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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합의 1년, 무엇이 달라졌나?…독일, 나미비아 집단학살 사죄키로


이란이 모든 핵사찰 조건을 충족했다는 올해 초 국제원자력기구(IAEA) 발표 직후 제재 해제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는 존 케리(가운데 왼쪽) 미국 국무장관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

이란이 모든 핵사찰 조건을 충족했다는 올해 초 국제원자력기구(IAEA) 발표 직후 제재 해제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는 존 케리(가운데 왼쪽) 미국 국무장관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

세계 여러 나라의 주요 소식을 전해드리는 ‘지구촌 오늘’입니다. 지금 이 시각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오늘은 어떤 소식들이 있습니까?

기자) 이란 핵협상이 최종 타결된 지 오늘(14일)로 1주년이 됐습니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의 합의에 따라 이란은 올해 초부터 경제 제재가 풀려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했는데요. 그 동안 이란과 그 주변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독일이 100여년전에 식민지로 삼았던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자행한 학살에 대해 공식 사과하기로 했고요, 같은 아프리카의 남수단에서 현재 내전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현지 미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47명의 군 병력을 파견했습니다.

진행자) 이란이 핵 포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한지 1년이 됐군요?

기자) 핵개발을 꾸준히 추진하던 이란이 미국을 비롯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 나라와 독일 등 주요 6개국과의 협상을 통해 지난해 7월 14일, 핵 포기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무려 12년을 끌어온 협상이었는데요. 유엔과 미국, 유럽연합으로부터 3중 제재를 받고 있던 이란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면서 극심해진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실리를 택하는 차원에서, 핵무기 개발 계획을 폐기하는 선택을 한 겁니다.

진행자) 당시 이란과 서방국가들 사이의 합의, 어떤 내용이었나요?

기자) 핵심 내용은 핵무기 개발에 꼭 필요한 원심분리기를 3분의 1 수준으로 낮추고, 보유한 우라늄도 희석해서 군사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한 점입니다. 또한 이란은 향후 최소 10년동안 우라늄 농축 활동도 일절 하지 않고, 어떤 핵분열 물질도 반입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 IAEA의 광범위한 사찰도 받기로 했습니다. 특히 핵시설은 물론, 주요 군 기지에 대한 정기적 사찰을 허용한 점은 이란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진행자)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또 실제로 핵개발을 중단했는지 꾸준히 점검을 받는다는 건데, 이란이 협상 타결로 얻은 건 뭐였습니까?

기자) 이란과 주요 6개국 간의 핵협상에서 핵심쟁점은 이란에 가해진 경제제재를 푸는 문제였습니다. 이란은 유엔과 미국, 유럽연합이 각각 가하고 있는 제재 조치들을 한꺼번에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요, 또한 제재가 풀린 상황이 영구적으로 지속돼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타결된 합의문에서는 유엔 제재를 먼저 풀고, 미국과 유럽연합의 제재는 순차적으로 해제하기로 했습니다. 또 이란이 합의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IAEA 사찰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언제든 제재가 다시 발효되도록 했습니다.

진행자) 이란은 상당한 원유매장량을 가진 나라임에도, 국제사회의 제재로 고립돼 상당한 타격을 입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지난 1979년 11월 수도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 점거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이란에 대해 경제제재를 취했고요. 이란은 핵개발을 진행했죠, 이후 유엔과 유럽연합까지 제재에 동참하면서 이란 경제는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진행자) 이란의 경제난이 어느 정도였나요?

기자) 이란이 막대한 원유를 외국에 내다팔 수 없게 되자, 한때 하루 평균 300만~400만 배럴에 달하던 원유 생산량은 4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습니다. 이란 최대 산업인 원유생산과 유통관련 근로자들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은 물론이고요. 공식 실업률은 11%를 기록했지만, 실제 실업률은 20%, 청년실업률은 30%에 육박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했습니다. 또한 달러를 들여오지 못하자 현지 화폐인 리알화의 가치도 핵협상 타결 직전 3년 동안 3분의 1로 떨어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해 동안 물가가 17%나 오르는 등 주민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줬습니다.

진행자) 이란 경제난 가중의 원인이었던 서방의 경제 제재가 올해초부터 풀리기 시작했죠?

