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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북 억류' 비망록 낸 케네스 배] "북한, 클린턴 전 대통령 방북 은연중 요구…당시 기자회견 사전 각본 따라"


지난 2012년부터 2년간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오른쪽) 씨가 미국으로 돌아온 다음인 지난 2014년 11월 워싱턴주 루이스-맥코드 기지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여동생 테리 정 씨.

지난 2012년부터 2년간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오른쪽) 씨가 미국으로 돌아온 다음인 지난 2014년 11월 워싱턴주 루이스-맥코드 기지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여동생 테리 정 씨.

지난 2012년부터 2년간 북한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가 오늘(3일) 북한 억류 비망록 ‘Not Forgotten’을 출간했습니다. 배 씨는 지난달 29일 비망록 출간을 앞두고 가진 ‘VOA’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체포 경위에서부터 재판과 장기 구금을 거쳐 석방에 이르는 기나긴 과정을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배 씨는 북한이 ‘반공화국 적대범죄행위’의 배후에 오바마 행정부가 있다는 일방적 전제하에 자백서를 비롯해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전화통화 내용, 외신 기자회견 발언까지 사전에 각본을 짜줬다고 회고했습니다. 또 수감 시절 가혹행위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이듬해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자 성난 군중들이 자신을 죽일 수 있다고 위협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사전 접견권이 허용되지 않아 변호사 선임을 포기했고, 재판에 현지 스웨덴 대사의 참관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형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재판 후 미국 정부의 반응에 모든 게 달려있다는 말을 북한 당국으로부터 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배 씨는 특히 북한 측이 김일성 주석을 신으로 간주하면서 자신에게 주체사상을 주입해 북한 체재로의 전향을 시도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북한 측이 이름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존 케리 국무장관 급의 방북을 은연 중에 요구했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비정부기구를 설립해 북한 주민과 탈북자를 돕는 활동을 펼칠 계획인 배 씨의 비망록은 이달 말 ‘잊혀지지 않은’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도 번역 출간됩니다.

케네스 배 씨를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영문기사 보기] Former American Detainee Says North Korea Tried to Use Him as Negotiating Tool

기자) 북한 억류 2년을 회고하는 비망록을 내셨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어떤 얘길 하고 싶으셨죠?

케네스 배 씨) 제가 이번에 책을 내면서 정말 지난 2년 동안 억류돼 있는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신실하게 행하셨던 일들과 그리고 북한 사람들의 실생활, 그리고 또 우리가 앞으로 북한을 대할 때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그런 계기가 되기 위해 제가 책을 썼습니다.

기자)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으시겠지만 2012년 11월 억류 당시로 시간을 좀 되돌려 보겠습니다. 소지하셨던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를 북한 당국이 문제 삼은 것으로 아는데 거기 어떤 내용들이 담겼었습니까?

케네스 배 씨) 제가 소지했던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에는 제가 6년 동안 사역했던 사역 정보들과 사진들, 선교 편지들, 이런 내용들이 들어가 있고요. 그 외에 또 문제가 됐던 이유는 서방 언론에서 제작한 북한에 대한 동영상들, 이런 다큐멘터리들이 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이 문제가 돼서 제가 억류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죠.

기자) 그 하드 드라이브를 고의로 북한에 반입한 게 아니라 실수로 갖고 들어가신 거잖아요.

케네스 배 씨) 예, 그렇습니다.

기자) 억류되기 전까지 북한을 몇 번이나 방문하셨죠?

케네스 배 씨) 제가 총 18번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니까 (억류 전까지) 17번을 방문한 거죠.

기자) 17~18번을 방문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케네스 배 씨) 제가 북한에 대한 마음을 품고 선교사역을 시작하게 됐기 때문에 2010년에 처음으로 북한을 가보게 됐습니다. 북한에 갔을 때 그 곳에서 사역하시는 분들의 사역처를 돌아보고 그런 과정 속에서 관광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올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걸 제가 알고, 그렇다면 기도하는 사람들, 특히 기독교인들을 그 땅에 데리고 와서 그 땅을 보고 또 기도하고 예배하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사람들을 인도해서 북한을 들어갈 목적으로 여행사를 만들었고요. 그래서 2년이라는 시간 동안에 제가 18번을 방문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기자) 억류 경험을 담은 책에는 물론 가명이겠지만 ‘송희’라는 이름의 북한 주민도 등장하던데, 단둥에서 북한 주민들과 자주 접촉할 기회가 있으셨는지요?

