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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유년 시절: 20년간 격리된 채 '왕자'로 성장

  • 최원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4~5세 때 모습을 조선중앙TV가 지난 2014년 모란봉악단 공연 영상에서 공개했다. (자료사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4~5세 때 모습을 조선중앙TV가 지난 2014년 모란봉악단 공연 영상에서 공개했다. (자료사진)

베일에 싸여있던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어린시절 일화와 성장 과정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미국으로 망명한 김정은 위원장의 이모 고용숙의 증언이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1998년 미국으로 망명한 김정은 위원장의 이모 고용숙 씨 부부가 최근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트' 신문과 장시간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984년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수대예술단 무용수였던 어머니 고용희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고용숙은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내 아들이 같은 해에 태어나 태어날 때부터 놀이 친구였다”며 자신이 “그 둘의 기저귀를 갈아줬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김 위원장의 출생연도를 둘러싸고 1982년, 1983년, 1984년생 등 여러 관측이 있었는데 1984년으로 정리가 된 겁니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입니다.

[녹취: 안찬일] "북한 당국이 82년생으로 조작하려는 것이 여지가 있었는데, 고영숙이 이렇게 84년생으로 딱 못박아 놓으니까 북한이 우상숭배를 위해서도 태어난 연도를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김정은의 유년시절도 공개됐습니다. 고용숙은 김정은이 8살 생일잔치 때 계급장이 달린 장군 제복을 선물로 받았고, 군 장성들이 어린 김정은에게 경례를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권력자처럼) 대하는 상태에서 그가 보통사람으로 성장하기는 불가능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이 어렸을 때부터 장군 옷을 입었다는 것은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 씨의 증언과도 일치하는 대목입니다.

과거 13년 간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요리사로 일했던 겐지 씨는 지난 2001년 일본으로 돌아가 펴낸 책에서, 자신이 처음 김정은을 만났을 때 그가 군복을 입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고용숙은 또 어린시절 김정은이 “성질이 급하고 인내심이 없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인 고영희가 그만 놀고 공부를 하라고 꾸짖자 김정은이 단식투쟁을 했다는 일화도 소개했습니다.

고용숙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은은 12살 때인 1996년부터 스위스에서 유학생 생활을 했습니다. 세 살 위인 형 김정철과 여동생 김여정과 함께 스위스 베른에 있는 학교를 다니면서 서방의 음악과 스포츠 등 대중문화를 경험했습니다.

또 당시에는 리수용이 ‘이철’이란 가명으로 스위스주재 북한대사로 있으면서 김정은을 돌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정은은 어린시절부터 농구를 좋아했다고 고용숙은 증언했습니다. 어머니 고용희는 또래보다 키가 작았던 김정은이 농구를 하면 키가 클 것으로 생각해 농구를 시켰다는 겁니다. 김정은은 농구를 상당히 좋아해 농구공을 갖고 놀다가 잠든 적도 있다고 고용숙은 말했습니다.

김정은과 김정철, 그리고 김여정은 스위스에 있으면서 유럽 각국을 놀러 다닌 것으로 보입니다. 고용숙은 `워싱턴 포스트' 기자에게 김정은이 프랑스에 있는 디즈니랜드와 관광지인 리비에라, 그리고 이탈리아의 식당에서 찍은 사진 등을 보여주었습니다.

스위스 유학을 마친 김정은은 2001년 북한으로 귀국해 이듬해부터 김일성군사대학 특설반을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뒤 김정은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복형 김정남과 친형인 김정철을 제치고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가 됐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정남의 경우 ‘일본 방문’이 문제가 돼 후계구도에서 밀려났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정남은 지난 2001년 가짜 여권을 들고 일본에 입국하다 공항에서 적발돼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의 눈 밖에 났다는 겁니다.

이후 김정남은 홍콩과 마카오를 떠도는 신세가 됐습니다. 2010년 10월 중국 공항에 나타난 김정남의 목소리입니다.

[녹취:아사히 TV] "개인적으로 3대세습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내부 요인이 있었으면 따라야 합니다. 저는 원래 유감스런 것이 없고 관심도 없고 개의치 않습니다”

또 김정철은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후계자가 못했을 것으로 한국 동국대 북한학과의 김용현 교수는 분석했습니다.

[녹취: 김용현] "김정철의 성격 자체가 내성적인 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동생이지만 외향적이고 정치에 관심도 많고 대중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새롭게 밝혀진 김정은의 성장 과정과 관련해 몇 가지 주목할만한 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김정은이 북한의 일반 주민들과 격리된 채 20년 이상을 ‘왕자’로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최고 지도자가 됐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나온 자료를 종합할 때 김정은은 일반 주민들이 다니는 초, 중,고 학교를 다닌 적이 없습니다. 김일성군사대학 특설반만 하더라도 말 그대로 특설반이지 일반 대학은 아닙니다. 다시 안찬일 소장입니다.

[녹취: 안찬일] "김정은, 김정철, 김여정 모두 숨겨진 자식이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인민학교같은데 가서 얘들이 실수해서 ‘우리 아버지가 김정일’이라고 하면 난장판이 되기 때문에, 집에서 가정교사나 두고 가르쳤기 때문에, 일반 인민의 자식들이 어떤 고생을 하고 강냉이 밥을 먹는지 강냉이 죽을 먹는지 모르고 자라났기 때문에..”

미국의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의 방북도 농구에 대한 김정은의 오래된 애착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김정은은 지난 2013년 2월과 9월 평양을 각각 방문한 로드먼을 환영하며 술과 제트 스키, 승마를 함께 했습니다.

북한 대외보험총국 출신으로 지난 2003년 탈북한 한국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김광진 연구원입니다.

[녹취: 김광진] "로드먼을 초청하고 집착한 것은 그런 것은 유년 시절 외롭게 지내다가 농구에 취미를 붙인 농구에 대한 애착이죠”

김정은 위원장이 리수용을 중용하는 배경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처형된 장성택의 측근으로 알려졌던 리수용이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2014년 3월 외무상에 발탁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신설된 노동당 정무국 부위원장에 오른 건 스위스주재 북한대사 시절 김정은을 돌봤던 인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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