기자) 네. 이란은 올해초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가 풀리기 시작한 이후 올 상반기까지 유럽 정유사 7곳과 장기 수출계약을 맺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가 차원의 주요 이익창출수단인 원유생산· 수출 관련 산업을 되살려서 경제를 재부흥시키겠다는 이란 정부의 발빠른 행동이 효과를 보고 있는 건데요, 특히 유럽과의 경제 교류 확대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아랍권 유력 온라인 뉴스 매체인 ‘알 바와바’는 최근 보도에서 “유럽 회사들이 이란과 석유를 거래하기 위해 줄을 섰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경제 제재가 풀린 이란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세계 각국 기업들의 경쟁으로, 이른바 ‘이란 특수’가 펼쳐진 가운데 프랑스의 ‘푸조’ 자동차와 ‘에어버스’ 항공기, 독일 ‘지멘스’ 공장설비를 비롯한 유럽 회사와 그 생산품들이 이란 내 산업 각 분야를 선점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핵협상 타결을 주도한 것은 미국인데, 이란이 유럽과 더욱 가까워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기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의 정치상황이 변동적이라는 점을 이란 측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정치 지형이 변해서 제재가 부활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서방사회의 다른 한 축인 유럽과 견고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안전판을 확보하자는 게 이란의 전략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또 이란 지도부 일각의 미국에 대한 불신도 한몫하고 있는데요. 이란의 최고 정책 결정권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지난달 초 “미국을 믿는 것은 큰 실수”라면서, “미국은 이란이 세계 경제에 흡수돼야 한다며 이란 경제를 삼켜버리려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미국과는 아예 교류가 없는 건가요?

기자)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재 해제 이후 미국과 이란 사이에는 이란산 카펫 수출입이 재개됐는데요. 하지만 아직 이 정도 수준에 머물고 있는 두 나라 사이의 무역 거래가 확대되기 위해선, 이란 지도부의 생각이 달라져야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앞서 전해드린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들의 강경한 발언에 대해, 제재 이후 이란이 건강한 국제 무역 질서에 합류하기를 희망한 미국의 입장을 잘못 받아들인 거라고 미국의 외교· 통상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이란이 유럽과 미국 이외 국가들과는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나요?

기자)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 산업 교류 확대도 두드러지고 있는데요. 이란은 최근 걸프지역 남부 키슘섬의 석유항만 건설 계획을 중국 업체에 맡기기로 합의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습니다. 이란의 전통적 우방인 중국은 지난 1월 제재 해제 직후 시진핑 국가 주석이 외국의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이란을 방문해 양국 관계를 ‘전면적 전략동반자 관계’로 격상했습니다. 또 한국도 올해 이란산 원유 수입을 본격적으로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고요. 지난 5월에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을 국빈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핵협상 타결 이야기로 돌아가서요, 미국이 이란 외에 다른 나라들의 핵개발을 포기시킨 사례가 또 있죠?

기자) 몇차례 선례가 있습니다. 미국은 지난 2003년 리비아와 10여차례 비밀 협상을 벌여 리비아의 핵폐기 조치와 이에 대한 보상을 합의했습니다. 이듬해 미국 정부는 리비아에 가해졌던 경제제재를 20년 만에 대폭 완화했고요, 2006년에는 두 나라의 외교관계가 정상화됐습니다. 같은 해 미국은 리비아를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습니다. 옛 소련에 속해있던 우크라이나도 소련 시절 배치됐던 전략 핵탄두와 전술 핵무기 등을 바탕으로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의 핵보유국으로 부상했었는데요. 이에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 1994년 우크라이나를 핵으로 위협하지 않고 영토 보존을 약속한다는 3자 협정 체결을 통해 핵 포기를 이끌어냈습니다. 또한 북한과의 핵관련 협력 의혹이 일던 미얀마에 대해 미국은 핵사찰을 받게하고 경제지원을 제공하는 합의를 이뤘고요, 미국과 미얀마는 2012년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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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독일이 과거 식민지에서 자행했던 악행에 대해 사죄할 계획이라고요?

기자) 네. 독일이 100여년 전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발생한 집단학살에 대해서 나미비아 정부에 공식 사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독일 외무부는 독일이 1904년에서 1908년까지 식민지로 통치하던 나미비아에서 주민 7만5천명 이상을 집단 학살한 것에 대해서 사죄하기로 하고, 이와 관련해 나미비아 정부와 함께 공식 성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독일 DPA 통신 등이 보도했습니다. 요아킴 가우크 독일 대통령도 공식 사과 성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습니다.