케네스 배 씨)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북한 주민들과 자주 접촉하거나 북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주로 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한테 오게 된 북한 분들 몇 분 중 한 분이 (책에) 송희라는 이름으로 쓴 그런 분이었습니다.

기자) 그리고 나서 나선시에서 체포돼 조사를 받으신 거죠? 북한 당국이 뭘 알아내기 위해서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었던 건가요?

케네스 배 씨) 첫째 제가 억류된 이유는 단지 ‘내셔널 지오그래피’에서 만든 동영상이 문제가 됐기 때문에, 이 사람이 왜 그러한 동영상을 외장하드에 담아 들어왔는지에 대한 것 때문에 제가 조사를 받게 된 것이고요.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선교편지라든지 이런 것들 보면서 제가 선교사인 걸 그들이 알게 되고 또 그 외에 어떤 목적으로 제가 일을 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그들이 억류하면서 하나씩 조사하게 된 것이죠.

기자) 조사하면서 혹시 가혹행위는 없었고요?

케네스 배 씨) 뭐 구타를 한다든지 이러한 가혹행위는 없었습니다. 제가 책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하루 종일 세워 놓는다든지 잠을 조금 재우지 않는다든지 식사를 조금 적게 준다든지, 이러한 일들은 있었으나 폭행이나 구타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기자) 당시에 사형 위협도 계속 받으신 거죠?

케네스 배 씨) 나중에 위협하는 목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위협을 받은 적은 조사하는 과정 중에 있었고, 예심과정에서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 죄목이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해당된다는 것을 계속 강조했던 일이 있죠.

기자) 김일성 주석이라는 그야말로 신이 있기 때문에 다른 신은 필요 없다, 북한 관리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을 이번에 쓰신 책에서 봤거든요. 정말 김일성 주석을 신으로 간주하던가요?

케네스 배 씨) 그렇습니다. 북한에는 유일영도체제에서 더 나아가 신격화를 해 온 상태가 오래됐기 때문에 그들에게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건 영도자고 그 영도자는 다름아니라 김일성인 것이 그들의 신명이고 그들의 자랑인 것입니다.

기자) 조사과정을 묘사하신 글을 제가 죽 보니까요, 케네스 배 씨의 단둥과 북한에서의 활동을 북한 측은 자꾸 미국 오바마 행정부, 또 정보기관의 사주로 몰아가려고 했던 그런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케네스 배 씨) 그 분들은 자기들을 반대하는 모든 적대행위가 뒤에는 사주하는 배후가 꼭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지목하는 배후를 항상 오바마 행정부나 CIA같은 정보기관으로 그들이 보고 거기에 맞춰서 수사를 한 걸로 제가 압니다.

기자) 그렇다면 진술서 역시 북한 측이 원하는 방향으로 쓸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겠군요.

케네스 배 씨) 제가 한 달 동안 여러 번 제가 선교사이고 정치나 정보기관과 상관없다는 것을 누차 밝혔고요. 하지만 결국 맨 마지막에는 제가 미국과 남조선의 “반공화국적대정책”에 편승하여, 뭐 이런 식으로 그들이 원하는 단어를 사용하여서 결국은 마지막 자백서를 작성하게 된 것이요.

기자) 그렇게 나선에서 조사를 받고 평양으로 호송됐는데요. 평양에선 어디 수감돼 계셨죠?

케네스 배 씨) 평양에선 보위부, 우리로 따지면 보위부 안가 정도 되는, 알 수 없는 건물에 제가 갇혀 있었고요. 다른 외국사람들도 그 건물에 주로 머물렀던 걸로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기자) 책에는 2층 건물로 묘사가 돼 있고 방 벽에 써 진 영어 낙서를 통해서 아마 그렇게 유추하신 걸로 생각이 되는데요. 그 시기가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당시와 겹치거든요. 북한 측은 당시에 ‘광명성3호’라는 위성으로 불렀습니다만, 당시 북한 현지 분위기 기억이 나시죠?

