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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베트남 관계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과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이 지난 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자료사진)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과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이 지난 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자료사진)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지난 5월 23일,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난 40여 년간 베트남에 내려져 있던 무기금수조치를 해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한때 적국이었던 두 나라의 관계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될 전망인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베트남 전쟁과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 등을 살펴봅니다. 박영서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베트남 전쟁의 배경”

1950년대 말, 베트남은 공산주의자들의 북베트남과 자유 진영의 남베트남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당시는 냉전 시대로, 만일 북베트남의 공산당이 남베트남을 무너뜨리면 캄보디아, 라오스 등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남베트남 정부라도 자유주의 국가로 설 수 있도록 아이젠하워 정부 때부터 남베트남에 막대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베트남에 처음 들어선 ‘응오딘지엠 ‘정권이 공산주의 타도를 명분 삼아 대대적인 탄압과 폭정을 자행하다 쫓겨나고, 이어 쿠데타가 계속 발발하면서 베트남 사회는 극심한 혼란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남베트남에서 세를 불려가던 공산주의자들은 북베트남 공산 정권의 지원 아래 남베트남 정부를 전복하고 통일 공산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남베트남 정부군과의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합니다.

“미국의 개입, 통킹만 사건”

당초 내전의 양상을 띠고 있었던 베트남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게 된 것은 1964년 8월 베트남과 중국 앞바다 ‘통킹 만’에 정박 중이던 미국의 구축함이 북베트남의 어뢰에 피격을 당한 사건 때문입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미국 구축함이 두 차례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는데요. 하지만 당시 국방장관으로 베트남 전쟁을 주도했던 로버트 맥나마라 장관은 나중에 회고록에서, 구축함 공격은 한 차례였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이 같은 주장은 2005년에 기밀 해제된 미 국가안보국 자료로도 확인됐는데요. 그래서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던 미국 정부의 베트남 참전 동기와 판단에 대한 의혹과 비난이 또다시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맥나마라 장관을 포함해 행정부 고위관리들이 처음부터 두 번째 공격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안 건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미국은 통킹만 사건 발생 사흘 만에 베트남전 참전 결의안을 마련해 의회에서 표결에 부쳤는데요. 결의안은 하원과 상원에서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으로 통과됩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전쟁 수행 방법을 놓고 행정부 안에 강경파와 온건파로 갈라져 의견이 엇갈려 있는 사이, 남베트남 공산세력이 남베트남에 있는 미군 기지 2곳을 공격하는 사건이 또 발생합니다.

결국 존슨 정부는 1965년 3월 미군 3천5백 명을 파병하는 것으로 베트남 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종전과 공산 국가 수립”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개입 이후, 한국과 필리핀 등 주변국들까지 가세하면서 국제전 양상으로 확대됐지만 1973년, 닉슨 정부가 미군 철수를 결정하고, 1975년 사이공이 완전히 함락하면서 남베트남 정권이 무너지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베트남에 공산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과는 국교가 단절됐습니다.

미국은 첫 파병을 단행한 1965년부터 1975년까지 10년간 많은 인명과 경제적 손실을 입었는데요. 이 기간에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국인이 260만 명이 넘고요. 전사자가 5만8천여 명에 부상자가 15만 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생존자 가운데서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고요. 베트남전과 관련해 자살자가 적게는 7만 명에서 많게는 30만 명이 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경제적 손실도 엄청나서 이 기간 미국은 군사 작전 비용을 포함해 1천680억 달러, 2011년 기준으로 9천5백억 달러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40년이 넘었지만, 미국 내에서는 여전히 베트남전의 당위성과 미국의 역할, 고엽제 살포 등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논란이 있습니다.

“미국과 베트남 관계”

미국과 베트남은 1975년 베트남전이 끝나고 베트남이 공산화되면서 전면 단절됐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 말, 베트남이 캄보디아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미군 실종자 문제 등에 협조하면서 미국 정부는 1994년 베트남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를 해제합니다. 그리고 1995년 7월,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이 베트남과의 국교 정상화를 선언했습니다.

[녹취: 빌 클린턴 대통령 베트남 방문 연설]

클린턴 대통령은 2000년에는 직접 베트남을 방문해 종전 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베트남을 방문한 대통령이 됐습니다.

이후 20년간 두 나라는 정치, 경제, 군사, 인적 교류 협력을 꾸준히 확대해왔습니다. 양국 간의 교역규모는 지난 7년 새 3배나 뛰어 현재 450억 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고요. 지난해에는 미국의 대베트남 수출이 23%나 늘었습니다.

또 군사 안보나 인도적 지원 등의 협력 역시 크게 확대됐고요. 양국 간의 인적 교류도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요.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유학 중인 베트남 학생은 1만9천 명 가량인데요. 이는 2009년과 비교하면 40%나 늘어난 것입니다.

[녹취: 오바마 대통령 베트남 방문 연설]

지난 5월 23일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8년 만에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해 베트남에 내려져 있던 무기수출금지조치의 전면 해제를 발표했습니다. 앞서 미국 내 일각에서는 베트남의 인권 문제를 들어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현재 베트남은 미국과 더욱 적극적인 관계 발전을 바라고 있는데요. 미국 정부는 베트남 정부가 인권 개선을 위해 보다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녹취: 리틀 사이공 거주 베트남 청년] "I am Vietnamese and I do have a deep care and…"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는 베트남계들이 주로 많이 거주하는 ‘리틀 사이공’이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이곳에 사는 많은 베트남인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 대해 거는 기대가 특히 높은데요. 이곳에서 사업을 하는 소니 응엔 씨는 베트남은 여전히 빈곤한 제3세계 나라라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베트남 방문이 베트남 국민의 삶이 향상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과 베트남 관계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박영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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