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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보도] 북한 물가·환율 3년 이상 안정세…90년대 이후 처음


지난해 10월 북한 평양 거리에서 주민들이 자전거를 끌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자료사진)

지난해 10월 북한 평양 거리에서 주민들이 자전거를 끌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자료사진)

북한 시장의 물가와 환율이 2013년 이후 3년 넘게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09년 단행된 화폐개혁 이후 외화 사용 비중이 급증한데다 시장으로의 식량 공급이 원활한 데 따른 것이란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 시장의 물가와 환율이 2013년 이후 3년 넘게 안정세를 보이는 데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1990년 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정부 당국 등에 따르면 2009년 화폐개혁 이후 급격히 상승했던 북한 시장의 쌀 가격과 환율은 2012년 4분기를 정점으로 안정화된 이후 3년 넘게 안정적 추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북한 시장의 쌀 가격과 달러 환율은 전년보다 각각 5.6%, 4.5%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2012년 당시 물가가 전년 말 대비 80%, 달러 환율이 65%가량 오른 것에 비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현재 북한 시장의 쌀값은 1kg에 북한 돈 5천원 안팎, 달러는 8천원대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 시장의 물가가 2013년 이후 안정세를 유지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2009년 화폐개혁 이후 심화된 외화 통용 현상을 꼽고 있습니다. 외화 통용이 북한 원화에 대한 수요 감소로 이어져 북한 당국의 통화 발행을 줄이고, 통화 발행에 따른 이익 효과를 감소시켰다는 겁니다.

한국은행에서 북한경제를 담당했던 SK경영경제연구소 이영훈 수석연구원입니다.

[녹취: 이영훈 수석연구원] “2009년 화폐개혁 이후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주민들이 과거처럼 물건을 구입하려면 200배나 많은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이 북한 원화 대신 달러나 위안화를 선호하게 되면서 2013년 이후에는 북한 당국이 통화를 늘리더라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된 거죠. 향후 북한 물가의 변동은 쌀이나 중요한 생필품과 같은 실물의 수급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북한 당국이 지난해 당 창건 70주년을 앞두고 주민들에게 월 생활비 100%에 해당하는 특별격려금을 지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지난 2009년의 화폐개혁이 북한 돈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를 잃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지적합니다. 지난달 28일 한국수출입은행 주최로 열린 ‘북한의 금융’ 토론회에 참석한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입니다.

[녹취: 양문수 교수] “북한에서 화폐개혁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2009년 말 단행된 화폐개혁은 이전의 화폐교환과 비할 수 없이 부작용이 컸고 주민들에게 북한 원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시장화로 인해 일정 정도 현금 자산을 축적하게 된 주민들이 이를 국가로부터 몰수당하게 됨으로써 북한 원은 가지면 안되겠다는 인식을 가지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외화를 보유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죠.”

한국은행이 지난해 탈북자 231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 가구 당 현금자산에서 외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화폐개혁 이전 40~60%에서 화폐개혁 이후에는 60~90%까지 확대됐습니다.

또 가구 당 한 달 지출액 가운데 외화로 지출하는 비중도 화폐개혁 이전 20% 안팎에서 화폐개혁 이후에는 40~60%까지 커졌습니다.

외화가 사용되는 품목도 확대됐습니다. 화폐개혁 이전에는 가전제품이나 주택 구매 등 주로 고액 거래에 한정됐지만 화폐개혁 이후에는 쌀이나 밀가루 등 식량 구매로까지 확대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시장으로의 식량 공급이 원활한 점도 식량 가격 안정의 요인으로 꼽힙니다.

최근 수 년 간 북한의 곡물생산량은 꾸준히 증가해, 2014년에는 90년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가뭄 등의 영향으로 곡물생산량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시장의 쌀값이 여전히 안정적인 것은 최근 수 년 간 축적된 곡물 재고량에다 비공식 무역을 통해 시장으로의 식량 공급이 원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GS&J 인스티튜트 권태진 북한·동북아연구원장입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지난해 식량 생산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량 가격이 안정적인 것은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식량을 상인들이 중국으로부터 밀수 등을 통해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식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북한 내에서의 식량 생산과 전체 수요와 견주어 부족한 것이지 시장에서 유통되는 식량의 수요와 공급은 꽤 균형을 잡고 있다. 그래서 식량 가격이 올라갈 이유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농촌진흥청과 유엔 식량농업기구 FAO는 지난해 북한의 곡물생산량이 전년보다 각각 6%와 9% 가량 감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부터의 곡물 수입은 대폭 감소했습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중국에서 수입한 곡물은 작년 같은 기간의 12%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중국과 국제 시장의 곡물 가격 안정화 추세도 북한의 쌀값 안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국제시장과 중국 시장의 쌀 가격은 전년 대비 각각 10.9%와 1.4% 하락했습니다.

이와 함께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보여온 시장에 대한 우호 정책이 시장과 관련된 불확실성을 감소시켜 물가 안정에 기여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종규 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이종규 연구위원] “장마당을 비롯한 비공식 부문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적어지면서 북한에서 나름대로의 시장이 작동함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물자가 필요한 지역에 해당 물자를 공급하게 되면서 물가 안정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평가가 일각에서 나오는 것도 북한 당국이 시장을 통제하지 않고 시장 물가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라고 한국 정부 소식통은 말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올해 북한 시장 물가의 경우 대북 제재가 북한경제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산업연구원 이석기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이석기 선임연구위원] “북한 시장의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식량과 식품의 경우 대북 제재에 직접적인 영향이 거의 없어 내부에서 공급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식량이나 식품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적고 중국산 수입품 역시 공급이 크게 줄지 않는 한 물가가 변동할 요인은 크지 않습니다.”

다만 태풍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나 대북 제재 국면에서 시장의 불안이 확산되면서 사재기 등으로 인해 쌀이나 기름값 등 물가가 오를 가능성은 있다고 이 선임연구위원은 내다봤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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