케네스 배 씨) 저는 처음에 평양으로 갔을 때 그들이 곧 집으로 보내준다는 약속을 받고 갔기 때문에 얼마 되지 않아서 제 문제가 잘 풀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갔었습니다. 그랬는데 (2012년) 12월 초순에 그들이 광명성3호라는 로켓을 발사하면서 나름대로 축제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저에게는 그 분위기 자체가 제가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으로 번져가는 것으로 볼 수 있었고요. 특별히 핵실험을 감행한 후에는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가 아주 높아져서 그들 분위기 속에선 미국을 타도하고 전쟁을 하겠다는 분위기로 당시 나아갔기 때문에 제가 그 곳에 있는 것이 가장 어려운 시기 중 하나였습니다.

기자) 지금 말씀하신 부분은 제가 책에서 겹쳐서 떠오르는 게요. 북한 주민들이 지금 미국에 화가 굉장히 많이 나 있기 때문에 “당신을 죽여서, 그대로 버릴 수도 있다” 이런 상당히 심각한 위협까지 들은 걸로 봤거든요. 분위기가 굉장히 험악했나 보죠?

케네스 배 씨) 제가 그 당시에 모든 것을 다 협조하고 잘 따라간다면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그들의 말에 동의하고 따라갔으나 나중에 분위기가 험악해지면서 무기징역이나 사형으로 가는 것으로 보고, 이건 그대로 따라갈 수 없다는 제 의사를 표현하니까 그런 위협을 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따라가지 않는다면 성난 군중들이 그러한 위협 행위를 감행할 수도 있다는 그런 식으로 위협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기자) 죽일 수도 있다는 말까지 포함해서요.

케네스 배 씨) 네.

기자) 가족에게 거기서 편지를 처음 쓰신 건데, 그러면 편지 내용 역시 북한 측이 어떻게 쓰라, 이렇게 지시를 하고 그런 건가요?

케네스 배 씨) 네. 모든 편지는 다 검열을 받게 돼 있고요. 어떤 방향으로 써야 한다는 걸 얘길 하고, 제가 쓴 다음에 그 내용이 마땅치 않다든지 아니면 원하지 않는 내용이 들어 있으면 또 쓰게 하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기자) 그건 가족과 전화할 때도 마찬가지였겠죠.

케네스 배 씨) 그렇습니다. 불필요한 말은 할 수 없게 돼 있고 어떤 요지의 어떤 얘기를 해야 된다는 얘기를 제가 사전에 통보를 받고 거기에 맞춰서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자) 사전에 각본이 짜인 요구사항이 뭐였을까요?

케네스 배 씨) 사전에 짜인 것은 결국 가족들로 하여금 미국 정부에게 요청을 하고 압력을 가할 수 있도록, 그래서 외교적인 노력을 다 해 줄 것을 요청하는 전화였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무엇보다 대우를 잘 받고 있고 미국 정부가 뭔가 석방 노력을 해 달라, 북측이 그 부분을 계속 요구한 것 같은데, 그 때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가 당시 에릭 슈미츠 구글 회장하고 같이 방북해서 케네스 배 씨 문제를 북측에 직접 전달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런 움직임들을 현지에서도 감지 하셨었죠?

케네스 배 씨) 저는 그냥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뉴스를 통해서 빌 리처드슨 전 주지사가 구글 회장하고 입국한 걸 제가 알게 되었고요. 나중에 가서 그 분이 제 아들의 편지를 전달해 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자) 나중에 재판이 잡혔는데, 그게 억류된 지 반 년쯤 되는 시기가 아닌가 싶은데요, 4월이었던 것으로 제가 기억을 하는데 변호사 선임을 그 때 안 하셨죠? 왜 그러셨나요?

