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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따라잡기] 위구르족


미국에 거주하는 위구르족 독립운동 지지자들과 국제활동가들이 워싱턴 DC 중국대사관 앞에서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자료사진)
미국에 거주하는 위구르족 독립운동 지지자들과 국제활동가들이 워싱턴 DC 중국대사관 앞에서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자료사진)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중국의 반체제 인사 일함 토티 전 베이징중앙민족대 교수가 최근 노벨 인권상으로 불리는 마틴 에널스 인권상을 수상했습니다. 신장 위구르족 출신인 토티 교수는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을 비난하다가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입니다. 위구르족은 중국의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로 중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추진하면서 역사적으로 중국 정부와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왔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위구르족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조상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위구르족의 기원”

위구르족은 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 민족으로 현재 중국의 서북쪽에 위치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주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위구르족의 조상은 알타이계 유목민족인 가오처족인데요, 가오처라는 이름은 천막을 옮기기 위해 소가 끄는 수레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가오처족은 이후 돌궐제국과 수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세력이 약해졌고, 일시적으로 당나라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돌궐제국이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744년 오르콘 위구르 제국을 건설하면서 카스피 해에서 만주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국가 건설 뒤에 유목민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정착 농경사회로 탈바꿈하면서 군사력이 약해져 840년 또 다른 투르크계 민족인 키르키즈에 의해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자신들의 나라를 갖지 못한 위구르족”

위구르 제국이 멸망하면서 위구르인은 원 거주지인 몽골지방에서 중국 북서부와 동투르키스탄으로 대이주를 시작합니다.

이때 현지의 인도 유럽어 계통 백인들과의 결합이 이루어지면서 현재 투르크계 위구르족의 민족적 특성이 완성되었는데요.

특히 불교를 믿고 있던 대부분의 위구르족은 다른 투르크계와 마찬가지로 11세기경부터 이슬람교를 믿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뚜렷한 민족적 특성을 지켜온 위구르족이지만 이후에도 여러 작은 나라들이 난립하면서 제대로 된 강한 국가를 갖지 못했는데요.

1759년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건륭제에 의해 침략 당하면서 중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20세기 초에 잠시 독립을 선언한 일이 있습니다만, 18세기 중반 이후 위구르족은 계속 중국의 일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녹취 : 위구르족 전통 음악]

위구르족의 전통 음악을 듣고 계신데요, 음악만 들어봐도 중국보다는 인도나 터키 쪽과 문화적으로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위구르족은 민족, 사회, 종교적으로 중국의 한족이나 지배계층인 만주족과는 너무 달라 지금까지도 저항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청나라가 지배하는 동안에만 42차례의 반란과 봉기가 있었고, 결국 1949년 중국 공산당에 병합돼 다시 중국의 자치구로 전락한 이후로도 분리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저항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경제, 무역의 요충지 - 신장 자치구”

현재 위구르족이 거주하는 신장 지역은 고대 중국인들이 서역이라고 부르던 이른바 비단길, 즉 실크로드가 지나던 지역으로 무역의 요지로서 그 중요성이 높았는데요.

이뿐만 아니라 소금이나 탄산수, 금, 옥, 석탄 등의 생산지로 유명해 경제적으로 그 가치가 높은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신장이 위치한 중앙아시아 지역이 석유와 가스 매장량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련 산업이 호황을 이루고 있는데요.

이곳에서 추출된 석유와 가스는 동서 송유관을 통해 상하이와 직접 연결되고 있고, 지역 경제의 60% 정도를 관련 산업이 담당하고 있을 정도 입니다.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이 지역을 영향권에 두기 위한 각 나라의 각축전이 치열하게 벌어졌고, 원래 이 지역에 살던 위구르인들은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자신들의 독립된 나라를 갖기가 어려웠습니다.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위구르와 독립운동”

위구르족은 현재 중국의 지배가 흔들릴 경우, 가장 먼저 독립운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민족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현재 위구르족의 자치구인 신장은 한족들을 정착시켜 위구르족의 독립의지를 희석시키려는 중국의 이주 정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요, 그 결과 현재 신장의 인구 구성은 위구르인과 한족이 각각 절반씩 거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중국 정부는 위구르족의 대규모 독립시위가 발생할 때마다 강경하게 진압하고 있는데요, 2009년 7월에 발생한 시위 때는 무려 1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위구르족의 독립투쟁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즘과 결합하는 형태를 띠고 있는데요.

특히 2014년 3월에는 중국 윈난성 쿤밍역에서 위구르족 무장단체에 의한 칼부림 사건이 발생하면서 29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172명의 사상자가 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 당국은 위구르족의 이슬람교 활동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요.

[녹취 : VOA NEWS]

중국 당국이 위구르족의 이슬람 신성 의식인 라마단 참여를 금지시켰다는 내용의 VOA 보도 들어보셨는데요. 중국은 이 일로 주변 이슬람 국가와 국제 사회로부터 비난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일함 토티 전 베이징중앙민족대 교수가 중국법원에서 ‘국가분열죄’로 종신형을 받고 수감되기 1년전인 지난 2013년 외신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일함 토티 전 베이징중앙민족대 교수가 중국법원에서 ‘국가분열죄’로 종신형을 받고 수감되기 1년전인 지난 2013년 외신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같은 해 7월에는 저명한 위구르족 경제학자인 일함 토티 당시 중국 베이징중앙민족대 교수가 국가 분열죄 위반 혐의로 중국 당국에 의해 기소되는 사건이 있었는데요. 이 사건으로 토티 교수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국제 인권단체는 토티 교수에게 노벨 인권상이라고 불리는 마틴 에널스상 수상자로 선정함으로써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과 인권 상황에 대해 우려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소수민족을 향한 중국의 가혹한 정책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 위구르족의 독립투쟁과 인권 신장은 앞으로도 국제정세에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위구르족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조상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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