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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 저자 미 커밍스 교수 "6.25는 분명한 남침"


오는 17일까지 한국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AP통신이 본 6.25와 서울' 전시회에 걸린 사진. 폐허가 된 서울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자료사진)
오는 17일까지 한국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AP통신이 본 6.25와 서울' 전시회에 걸린 사진. 폐허가 된 서울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자료사진)

북한은 6.25 한국전쟁에 대해 줄곧 `미국이 남한을 사주해 일으킨 북침 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 소련의 비밀문서가 대거 공개되면서 전세계 학계는 6.25를 ‘김일성이 기획하고 스탈린과 마오쩌둥이 후원한 전쟁’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입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 당국은 6.25를 ‘미제의 사주를 받은 남조선 괴뢰들이 일으킨 침략전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1950년 6월25일 미국의 지시에 따라 남한의 이승만 정권이 북한을 침략해 전쟁이 시작됐다는 주장입니다.

북한 정권의 이런 주장은 북한의 초중고 교과서는 물론 모든 매체에 반영돼 있습니다. 북한이 제작한 6.25 기록영화입니다.

[녹취:KCNA]”미제가 조선전쟁을 일으킨 1950년 6월25일..”

북한 당국은 6.25 `북침' 주장의 근거로 몇 가지 자료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발간된 ‘전쟁, 대답 없는 질문’이란 제목의 책을 인용해 당시 미국의 덜레스 국무장관이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에게 “북조선을 공격할 준비가 돼 있다면 미국은 유엔을 통해 도와주겠다고 시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6.25전쟁 연구 전문가로 지난 1981년 ‘한국전쟁의 기원’이란 책을 펴냈던 미국 시카고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남한이 북한을 먼저 공격했다는 북침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루스 커밍스 교수] “THERE IS NO EVIDENCE THAT SOUTH KOREA INVADED..”

남한이 미국의 사주를 받아 북한을 침공했다는 북침설을 뒷받침할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겁니다.

커밍스 교수는 오히려 진실은 그 반대라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대북 도발을 하지 말라는 분명한 입장을 전했다는 겁니다.

[녹취: 브루스 커밍스 교수] “AMERICANS CLEARLY HAD TOLD SEUNG-MANN RHEE..

6.25 전쟁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세 가지 견해가 있었습니다.

우선 소련과 중공의 팽창주의 정책에 따라 한반도를 공산화하기 위해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다는 전통주의 이론이 있습니다.

또 다른 것은 북한이 주장하는 북침설로, 남한이 미국의 사주를 받아 북한을 공격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수정주의 이론으로, 6.25전쟁은 1930년대부터 시작된 한민족 내부의 좌우 갈등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북침이냐 남침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나 1990년대 러시아의 비밀문서가 대거 공개되면서 북한이 주장하는 북침론은 사실상 자취를 감췄습니다.

특히 1994년 6월 당시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에게 옛 소련의 외교문서들을 넘겨주면서 6.25의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타 소장입니다.

[녹취: 안찬일 교수] “옐친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6.25와 관련된 모든 문서 즉, 스탈린의 밀약과 중공군의 참전과 관련된 자료를 넘겨줘서 6.25가 철저하게 준비된 남침이라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러시아가 넘겨준 300여 종의 문서에는 1949년부터 1953년까지 소련 외무부와 북한 외무성 간에 오간 외교전문 등 6.25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극비자료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김일성은 1949년 3월5일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을 만나 “무력으로 통일을 이루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스탈린은 당시만 해도 남침을 허락하지 않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0년 2월9일 스탈린은 북한의 남침 계획을 승인했습니다. 스탈린이 50년 5월14일 중국의 마오쩌둥에게 보낸 외교전문에는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통일에 착수하자는 조선인 (북한)들의 제창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어 1950년 5월29일 김일성은 슈티코프 당시 평양주재 소련대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소련이 지원한 무기와 장비가 모두 북한에 도착했다”며 “6월까지 완벽한 전투준비 태세를 갖추겠다”고 통보했습니다.

북한 인민군이 6.25 개전 당시 소련제 T-34 탱크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진격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소련은 전쟁이 발발한 뒤에도 북한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 51년 3월에는 북한에 2개 항공사단과 트럭 6천 대를 제공했습니다.

이렇듯 소련의 비밀문서가 대거 공개되면서 전세계 학계에서 6.25는 ‘김일성이 기획하고 스탈린과 마오쩌둥이 후원한 전쟁’으로 결론이 난 상태라고 워싱턴의 민간연구소인 윌슨센터의 로버트 해서웨이 연구원은 말했습니다.

[녹취: 윌슨센터 로버트 헤서웨이 연구원] “KIM IL-SUNG SENT NORTH KOREAN TROOPS CROSS DMZ AND…

북한 전문가들은 공개된 공산권 문서 외에도 6.25가 남침이라는 또 다른 분명한 증거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전쟁 발발 사흘만에 서울이 북한 인민군에 점령된 것은 6.25가 남침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는 겁니다. 다시 안찬일 소장입니다.

[녹취: 안찬일 ] “만약에 남한이 먼저 침략을 했다면 평양을 점령했겠지만, 당시 남한은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반면 북한은 철저한 준비와 기습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에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는 결과를…”

6.25 당시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돕는다’ 는 이른바 ‘항미원조’의 명분 아래 전쟁에 참전했던 중국의 입장도 조금씩 바뀌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중국은 ‘북침’ 남침’ 여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은 채, 미군이 압록강 등 북-중 접경지역까지 밀고 올라와 중국이 참전하게 됐다고만 설명해왔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최고 국책연구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은 지난 2014년 발간된 보고서에서 “조선 (북한)이 소련의 지지와 (소련으로부터) 강요된 중국의 묵인 아래 군사행동을 개시했다”고 기술해 북한의 남침을 시사했습니다.

이에 앞서 2010년 6월에는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발행하는 주간신문인 ‘궈지셴취다오’도 북한의 남침 사실을 기사화했다가 바로 삭제한 적이 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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