케네스 배 씨) 제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얘기를 검사한테서 들었습니다. 전체주의 체제 나라에서 변호사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 제가 판단이 서지 않았고요. 그래도 혹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단은 제가 변호사를 만나보고 선임 여부를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이 분들이 변호사를 미리 만나보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그래서 제가 언제 만날 수 있느냐고 했더니 재판 당일에 재판장에 볼 수 있다, 이런 얘길 해서 그렇다면 제가 변호사 선임을 사양하겠습니다, 이렇게 제가 얘기를 했습니다.

기자) 사전 변호인 접견권도 허용이 안됐고, 그럼 현지에서 미국인들 보호를 평양주재 스웨덴 대사가 맡아서 하고 있는데, 스웨덴 대사는 재판에 참관할 수 있었나요?

케네스 배 씨) 할 수 없었습니다. 재판에 참여하겠다고 저에게 말씀도 주셨는데 재판 자체가 비공개로 진행된다면 그 누구도 참여할 수 없다, 이렇게 됐는데 그래도 요청을 하겠다고 했는데 결국은 오시지 못했습니다.

기자) 전체적인 재판과정을 한 가운데서 당사자로서 체험하면서 어떻습니까,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공정한 재판이 이뤄졌나요? 지금 말씀 들어보면 그런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것 같은데.

케네스 배 씨) 재판 과정이라는 건 1시간 15분 남짓 걸렸고요. 하지만 이 분들이 말씀하시는 건 예심이라는 과정을 통해 4달 반 동안 모든 조사를 다 마쳤기 때문에 재판이라는 것 자체는 그냥 판결하는 절차인 걸로 압니다. 그래서 이것이 북한 정부 입장에서는 당연히 공정하고 정의로운 재판이라고 그들이 얘길 할 것이고요. 제 입장에서는 제가 미국 등 서방이나 밖에서 봤던 그런 시스템하고는 다르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인정하긴 좀 어렵죠.

기자) 그 재판 자체가 일종의 요식 행위이고 따라서 실질적인 형량 보다는 북한 측에 정말 중요했던 건 사실 재판 이후의 상황, 그러니까 미국 정부가 여기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 그런 느낌을 가지신 걸로 제가 책에서 인상을 받았습니다.

케네스 배 씨) 그 재판 전에 벌써 그런 언질이 있었습니다. 이번 재판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재판 후에 미국 정부의 태도와 그들이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에 달렸다는 걸 미리 언질 받았기 때문에 저는 재판 결과는 어차피 무죄를 주장한 것이 아니고 유죄를 시인했기 때문에 몇 년 정도의 형을 받을 것이라는 건 제가 알고 있었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그 과정 내내 협상카드로 줄곧 사용된다, 이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겠군요.

케네스 배 씨) 네, 특별히 제가 (2013년) 4월, 5월 달에는 미국과의 긴장이 가장 심했던 달이었기 때문에 전쟁분위기로 갔던 상황이라서 제가 협상카드로 사용되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기자) 실제로 북한 내부에서는 정말로 미국과 전쟁이 임박했다, 이렇게들 느끼고 있었나 보죠?

케네스 배 씨)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그리고 또 언론에 노출되는 그 모든 과정 속에서는 진짜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그런 분위기, 그런 것을 제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담당했던 최고 검사도 얘기하기를 자기 아들이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대학을 관두고 군대 가는 걸 탄원했다, 이렇게 얘길 했습니다. 미국과 전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제는 전 나라가 전쟁에 임박해 있다는 식으로 저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기자) 주체사상, 글쎄요 이걸 김일성 주의라고 해야 하나요? 북측이 그런 사상 쪽으로 케네스 배 씨를 오히려 전향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얘기도 책에 있던데요. 유명하게 만들어주겠다면서.

케네스 배 씨) 네, 그런 적도 있습니다. 정치지도원 같은 역할을 하는 정치 비서 같은 분이 저를 매주 한 번씩 만나서 제가 잘 있는지, 건강 문제는 없는지, 이런 것들을 살펴보는 역할을 하시는 분이 있었고요. 그 분이 저한테 주체사상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없느냐, 그래서 거기에 필요한 책을 주면서 공부를 하면 좋겠다, 언질들을 하고 발언들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심 과정에 있을 때 김정일이 쓴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든지 김일성 회고록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에 제가 사양을 했습니다.