진행자) 굉장히 오래 전 일인데, 어떤 사건이었습니까?

기자) 독일 식민치하 나미비아의 원주민이었던 헤레로족은 독일인들이 땅과 가축, 농작물 등을 빼앗자 봉기를 일으켜 독일인 123명을 살해했습니다. 이에 당시 독일에서 파견된 총독은 헤레로족 몰살을 지시했습니다. 헤레로족과 함께 봉기에 나섰던 나마족은 수용소에 갇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습니다. 1904년부터 1908년까지 4년동안 헤레로족과 나마족 주민 도합 11만여명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본래 8만명 정도였던 헤레로족 인구는 1908년에는 1만5천여명으로 줄었습니다. 독일은 수용소에서 숨진 이들의 시신을 본국으로 가져가 연구용으로 쓰기까지 했습니다.

진행자) 독일이 과거 피해를 줬던 나라들에 대한 관계회복에 적극적인 모습이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범죄 가해국인 독일은 피해국인 폴란드와 함께 최근 ‘공동 역사교과서’를 발간했습니다. 독일과 폴란드 학생들은 당장 올 가을 시작되는 신학기부터 공동 역사교과서로 공부하게 됩니다. 같은 내용에 표기만 각각 독일어와 폴란드어로 나뉜 ‘유럽-우리의 역사’ 제 1권이 새 학기에 두 나라 학생들에게 배포되는 건데요, 독일 정부는 앞으로 폴란드 당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유럽-우리의 역사’를 4권까지 내는 등 공동 교과서 종류와 발급 규모를 더욱 확대할 계획입니다. 지난 1972년 이미 공동역사교과서 편찬위원회를 출범시켰던 독일과 폴란드 두 나라는 최근 정치적인 부분은 물론, 문화와 교육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상호 화해가 진전되면서, 결국 공동 교과서 발간을 실현시키게 된 것입니다.

진행자) 과거사를 객관적으로 쓰겠다는거군요?

기자) 네. 독일 외교부 측은 이와 관련, “가해자의 입장이나 일부 특정 시각에서 기록한 역사가 아닌, 인류 공통의 관점에서 쓴 역사를 미래 세대들에게 가르치자는 것”이라면서, “과거에 대한 반성을 기반으로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가자는 진심이 반영된 공동 노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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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미국이 내전 중인 남수단에 군병력을 파견했다고요?

기자) 네. 최근 내전이 격화되고 있는 아프리카의 남수단에서 현지 미국인들을 보호하고 미국 외교공관을 지키는 임무 수행을 위한 병력 47명이 현지에 파견됐다고 백악관 측이 어제(13일) 밝혔습니다. 백악관 관계자는 필요할 경우 이웃나라 지부티에 머물고 있는 병력 130명이 합류해 현지 미국인들을 대피시키는 일을 지원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진행자) 미국 외에도 남수단에서 자국민들을 보호하려는 세계 각국의 노력이 이어지는 중이죠?

기자) 일본 정부는 지난 월요일(11일) 항공자위대 소속 C-130 수송기 2대를 역시 지부티로 보내 남수단 내 일본인 대피를 지원하도록 했고요, 이탈리아도 어제(13일) 공군기를 남수단으로 보내 자국민 30명을 수도 주바에서 빠져 나오도록 도왔습니다. 독일 외무부 또한 독일인을 비롯해 모든 유럽국가 시민들을 남수단 위험지역 밖으로 대피시키는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남수단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겁니까?

기자) 남수단은 수단을 상대로 오랫동안 게릴라식 독립전쟁을 벌인 끝에 자치기간을 얻어낸 뒤 국민투표로 독립을 확정, 2011년 7월 독립국이 된 아프리카의 신생국가입니다. 하지만 독립국가가 된 지 2년 만인 2013년 12월, 내전에 돌입했는데요, 각각 출신 부족이 다른 대통령과 부통령의 지지세력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겁니다. 양측은 간헐적으로 휴전협정을 맺기도 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고요, 이 와중에 이웃나라로 피신한 난민 숫자가 4만2천여명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유엔은 추산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지구촌 오늘’,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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