는 탈북자가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정착에 유리한 것, 예를 들면 취업 지원이라든지 자활 노력이라든지 이런 부분들과 정착 지원과 결합될 수 있도록 가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자기주도적인, 자활지향적인 그런 정착지원 체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이와 함께 한국 내 탈북자의 70%가 여성인 점을 감안한 지원책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정착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게 취업이지만 양육까지 책임져야 하는 여성 탈북자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입니다.

탈북자 출신인 NK경제인연합회 노현정 회장은 남편 없이 아이들을 키우는 탈북 여성들이 많다며 이들의 자녀보육 지원이 시급하다고 호소했습니다.

[녹취: 노현정 회장 / NK경제인연합회] “애들이 집에 혼자 있게 된단 말이에요. 엄마가 직장 나가는 동안에. 그래서 그런 애들을 다 데려다가 탈북민들이 나서서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애들이 먹을 수 있는 먹거리와 생필품이 들 거 아니에요. 그것을 이렇게 나서서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저녁에 나가서 대리운전 뛰어서 번 돈으로 한단 말이에요.”

탈북자들을 한국사회에 동화시키기 위한 정책이 아직은 일반 남한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지난 1월 경기도 과천시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탈북민 푸드트럭 개업식에서 정진행 현대자동차그룹 사장(오른쪽부터), 홍용표 통일부 장관, 손광주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현명관 한국마사회장 등 참석자들이 탈북민 김경빈 씨의 음식을 맛보고 있다.
지난 1월 경기도 과천시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탈북민 푸드트럭 개업식에서 정진행 현대자동차그룹 사장(오른쪽부터), 홍용표 통일부 장관, 손광주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현명관 한국마사회장 등 참석자들이 탈북민 김경빈 씨의 음식을 맛보고 있다.

통일부는 탈북자들의 정서적 고립을 해소하고 일반 주민들과의 소통을 돕기 위해 서울 마곡지구에 ‘남북통합문화센터’ 건립을 추진 중입니다.

하지만 이 지역 입주자대표연합회는 호소문과 플래카드를 통해 결사반대에 나섰습니다. 탈북자 정착시설을 혐오시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북한인권시민연합 김영자 사무국장은 탈북자를 특수한 대상으로 간주하는 ‘따로따로식’의 지원보다는 가능한 일반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 체계와 프로그램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김영자 사무국장 / 북한인권시민연합] “관리의 입장에서 보면 센터를 만들어서 한꺼번에 하면 관리자 입장에선 편하죠. 그런데 한 곳에서만 사는 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사시니까 한 곳에 오시기도 힘들고 그렇게 따로 한다는 것은 사회 정착이 더 늦어질 수도 있고 남한 주민들과 함께 어울려서 공부를 해도 그렇고 어떤 놀이를 해도 그렇고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개발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통일부는 탈북자 3만 명 시대를 맞아 이런 변화 추세에 맞춰 새로운 정착지원 정책들을 이달 중 발표할 예정입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입니다.

[녹취: 정준희 대변인 / 한국 통일부] “기존의 탈북민 정책 방향을 사회통합형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존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지원 체계를 효율화하는 쪽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회통합형 정착 지원은 탈북자들의 사회적 참여를 확대하고 고용 기회를 늘리며 탈북 청년의 학교 적응지원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한국 내 탈북민 3만 명 시대를 맞아 준비한 기획보도, 내일 이 시간에는 세 번째 순서로 탈북자들의 정체성 문제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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