기자) 억류 기간 내내 북한이 케네스 배 씨를 인질로 삼은 채 미국에 원했던 것은 결국 전직 미국 대통령의 방문 아니었습니까?

케네스 배 씨) 이 분들이 강조한 것은 전직 대통령 급이나 현직 장관급이 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죠. 그래서 실질적으로 미국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 또 사람들이 얘기하면 다 알 수 있는 사람이 와야 급이 맞고 또 그만큼 제가 위중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정도 사람은 와야지 뭔가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그런 언질을 한 것이죠.

기자) 특정 이름을 거론한 적이 있습니까?

케네스 배 씨) 특정 이름은 거론을 회피했는데 2009년도 여기자들 사건을 여러 번 강조했기 때문에 제가 거꾸로 물어봤습니다. 그러면 대통령 급이라는 것은 결국은 클린턴 대통령을 원하느냐, 이렇게 물어봤는데 저한테 직접 원한다는 얘긴 하지 않았지만 그 때는 이런 분이 왔었는데 왜 지금은 오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여러 번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기자)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야 뭐 카터 전 대통령, 아버지 부시, 아들 부시 전 대통령, 그리고 클린턴 전 대통령, 이렇게 4명 남는데 그 중에서 결국 떠오르는 인물도 달리 없네요.

케네스 배 씨) 제가 그 후에 1년이 지나서도 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 제가 결국은 도대체 누구를 원하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했고요. 그리고 올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 또한 하였습니다. 그래서 클린턴 대통령은 2016년에 부인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 후보로 나올 것이기 때문에 올 수 있는 상황이 전혀 못되고 카터 대통령은 지금 연세가 많으셔서 오기 어려울 거다라고 제가 얘길 했습니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 두 분은 (북한에서) 워낙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오기 어려울 거다라고 얘기했고요. 그래서 2009년도와 지금은 다르다는 얘기를 제가 했고. 그랬더니 그러면 장관급이 와야 된다는 그런 언질을 했습니다. 그래서 케리 장관쯤 되는 사람이 오기를 이 분들이 희망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결국 나중에 장관급인 클래퍼 정보국장이 그 곳을 방문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기자) 노동수용소가 북한 어디 위치해 있습니까?

케네스 배 씨) 제가 있었던 곳은 제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만, 평양 시에 들어갑니다만 외곽에 있기 때문에 시내에서 한 20분, 25분 떨어진 거리에 있습니다, 차로.

기자) 수용소에서 조선신보와의 첫 인터뷰가 이뤄졌었는데 인터뷰에서 할 말도 북한 측이 대충은 정해주나요?

케네스 배 씨) 꼭 그렇진 않습니다만,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 잘 얘기하라고, 일단 미국 정부에 호소할 것과 가족들에게 호소할 것을 잘 얘기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지침은 줬죠. 그리고 조선신보에서 질문을 다 만들어서 왔기 때문에, 그 질문들이 북한 정부와 협의한 질문인 것으로 전 알고 있습니다.

기자) 수용소에서 건강악화 때문에 병원으로 옮겨졌고 억류기를 보니까 처음 알려진 사실이 그 때 미국 백악관 직원의 방문을 그 때 받으셨더라고요. 국가안보회의, NSC 소속으로 나와 있던데 누가 왔었던 건지는 잘 모르시는 거죠?

케네스 배 씨) 네, 제가 책에 밝히지 못했고요. 이것은 비밀리에 방문한 것으로 했기 때문에 국가안보회의, 당시 본인이 이름을 밝히셨습니다만, 저는 너무 그 때 정신이 없어서 정확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기자) 방문 목적은 정확히 뭐였는지요?

케네스 배 씨) 저의 석방을 협상하기 위해 오신 걸로 알고 있고, 그리고 현재 건강상태가 어떤지에 대해 알기 위해서 의사를 대동해서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 가족들에게 보여줄 것이라면서 케네스 배 씨 사진을 찍어갔다는 얘기가 책에 나오거든요. 그 사진이 가족들에게 전달이 안됐습니까?

