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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따라잡기]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자료사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자료사진)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지난 15일 군사반란이 일어났던 터키 정국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터키 정부는 현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규모 반란 세력 숙청작업에 들어갔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터키는 어떤 나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터키는 어떤 나라인지 살펴보겠습니다.

터키는 이슬람권 국가들 가운데서는 드물게 정치와 종교가 분리돼 있는 '세속주의 국가'입니다. ‘세속적’이라든가 ‘세속화됐다’ 같은 말 때문에 자칫 어감이 안 좋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하지만 정치적 개념의 세속주의란 국가를 운영할 때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뜻합니다.

터키의 세속주의는 터키인들이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고 있는 '케밀 파샤' 집권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데요. 그래서 국민의 98%가량이 이슬람 종교를 믿긴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허용돼 있고요. 공원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 등 폐쇄적인 일부 아랍 국가들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도 눈에 많이 띕니다.

터키는 한반도처럼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입니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 동서양이 만나는 길목에 있어 아시아와 유럽의 관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터키는 지정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나라입니다. 중동 전문가, 한양대학교 이희수 교수 설명 들어보시죠.

[녹취:한양대학교 이희수 교수] "지도를 보면 이스탄불은 유럽에 속해 있고, 약 97퍼센트의 땅은 아시아에 속해 있습니다. 또 바로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연결돼 있습니다. 그래서 중동과 중앙아시아,유럽의 삼각 지점에 위치해 있고요. 따라서 터키는 중동.중앙아시아,유럽을 함께 아우를수 있고요. 동시에 3대륙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죠."

또 최근 몇년 새 국제사회에서 점점 터키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녹취: VOA Turkish Service 바리쉬 오나리 기자]"Turkey is positioning itself to become of bigger player in the middle east for ...."

미국에 거주하는 터키 언론인 바리쉬 오나리 씨가 국제사회에서 터키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터키는 지정학적 요인 외에도 지난 10여 년간 급성장한 경제를 바탕으로 최근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중동 지역의 새로운 맹주로 떠오르고 있는 중입니다.

“길거리 좌판 행상에서 자수성가한 정치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1954년생으로, 터키 흑해 연안에서 해안 경비원의 아들로 태어났는데요. 13살 때 부모가 자녀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주기 위해 터키 제2의 도시인 이스탄불로 이주했고요. 에르도안은 10대 청소년 때부터 이스탄불 시내 거리에서 음료수와 빵을 내다 팔며 돈을 벌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이슬람 학교에 다녔고요. 이스탄불에 있는 마르마라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졸업을 하진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청소년기, 에르도안은 축구선수로도 활약했는데요. 기량이 워낙 뛰어나서 유명 축구팀에서 영입을 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 청년 시절에는 공산주의와 유대교, 비밀결사조직인 프리메이슨을 악마시하는 내용을 담은 연극 극본을 쓰고 연출은 물론 출연까지 직접 한 일도 있습니다.

에르도안은 1978년에 결혼해 4명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정치에 눈을 뜬 청년시절 ”

에르도안 대통령이 처음 정치에 관심을 가진 건 대학생 때 ‘전국 터키 학생연합’이라는 조직에 가입하면서부터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철저한 이슬람 교육을 받았던 에르도안은 이슬람원칙주의자였던 '네흐메틴 에르바칸' 총리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고요. 이후 청년 지부장 등을 맡으면서 정치적 기반을 넓혀갔습니다.

에르도안은 1994년에 마흔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이스탄불 시장으로 당선되는데요. 4년 재임 동안, 이스탄불의 고질적인 상수도와 교통 문제 등을 해결하는 등 상당한 행정능력을 발휘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세속주의에 반대하는 철저한 이슬람주의자”

에르도안 대통령은 어릴 적부터 이슬람 학교에서 배우고 성장한 철저한 이슬람주의자입니다. 1999년에는 종교적 이유로 약 4개월간 복역한 경력도 있습니다.
에르도안은 2001년, 이슬람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정의개발당을 직접 만드는데요. 2002년 선거에서 이 정의개발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2003년 드디어 터키의 총리가 됩니다. 이후 모든 공립학교에서 이슬람 교리를 가르치게 하고 여대생들에게 이슬람 전통의 가리개를 허용하는 등 이슬람 가치를 구현하는 정책들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르도안의 이런 이슬람화 정책은 터키 군부의 견제를 받는 계기가 됐는데요. 터키군은 건국이후 지금까지 케밀 파샤 장군의 뜻을 이어받아 세속주의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해왔습니다.

“장기집권을 꿈꾸는 술탄일까?”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총리를 3차례나 연임했습니다. 이렇게 연임할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터키의 경제를 살려낸 것이 컸습니다. 에르도안은 총리직 4번 연임을 금지한 규정에 부딪히자, 임기 중 대통령 직선제로 헌법을 바꿔 2014년에는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에르도안이 이슬람 최고의 권력자 '술탄'을 꿈꾸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에르도안은 한때 비자금 의혹을 받으며 정치적 위기에 몰린 적도 있었는데요. 하지만 정적들의 음모라고 주장했고 이는 상대를 제거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또 인터넷과 언론 통제를 강화해 이를 비판하는 시위가 자주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취임 직후 법원의 불가 판결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궁 신축에 들어갔는데요. 그 규모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4배, 미국 백악관의 30배 규모라고 합니다.

“군사 반란 불발과 국제사회의 반응”

터키에서 쿠데타가 발생하자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일제히 쿠데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녹취: 미국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U.S support Turkey's democratically elected goverment../We firmly condemn the attempted coup by certain members..."

그 이유는 무엇보다 일단 에르도안 정부가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선출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쿠데타 이후 에르도안 정부가 대규모 숙청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민주적 방식의 처리를 요구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또 이번 쿠데타 불발을 계기로 에르도안 대통령이 원했던 대로 터키가 세속주의 원칙을 버리고 다시 완전히 이슬람국가로 돌아서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터키는 특히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IL과의 전쟁과 시리아 난민 사태 해결 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지금 터키의 정세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박영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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