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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따라잡기] 아프가니스탄 전쟁


지난 6일 백악관에서 애슈턴 카터(왼쪽) 국방장관, 조셉 던포드(오른쪽) 합참의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프가니스탄 철군 일정 재조정을 발표하는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지난 6일 백악관에서 애슈턴 카터(왼쪽) 국방장관, 조셉 던포드(오른쪽) 합참의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프가니스탄 철군 일정 재조정을 발표하는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최근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 중인 미군의 수를 내년까지는 8천400명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애초 미국 정부는 올해 말로 아프간 주둔 미군 병력을 5천500명 선까지 줄일 예정이었는데요. 현지 정세가 여전히 불안정하기 때문에 계획을 변경한다는 방침입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관해 살펴봅니다. 박영서 기자입니다.

“전쟁의 도화선이 된 9.11 테러”

[녹취: 9.11 테러 현장음]

지난 2001년 9월 11일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테러 공격이 발생했습니다. 테러분자들이 미국 여객기 넉 대를 공중 납치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D.C. 외곽 국방부 청사 등을 공격한 사건이었는데요. 이 공격으로 무려 3천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테러’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을 때였는데요. 사람을 가득 태운 비행기가 뉴욕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건물에 그대로 돌진해 폭파되는 모습은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겼습니다. 미국 정보 당국은 이 끔찍한 공격이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주도로 감행된 것을 밝혀내고, 아프간 정부에 빈 라덴의 신병 인도를 요청하는데요. 하지만 아프간의 당시 탈레반 정권은 이를 거부합니다.

“아프간과의 전쟁 돌입”

[녹취: 부시 대통령 전쟁 개시 발표]

9.11 테러 공격이 발생한 지 1주일 만인 9월 18일,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의회가 통과시킨 무력 사용 승인 결의안에 서명하고 아프간과의 전쟁을 선언합니다.

[녹취: 부시 대통령 우방국 지원 발표]

영국을 비롯해 캐나다와 호주, 프랑스, 독일 등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국들도 미국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10월 7일 미국은 영국의 지원 속에 ‘Operation Enduring Freedom’, 줄여서 OEF, ‘항구적인 자유 작전’이라고 명명한 군사 작전을 공식 개시합니다.

“탈레반의 퇴각과 유엔의 개입”

군사 작전 개시 한 달 만에 아프간 북부 도시 ‘마자르 이 샤리프’를 시작으로 미국과 영국 연합군은 헤라트, 카불, 잘랄라바드 등 주요 도시들을 속속 함락시켰고요. 아프간 동남쪽 토라 보라 산악지대에서 2주간의 격전 끝에 칸다하르까지 장악하면서 2001년 12월, 탈레반 정권은 붕괴합니다.

유엔도 독일 본으로 아프간 파벌들을 초청해 적극적인 중재에 들어갔는데요. 이 본 회의에서 아프간 파벌 대표들은 파슈툰 족 출신의 하미드 카르자이를 과도 정부 수반으로 추대하고, 아프간의 안정화를 위해 북대서양 조약기구 나토의 주도로 국제평화유지군을 아프간에 배치하기로 합의합니다.

“잔존 세력들의 계속되는 공격”

미국과 영국의 공습이 한창일 때, 9.11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은 파키스탄으로 도주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알카에다 주요 지도자들은 산악지대로 도주한 후 저항을 계속했습니다. 쉽게 끝날 것 같던 전쟁은 종족 간의 유혈충돌로 비화했고요. 아프간 전역은 전쟁 전보다 더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결국, 미국과 연합군은 2002년 3월 지상작전에 돌입하게 되는데요. ‘아나콘다 작전’이라고 명명된 이 작전은 미군 2천 명, 아프간군 1천 명이 투입된 대규모 첫 지상작전이었습니다.

“미국의 중대 전투 종료 선언과 아프간 정부 수립”

2002년 6월 아프간은 임시 정부를 수립하고 카르자이 과도 정부 수반이 임시 정부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아프간 정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이 무렵 미국 의회도 아프간 재건과 인도적 지원을 위해 8개년 계획으로 380억 달러 지원을 승인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3년 5월 1일,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미 국방장관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방문하고, 미국의 중대 전투 종료를 선언합니다.

반면 나토의 역할은 보다 확대됐는데요. 수도 카불을 중심으로 벌이던 국제평화유지군의 활동 영역도 더 확대됐고요. 병력도 초기 5천 명에서 나토 28개 회원국을 포함해 42개 나라, 6만5천여 명으로 늘었습니다.

“아프간 사상 첫 국민 투표와 빈 라덴의 재등장”

2004년 10월, 아프간 국민은 사상 처음으로 국민투표를 통해 카르자이 임시 대통령을 정식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하지만 새 아프간 정부가 출범한 지 3주 만에 오사마 빈 라덴이 아랍권 위성 방송인 ‘알자지라’에 등장해 부시 정부가 9.11 테러 공격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자신들이 나라를 재건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아프간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다짐하고 이를 입증하듯 카르자이 대통령을 미국으로 초청했습니다.

“아프간의 계속된 혼란”

2005년 10월에는 전국에서 6백만 명이 참가하는 총선까지 치르지만, 아프간의 정국은 쉽사리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비롯한 유혈 참극이 끊이지 않았는데요. 실제로 미국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자료에 따르면 2005년에는 27건이었던 테러 공격이 2006년에는 무려 139건으로 급증했습니다.

국제사회의 연합에도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요. 결국 나토는 2008년을 목표로 아프간 군에게 임무를 이양하기로 하고, 철수 시기와 방법 등을 논의하기로 합의합니다.

“오바마 정부와 아프간 안정화를 위한 새 전략”

오바마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09년 8월 기준, 아프간 주둔 미군은 6만 명에서 6만8천 명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5월 미군은 파키스탄에 은신 중이던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데 성공합니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지 꼬박 1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녹취: 오바마 대통령 철수 발표]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여론의 압박을 받던 오바마 대통령은 빈 라덴의 사망을 기점으로, 2014년 말까지 전 병력을 거의 철수시키고 전투 임무를 종료한다고 발표하는데요. 하지만 아프간의 치안이 나아지지 않자 2014년, 오바마 대통령은 철수 일정표를 다시 발표합니다. 아프간에 남아 있는 9천800명 병력을 2016년 말까지 5천500명으로 줄이는 등 단계별로 철수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이 계획을 다시 변경해 내년까지는 8천400명을 잔류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알카에다와 탈레반 잔당 세력에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까지 늘면서 아프간의 치안이 여전히 불안한데 따른 결정이었습니다.

한편 미국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에 따르면 아프간 전쟁 10년간 미군 사망자는 1천800명, 전쟁비용은 4천440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박영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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