케네스 배 씨) 네, 전달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아마 백악관에 제가 어떤 상태로 있는지 보여주기 위한 그런 사진을 찍어가신 것 같습니다. 당시 방문 자체가 비밀리에 진행됐기 때문에 결국은 가족들에게 이분들이 왔다 갔다는 걸 밝히지 않았었습니다.

기자)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방북이 2013년 8월로 잡혔었는데, 억류 미국인 석방 교섭을 하러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다들 그 때 풀려나시는 건 줄 알았거든요. 방북이 그 뒤에 일방적으로 취소가 됐고 북한에 계시면서 그 이유를 뭐라고 들으셨죠?

케네스 배 씨) 그 이유는 첫째 그 분들이 말씀하기를 로버트 킹 대사가 일본에서 군용기를 타고 오려고 했다,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굉장히 불쾌하게 느껴졌고요. 그래서 이 분이 부랴부랴 취소하고 그럼 민항 항공기를 타고 들어가겠다, 이렇게 얘기했다는데 결국은 바로 B-52 폭격기 편대가 아마 한국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오시기 전에. 그래서 그걸 아주 불쾌하게 여겨서 방북을 취소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 방북이 취소돼서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셨겠습니다.

케네스 배 씨) 그런데 저는 그 때 당시에 몰랐습니다. 오시는 걸 몰랐고 나중에 그 분 방북이 취소되고 한 1주일 후에 백악관에서 특사가 온 다음에 저희 어머니 편지를 받고서야 제가 직접 알게 되었고요. 그 분들이 그 때 가서야 얘길 해 주신 것입니다.

기자) 노동교화소에선 농사일 말고 또 어떤 일을 하셨죠?

케네스 배 씨) 첫 여름에는 주로 농사일을 했고요. 겨울에는 석탄재를 부수고 그걸 비료로 만드는 작업이라든지, 아니면 땅을 파서 하수도 공사를 한다든지 이런 일들을 했고요. 그 다음 여름에는 주로 길 정리라든지 아니면 도랑에서 돌을 나르는 것, 그러니까 150m되는 거리를 돌을 손에 들고 나른다든지 수레에 끌고 다닌다든지 그야말로 중노동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강도가 높은 그런 일들을 결국 하게 되었습니다.

기자) 고생을 상당히 많이 하셨는데, 수감 시절 내내 북측에선 오히려 호텔비라든지 병원비, 식대도 있고요, 이런 비용 문제로 압박을 했다는 얘기도 읽었는데 얼마나 청구를 했습니까, 북한에서?

케네스 배 씨) 첫 한 달 동안 제가 나진에 수감돼 있을 때는 중국 돈 한 2만원 정도를 미리 보내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고요. 그리고 나서 처음 네 달 반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이 분들이 하루에 6백 유로를 청구하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약 10만 1천 유로가 나와있다, 그걸 미리 갚아라, 이런 식으로 저한테 요구를 했고요. 그것을 미국 정부에 얘기해서 빨리 갚으라고 해라, 이런 식으로 얘길 했습니다. 아마 총 수감기간에 30만 달러에 가까운, 자기들 계산에 의하면 그러한 비용이 산출됐을 걸로 압니다.

기자) 석방 당시에 북한 측이 이 돈을 따로 요구하진 않았나 보죠?

케네스 배 씨) 네, 따로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미국 측에) 물어봤을 때 북한 측에서 병원비나 체류비에 대한 요구사항은 없었다, 이렇게 얘기 들었습니다.

기자) 네, 바로 그 시기에 다른 미국인 매튜 밀러가 북한 당국에 억류됐었거든요. 억류 기간 동안 수용소라든지 다른 시설에서 만날 기회가 좀 있었나요?

케네스 배 씨) 전혀 없었습니다.

기자) 그리고 이제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전격 방북하게 되는데, 석방 교섭을 위해서 누군가 미국에서 왔다, 이런 정황을 읽을 수 있었는지, 그 날 일을 좀 설명해주시죠.

