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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북한 외교관·고위층 망명 사례 다시 주목


황장엽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 1997년 7월 한국으로 망명한 후 서울에서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황장엽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 1997년 7월 한국으로 망명한 후 서울에서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망명을 계기로 과거 북한 외교관과 고위층들의 망명 사례에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례를 함지하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한국 등 제3국에서 새 삶을 시작한 북한 출신 인물 중 최고위층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입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던 황 전 비서는 지난 1997년 일본 방문 뒤 귀국길에 베이징주재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황 전 비서는 수기를 통해 북한체제에 의분을 느꼈다며, 변혁을 도모하기 위해 망명을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2010년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전까지 황 전 비서는 북한체제의 문제점과 인권 실태 등을 고발하는 활동을 벌였습니다.

황 전 비서는 지난 2010년 미국 워싱턴에서 행한 연설에서 북한 군인들이 인권의 피해자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황장엽 전 비서] “한참 공부할 나이에 10년 13년씩 군대에 나가서 김정일을 위해 죽는 연습을 하다가 끝나게 되면 또 탄광에 가 보내 또 그런 생활을 하게 하거든. 일생을 망치게 한다고. 이 보다 더 큰 인권 유린이 없어요.”

외교관 신분으로 망명한 첫 번째 인물은 지난 1991년 콩고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던 고영환 씨입니다.

한 때 김일성 주석의 프랑스어 통역을 하기도 했던 고 씨는 콩고에 주재할 당시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 사실이 드러나자 망명을 감행했습니다. 현재는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1996년에는 잠비아주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이자, 현철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의 조카인 현성일 씨와 부인이 한국으로 망명했고, 잠비아대사관의 보안책임자였던 차성근 씨도 같은 해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지난 1997년 미국으로 망명한 장승길 전 이집트주재 북한대사가 망명 전 카이로에서 열린 한 회의에 참석했다. (자료사진)
지난 1997년 미국으로 망명한 장승길 전 이집트주재 북한대사가 망명 전 카이로에서 열린 한 회의에 참석했다. (자료사진)

이듬해인 1997년에는 장승길 당시 이집트주재 대사와 그의 형인 장승호 전 프랑스주재 경제참사관이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또 1998년에는 유엔 식량농업기구 (FAO) 북한사무소 3등 서기관이던 김동수 씨와 그 가족이 서울로 향했고, 1999년에는 독일 베를린주재 북한이익대표부 서기관 김경필 씨가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이어 2000년에는 태국주재 북한대사관 과학기술참사관이던 홍순경 씨 가족이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최근에는 이름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태국과 아프리카, 러시아 등지에 근무하던 북한 외교관이 망명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대성총국 유럽지사장을 지내며 해외에 머물던 최세웅 씨와 가족 4명은 1995년 한국행을 선택했고, 2009년엔 중국 상하이주재 북한 무역대표의 부인과 자녀들이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로열패밀리로 불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가족의 망명 사례도 있었습니다.

김 위원장의 전처인 성혜림의 조카인 이한영 씨는 1982년 모스크바를 거쳐 한국으로 망명했는데, 1997년 경기도의 자택 주차장에서 북한 공작원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앞서 이한영 씨의 모친이자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 씨는 199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서방으로 탈출한 상태였습니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모인 고용숙 씨는 외교관인 남편과 스위스에 머물던 중 1998년 미국대사관을 통해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고용숙 씨 부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어린시절 스위스에서 유학할 당시 뒷바라지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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