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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한국전 종군 미 여기자 '5월의 전쟁영웅' 선정


한국전 종군기자인 마거릿 히긴스 기자의 생전 모습. 사진 출처 = 한국 가보훈처.

한국전 종군기자인 마거릿 히긴스 기자의 생전 모습. 사진 출처 = 한국 가보훈처.

한국 정부가 6.25 전쟁의 참상을 전세계에 생생하게 전한 미국인 여기자를 ‘5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했습니다. 이 여기자는 한국전쟁에 관한 보도로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국가보훈처는 29일 한국전쟁 종군기자인 미국인 마거릿 히긴스 기자를 5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국가보훈처는 보도자료에서 히긴스 기자가 취재 기간의 대부분을 최전선에서 보내며 6.25 전쟁의 참상을 전세계에 알렸고, 늘 종군기자의 사명감으로 현장의 위험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는 앞서 지난 2010년에는 최고 훈장의 하나인 수교훈장 흥인장을 히긴스 기자에게 수여한 바 있습니다. 한국전의 참상과 한국이 당면한 국가 생존의 어려움을 전세계에 알린 용기와 공로를 인정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당시 훈장은 1966년에 별세한 히긴스 기자를 대신해 딸인 린다 밴더블릿 씨가 한국을 방문해 대신 수상했습니다.

히긴스 기자는 북한 군의 기습 남침 이틀 후인 6월 27일 서울에 파견됐습니다.

미국의 ‘뉴욕 헤럴드 트리뷴’ 신문 극동 특파원이었던 그는 6월 28일 한강 인도교 폭파, 서울 함락,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의 한강 방어선 시찰 등 한국전쟁 주요 사건들을 취재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미군 장성이 여성인 그의 안전을 이유로 일본으로 강제추방 시켰고, 히긴스 기자는 이에 굴하지 않고 상급자인 맥아더 사령관에게 호소해 종군 취재를 허가 받았습니다.

최전방으로 복귀한 히긴스 기자는 미군과 한국 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는 과정을 취재했고, 특히 한국 해병대를 중심으로 펼쳐진 통영상륙작전을 묘사하면서 한국 해병대의 별칭을 짓게 됩니다. 아직도 한국에서 널리 인용되는 ‘귀신 잡는 해병대 (They might capture even devil)’라는 표현을 기사에 쓴 것입니다.

이후 1950년 9월 15일 히긴스 기자는 인천상륙작전을 종군 취재했고, 이 때 송고한 기사로 국제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퓰리처상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도상으로, 여성이 이 상을 받은 건 히긴스 기자가 처음입니다.

히긴스 기자는 1950년 11월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미 해병대가 12만 명의 중공군에 맞섰던 장진호 전투도 취재하는 등 한국전 개전 초기 6개월 간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와 ‘자유를 위한 희생’ (War in Korea)라는 1천 쪽 분량의 한국전쟁 기록을 담은 책을 출간했습니다.

히긴스 기자는 1966년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다 풍토병으로 사망했습니다.

한국 국가보훈처는 2016년 ‘이달의 6.25 전쟁영웅’으로 히긴스 기자 외에 13 명을 선정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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