케네스 배 씨) 석방된 날이 (2014년) 11월8일이고요. 11월7일 저녁에 저녁 한 9시 넘어서 담당검사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보통 검사가 1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데, 보통 오후 시간에 찾아옵니다만 밤 늦게 찾아온 건 처음이었고요.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에 7시 반까지 준비해서 인터뷰를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얘길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를 잘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언질을 하고 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혹시 미국에서 누가 왔느냐고 물어봤더니 오지 않았다고 얘기하고, 인터뷰니까 인터뷰를 잘 하라고, 그 대신 이번에는 북한 정부에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고, 다시 한 번 사죄하는 식의 인터뷰를 하라고 해서 아마 내일 특별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제가 하게 되었고요. 다음날 아침 7시 반에 데리러 와서 짐을 왜 안 쌌느냐, 이렇게 저한테 물었습니다. 짐을 싸라고 얘기한 적 없기 때문에 싸지 않았다고 했더니 자기들이 짐을 싸겠다고 해서 제가 교화소로 가든지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거 아닌지 그런 느낌을 받았고요. 그리고 아침에 호텔로 가서 기다리는데 미국 사람 3명이 저를 만나러 들어왔습니다. 아침 9시에 간단한 건강검진같이 물어보고 20분 정도 저와 시간을 보낸 다음에 그들이 나갔고요. 그리고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제가 방에서 기다렸고요. 오후 3시가 돼서 방문이 열리면서 저를 차에 태워서 다른 데로 이동하고, 그 후에 고려호텔에 들어가서 2층 컨퍼런스룸(회의장)으로 들어가니까 그제서야 “원수님의 특별한 배려로 특별사면을 받게 됐다”는 교화소 소장의 얘기를 듣게 된 것입니다.

기자) 당시 처음 본 클래퍼 국장 일행 얼굴이 상당히 굳어있었다, 이렇게 묘사가 돼 있거든요. 심기가 굉장히 불편한 것처럼 보인 걸로 이해가 됐는데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고 계신가요?

케네스 배 씨) 제가 어떤 상황인지 알게 된 것은 돌아와서 입니다. 미국 언론에 거론된 걸 통해서 알게 됐는데, 그 것 중에 하나는 제가 오후 3시까지 어떻게 될 것인지 알지 못했던 것처럼, 특별하게 저를 위한 협상이 진행된 게 아니고 아마 그 분들도 오후까지 어떻게 될 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던 것으로 알고 있고요. 마지막에 고려호텔에 도착해서야 저를 데리고 갈 수 있다는 언질을 그 때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회의장에 그 분들이 들어오실 때는 굉장히 얼굴이 굳어 있었고 화가 나 보이는 얼굴이었기 때문에 제가 굉장히 반가우면서도 굉장히 죄송했었습니다. 저 때문에 이러한 어려움을 겪으시는 걸 보면서 죄송도 했고 굉장히 감사도 했습니다.

기자) 북한이 원래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원래는 원했었는데, 중간에 로버트 킹 특사라든지 다른 미국 인사들의 방북은 허용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결국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의 방북으로 케네스 배 씨 억류를 종결 지은 배경은 뭐라고 보시는지요?

케네스 배 씨) 저는 당시 상황이 북한의 인권 문제가 강조되면서 북한의 어떤 제스처가 필요했던 걸로 저는 생각됩니다. 그 분들이 원했던 장관급 인사가 오고, 또 미국의 정보국장이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그래도 뭔가 실권에 가까운, 이런 식으로 그 분들이 보았을 것이기 때문에 뭔가 특별한 오바마 대통령의 메시지를 갖고 왔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방북을 허용한 것으로 제가 알고 있고요. 하지만 특별한 메시지가 없었던 걸 알았을 때 그 분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로 인정을 못 하겠다, 이러한 위협 발언도 하게 되고 굉장히 어렵게 그들을 대한 걸로 저는 나중에 신문 기사를 통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자기들이 원했던 급의 인사가 오지 못하는 것을 알고 현직 장관급의 인사라는 것을 미국 측에서 수용했기 때문에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무엇인가 물꼬가 트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아마 오게 한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기자) 바로 그 자리에 북한 대표로 나선 4성 장군이죠, 책에는 그 사람이 나중에 보니까 김원홍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장이더라, 이렇게 나와 있는데 지금은 북한 실세 중 실세로 알려져 있는 사람이거든요, 어떤 인상을 받으셨죠, 당시엔?

