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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드] 북한, 16년 만에 ‘난수방송’ 재개한 의도는?


지난 25일 비무장지대(DMZ)내 판문점에서 남북한 군인들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지난 25일 비무장지대(DMZ)내 판문점에서 남북한 군인들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매주 월요일 주요 뉴스의 배경을 살펴보는 ‘뉴스 인사이드’입니다. 과거 북한은 심야 단파 라디오를 통해 ‘난수방송’을 내보내며 남파 공작원에게 지령을 하달했는데요, 16년 동안 중단한 난수방송을 최근 다시 재개했습니다. 최첨단 기술의 도입 이후 거의 사라진 ‘난수방송’을 북한이 다시 꺼내든 의도는 무엇일까요?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7월 15일 오전 0시 45분, 북한이 운영하는 대남 라디오 방송인 ‘평양방송’은 정규방송을 마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송출합니다.

[평양방송 녹취] “지금부터 27호 탐사대원을 위한 원격교육대학 수학 복습과제를 알려드리겠다”

이어 여자 아나운서는 또박또박 숫자를 읽어 나갑니다.

[평양방송 녹취] “459페이지 35번, 913페이지 55번, 135페이지 86번…”

이렇게 다섯 자리 숫자를 잇달아 부르는 방식으로 방송은 12분 동안 계속됐습니다.

북한이 16년 만에 ‘난수방송’을 재개한 겁니다.

난수방송은 숫자, 문자, 기호 등을 조합하거나 열거해 만든 암호를 단파방송을 통해 내보내 공작원에게 지령을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계적으로 첩보전이 치열했던 2차 세계대전, 냉전 시대 단파 라디오 송출이 본격화되면서, 많은 국가들이 난수방송을 해왔습니다.

북한 역시 과거 남파 공작원에게 지령을 하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난수방송을 활용했습니다. 북한 외교관 출신의 탈북자, 고영환 한국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입니다.

[녹취: 고영환 부원장] “공작원이 난수표를 가지고 있는데, 방송을 통해 받은 숫자를 조합하면 그것이 의미하는 단어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 평양하고 간첩하고 똑 같은 책을 가지고 있는데요, 주로 어휘가 많은 책을 활용합니다. 특정 페이지와 줄, 글자를 찾아 내도록 하고 그것을 조합해보면 지령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난수표’는 북한 간첩이나 첩보원에게 아주 중요한 물품이며, 동시에 자신들의 신분을 외부에 노출시킬 수 있는 민감한 물증이었습니다.

또 한국 정보 당국에는 북한의 공작활동을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 자료이기도 했습니다. 김정봉 전 국정원 대북실장입니다.

[녹취: 김정봉 실장] “한국 정보당국은 북한이 난수방송을 하면 100% 녹음을 합니다. 그리고 간첩을 검거하면 난수표를 확보합니다. 방송과 난수표를 대조하면서 과거의 공작활동 내용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2000년 이후 난수방송을 사실상 중단했습니다.

남북한 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서로에 대한 비방을 자제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시 한국 내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북한도 대남 지령 수단을 바꾼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이후 북한은 공작원에게 지령을 내릴 때 ‘스테가노 그래피(Steagano Graphy)’ 방식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것은 비밀 지령문을 동영상이나 사진, 음악 파일, 신문기사 같은 ‘파일 안 파일’로 숨겨 메시지를 전달하는 최첨단 기술입니다. 다시 김정봉 전 국정원 대북실장입니다.

[녹취: 김정봉 실장] “요즘은 인터넷 특정 사이트나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를 활용합니다. 북한이 여기에 그림, 동영상 사진을 올리는데, 이것을 확대해 보면 점 같은 게 있습니다. 숫자나 문자 등 일종의 디지털 신호를 심어 놓는 건데 그것을 분석하면 지령을 알 수 있습니다. 고도로 발달 된 기술입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간첩 활동을 벌인 혐의로 공안당국에 적발된 종북지하당 ‘왕재산’이 ‘스테가노 그래피’기법을 썼습니다.

당시 검찰이 ‘왕재산’ 총책에게서 압수한 휴대용 저장장치에는 평범한 문서파일로 위장한 특수 프로그램을 활용한 ‘북한 지령문’이 들어 있었습니다.

‘스테가노 그래피’같은 최첨단 기술은 체포된 공작원의 진술 등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한국 정보기관도 파악이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16년 만에 북한이 갑자기 과거의 난수방송을 꺼내든 의도를 놓고 해석이 분분합니다.

일단 대남 심리전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남한 정보당국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허위로 방송을 보냈다는 겁니다. 김정봉 전 국정원 대북실장입니다.

[녹취: 김정봉 실장] “인터넷 등 첨단 기술을 이용해 지령을 전달할 수 있어 지금 난수방송은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이것을 끄집어 낸 것은 한국 대공요원에게 혼란을 주고 시선을 끈 다음, 다른 수단을 통해서 지령을 주려는 교란 전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실제 지령을 하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특히 10년 이상 장기 은둔해온 공작원, 이른바 ‘슬리핑 에이전트(sleeping agent)’를 대상으로 방송을 했다는 건데요, 고영환 한국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입니다.

[녹취: 고영환 부원장] “스테노그라피와 같은 신식 암호 기법을 배우지 못한 오래 전에 잠입한 공작원들에게 새로운 지령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북한 전문가인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북한이 과거와 현대 방식의 지령 체계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하태경 의원] “북한의 스테노그라피 기술이 한국 정보당국에 의해서 상당부분 파악됐고, 붙잡힌 북한 공작원을 통해서 암호체계가 많이 들통났습니다.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과거 난수방식과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이 어떤 게 더 안전한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은 20일 “북한이 난수 방송을 상당 기간 자제해 오다 최근 들어와서 재개된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그 의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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