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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화약고 팔레스타인


5일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에 공습이 발생했다.
5일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에 공습이 발생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요즘도 중동 지역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는 소식이 바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혈폭력사태입니다. 자살폭탄테러와 미사일 공습이 일상처럼 돼 버린 곳. 사람들은 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중동의 화약고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팔레스타인 문제 살펴보겠습니다. 박영서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팔레스타인의 지리적 위치”

팔레스타인은 서쪽으로는 지중해와 접해있고요. 북쪽으로 레바논과 시리아, 남쪽에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동쪽으로 요르단 강에 둘러싸여 있는 곳입니다. 전체 면적이 약 2만6천 제곱킬로미터니까 북한의 평안도나 남한의 경상도 크기만 한 작은 땅입니다.

팔레스타인 땅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지리적 정의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지만 대체로 오늘날의 이스라엘 영토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구역 일대를 말하는데요. 현재 이 지역의 80%는 이스라엘 영토고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요르단 강 서쪽 연안 지역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지중해 해안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가자 지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시작”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싸움은 한 마디로 땅 때문입니다. 이들의 분쟁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요. 역사학자들은 대략 기원전 60만 년 경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지금의 이스라엘인들의 조상인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조상인 블레셋인 등 여러 민족이 함께 거주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다 기원전 11세기경 이스라엘이 왕국을 건설하고 일대를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기원전 1세기경에 로마 제국에 멸망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고 이곳에는 주로 아랍인들이 살게 됩니다.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충돌하는 십자군 전쟁 등 몇 차례의 큰 전쟁을 겪은 후 이 지역은 오늘날 터키의 뿌리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으로 넘어갔습니다.

“분쟁의 씨앗을 남긴 외교정책”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독일 편에 섰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등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결국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연합군에 의해 분할되는데요. 그런데 이때 각자 이해관계들이 얽히면서 서로 다른 약속들을 한 것이 오늘날 분쟁의 씨앗이 되고 말았습니다.

첫 번째 약속은 전쟁이 한창이던 1915년, 당시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이었던 헨리 맥마흔이 아랍권과 한 약속인데요. 아랍권의 도움을 받기 위해 당시 아랍의 정치 지도자였던 후세인 빈 알리와 서한을 주고받은 겁니다. 연합군이 이기면 당시 오스만 제국에 속했던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인들의 국가를 세우는 걸 지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1년 뒤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등 연합군도 협약하는데요. 전쟁에서 승리하면 오스만 제국을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요르단 등으로 분할 통치하겠다는 거였습니다.

다시 한해 뒤인 1917년, 이번에는 당시 영국의 외무장관이었던 아서 벨푸어가 국가 수립을 추진 중이던 유대인들에게 약속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들이 국가 수립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당시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돈이 많기로 유명했고 연합군은 막대한 전쟁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전쟁의 와중에 혼란스럽게 펼쳐진 이런 중동외교정책이 결국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빌미를 제공하는 불씨가 됐습니다.

“팔레스타인 땅 분할”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많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오면서 이 지역에서는 다툼이 벌어지게 됩니다. 2차 대전 무렵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는데요. 독일의 독재자인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핍박하자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대거 밀려 들어와 버린 겁니다.

양측 간에 유혈 폭력사태가 끊이지 않자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을 맡고 있던 영국은 이 문제를 유엔으로 넘겨버립니다. 그러자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반반씩 나누는 이른바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표결에 부쳐 통과시킵니다. 하지만 이 분할안을 유대인은 환영했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에 사는 아랍인들의 반발은 컸습니다. 당시 인구 비율상 유대인은 아랍인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데 절반씩 나누는 건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또 더 비옥한 지역이 유대인들 차지가 됐다는 불만도 있었습니다. 어찌 됐건 이듬해 영국은 이 지역에서 철수하고 유대인들은 유엔의 결정을 근거로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수립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의 전쟁”

이스라엘은 건국 후 모두 4차례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 같은 중동 국가들과 전면전을 벌였습니다. 첫 번째 전쟁은 이스라엘 국가 수립에 반발한 주변국, 요르단과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같은 나라들이 연합해 이스라엘로 총공격해 들어간 건데요. 하지만 이스라엘은 막강한 자금력과 미국의 도움 등으로 승리합니다. 또 중동국가들이 연합군을 결성해 작은 나라를 공격하는 데 대한 국제적인 여론도 그다지 호의적이진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매번 승리를 거뒀고 그때마다 땅을 더 넓혀갔고요. 그러면서 수없이 많은 팔레스타인 난민들도 발생하게 됩니다. 1948년의 1차 중동 전쟁 이후 이 지역을 떠난 사람과 그 후손을 합친 난민 수는 65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추진”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수천 년간 살았던 팔레스타인 지역에 독립국가를 건설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라는 조직을 만들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추진했고요. 1994년에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국제사회에서 독립 국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계속 전개하고 있는데요. 지난 2011년에는 유엔 산하기관으로서는 최초로 유네스코로부터 정회원 국가 지위를 인정받기도 했고요. 지난 2015년에는 이스라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로마 가톨릭교 교황청이 팔레스타인을 공식 국가로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팔레스타인 극단 무장 조직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를 주도하고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이 계속되면서 요즘도 끊임없는 유혈 폭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마스는 지난 2006년 선거에서 승리한 이래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와도 마찰을 빚고 있습니다.

[녹취: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We will be determined to defend our borders, to defend our security..."

강경파로 유명한 베냐민 네탸나후 이스라엘 총리가 팔레스타인의 테러 공격을 비난하며 적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거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녹취: 마흐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we will not give up the our national position and we will not negotiate of ..."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반은 국가 존립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녹취: 팔레스타인 주민]"Israel has right of existence, the same way Palestine has right of..."

이 팔레스타인 남성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자 하나의 국가로서 평화롭고 안전하게 공존하길 바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도 나서서 양측이 서로 국가를 수립해 사이좋게 존립하도록 몇 년째 중재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수천 년에 걸쳐 이어져 온 양측의 갈등을 풀 뾰족한 묘수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지금까지 박영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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