케네스 배 씨) 제가 그런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에 특별하게 그 분에 대한 인상이라는 건 없었고, 제가 나중에 보니까 연세가 굉장히 많은 분으로 나오던데, 군복을 입고 와서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명령서를 전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군대식의 경직된 그런 모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책에서 묘사한대로 굉장히 무섭게, 어떻게 보면 위협적인, 그러한 카리스마가 있는, 그런 식으로 그 분이 들어와서 전달하고 하는 모습을 제가 지켜본 것이죠.

기자) 북한에 계실 때 미국인 몇 명이 추가로 억류됐었는데요. 제프리 파울 씨도 있었고 매튜 밀러 씨도 있었고, 그 밖의 다른 미국인들의 경우에는 보통 북한에서 재판 과정을 잘 안 거치고 그냥 몇 달 안에 풀려나기도 했거든요. 반면 유독 케네스 배 씨만 2년씩이나 잡아둔 이유,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이런 차별 때문에 미국에선 북한이야말로 백인우월주의자 아니냐, 이런 비판도 있었거든요.

케네스 배 씨) 네, 저한테도 그런 얘길 했습니다. 제가 진짜 미국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에서) 오지 않는 것 아니냐, 이런 식의 질문을 (북한 측으로부터)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2009년 억류된 기자 2명도 아시아계였기 때문에, 그것과는 상관없다는 얘기를 했고요. 아마 그 전에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이나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이뤄졌기 때문에 더 이상은 북한 정부의 요구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걸로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도 했습니다. 항상 미국 시민이 억류될 때마다 (전직) 대통령을 보낼 순 없지 않느냐, 이런 얘기를 그들에게 되려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가장 민감한 시기였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타협되지 않은 것으로 저는 그렇게 판단하게 된 겁니다.

기자) 북한에서 풀려나신 지 1년 반이 다 되가는데요. 그 동안 어떤 일을 하면서 지내셨는지, 또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케네스 배 씨) 네 저는 1년 동안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아무래도 쉬는 시간을 보냈고요. 그 기간 동안 제가 갔다 왔던 얘기를 정리하는 책을 집필하는 일을 지금까지 한 것입니다. 이제 올해부터는 특별히 다른 억류된 미국 분들과 캐나다의 임현수 목사님, 이런 분들이 지금 억류돼 있는 상화이기 때문에 제가 그 분들의 심정과 상황을 잘 알고 또 그 가족들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을 제가 잘 알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고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명운동에 동참하고 언론에 알리는 일들, 사람들에게 기도하는 일을 부탁하는 일들, 이런 것들을 전개해 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중의 하나는 저는 아직도 북한에 대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잊지 말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이 책의 제목을 ‘잊혀지지 않은 (Not Forgotten)’으로 하고 집필하게 된 것이고요. 그래서 앞으로 북한 동포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함께 설 수 있는 일을 하는 NGO를 하나 만들어서 동포들을 돕는 일, 한국에 정착해 있는 탈북민들을 돕는 일이라든지, 이런 일을 해보고자 지금 구상 중에 있고 기도 중에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북한에 가서 하는 일은 못 한다 하더라도 나중에 정권이, 정책이 바뀐다든지 이렇게 돼서 다시 갈 수 있는 날이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현재로서는 제가 조금이라도 북한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기자) 오늘 힘든 얘기를 꺼내주셔서 감사하고요. 이번에 쓰신 책 ‘Not Forgotten (잊혀지지 않은)’이 북한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구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북한 억류 비망록 ‘Not Forgotten’을 출간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로부터 2012년부터 2년간 이어진 억류 생활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습니다. 대담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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