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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달러 지폐 속 인물 알렉산더 해밀턴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 (자료사진)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 (자료사진)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최근 뉴스에서 자주 접하셨을 텐데요. 미국의 새 20달러 지폐에 19세기 흑인 노예 해방가였던 해리엇 터브먼의 초상이 들어가게 됐습니다. 사실 원래 미국 당국은 20달러 지폐가 아니라 10달러 지폐 속 인물을 바꿀 계획이었는데요. 하지만 만만찮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그대로 남게 된 겁니다. 자칫 그냥 역사 속의 인물로 묻힐 뻔했던 10달러 초상화의 주인공, 누군지 궁금하시죠? 네, 바로 알렉산더 해밀턴입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에 대해 전해드리겠습니다.

“미국 재무부는 왜 지폐 속 인물을 교체하려는 걸까요?”

[녹취:잭 루 재무부 장관]"right now the 10 dollars bill is undergoing redesign and I'm proud to announce today that..."

지난해 6월, 잭 루 미국 재무부 장관이 10달러 지폐 속 인물을 교체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의 화폐에 여성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은 오늘날 여성들의 역할과 사회적 기여도 등에 걸맞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면서 특별히 오는 2020년, 처음으로 미국 여성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한 수정헌법 비준 100주년에 맞춰 현재 10달러에 있는 알렉산더 해밀턴 대신 어떤 여성이 좋을지 의견을 받겠다며 대국민 홍보를 했습니다.

[녹취:잭 루 재무부 장관] " we want to you to share your ideas symbols and designs for new..."

하지만 여론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어떻게 미국의 금융, 경제 제도의 초석을 세운 초대 재무장관을 뺄 생각을 하느냐는 지적이 만만치 않았죠. 결국 재무부는 오랜 검토 끝에 최종적으로 10달러에 있는 알렉산더 해밀턴의 초상은 그대로 두고 뒷면에 여성 참정권 운동가 5명의 초상을 넣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또 여성의 얼굴이 왜 뒷면에만 들어가야 하느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겠죠? 그래서 재무부는 지금 20달러 앞면에 있는 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초상을 뒷면으로 보내고, 대신 흑인 인권운동가였던 흑인 여성 해리엇 터브먼의 초상을 넣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언론에서는 알렉산더 해밀턴을 대통령조차 이긴 인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카리브 해의 작은 섬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

알렉산더 해밀턴은 1755년 1월, 중남미 카리브 해의 네비스(Nevis)라는 한 작은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이었고요. 네비스는 영국령이었습니다. 해밀턴의 생년월일은 정확하지 않은데요. 1755년생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1757년생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해밀턴은 사생아였습니다. 해밀턴의 어머니는 유부녀였는데요. 제임스 해밀턴이라는 스코틀랜드 계 남성과의 사이에서 알렉산더 해밀턴을 낳은 겁니다. 해밀턴의 어머니는 불륜을 들킨 후 쫓겨나 제임스 해밀턴과 함께 자신의 고향인 네비스로 가 살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영국 교회는 두 사람이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렉산더 해밀턴 가족이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요. 해밀턴이 교회 부속 학교에 다니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아버지 제임스 해밀턴은 알렉산더 해밀턴이 아직 어렸을 때 두 모자를 남겨놓고 자취를 감춰버렸고요. 해밀턴이 13살 때 어머니마저 사망하면서 해밀턴은 고아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남달리 영특했던 아이, 주변 도움으로 미국으로 유학”

해밀턴은 열 살 무렵부터 가게 점원 같은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하고 뛰어난 머리를 가져서 일찌감치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섬의 유지들이 돈을 모아 미국으로 유학을 보냅니다. 해밀턴이 미국 뉴욕에 도착한 건 1773년, 16살 때 정도로 킹스 칼리지, 지금의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 입학합니다.

이 무렵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 움직임이 일 때였는데요. 해밀턴은 친왕정파에 반대되는 정치적 글을 쓰는 등 공부보다는 정치에 더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결국 학교 과정을 다 마치지 않고 독립군에 가담하는데요. 여기서 해밀턴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될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장차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될 조지 워싱턴 장군이었습니다. 해밀턴은 조지 워싱턴의 최측근 보좌관으로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으로 발탁되기에 이릅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의 업적”

전쟁이 끝나고 독립을 쟁취했지만 신생 미국은 강력한 중앙정부에 대한 경계심이 강했습니다. 이때 알렉산더 해밀턴은 정치적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함께 강한 연방 정부와 연방 헌법의 필요성에 대한 기고문을 발표하는데요. 이 기고문은 오늘날 미국 정부의 기본 원리와 함께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 당시 신생 정부의 재정 상태는 아주 엉망이었는데요. 주 정부들은 전쟁을 치르느라 재정이 바닥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밀턴은 중앙은행 설립을 추진해 혼란스러운 재정 체계를 수립하고, 전쟁의 채무를 연방정부가 책임지게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합니다. 당시 토머스 제퍼슨을 비롯한 많은 지도자들이 반대했는데요. 하지만 해밀턴은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끈질기게 설득해 나갔고 결국 워싱턴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미국의 재정과 정치 체제의 틀을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해밀턴이 역대 미국의 대통령이 아니면서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1명으로 꼽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극적인 삶과 죽음”

[녹취: 뮤지컬 ‘해밀턴’ 삽입 음악]

최근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끈 알렉산더 해밀턴의 삶을 다룬 뮤지컬, 가무극 ‘해밀턴’에 나오는 음악 잠시 듣고 계십니다. 해밀턴이 10달러 지폐에 그냥 남게 된 데는 이 뮤지컬도 한몫을 했습니다. 이 뮤지컬 덕분에 미국인들 사이에 해밀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해밀턴을 미국 지폐에 그대로 남겨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던 건데요. 뮤지컬 해밀턴은 올해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될 만큼 아주 잘 만들어진 가무극입니다.

해밀턴의 삶은 사실 가무극으로 만들어질 만큼 극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건국의 아버지들 가운데 알렉산더 해밀턴 만큼 신분이 낮은 사람도 없었죠. 심지어 미국의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해밀턴을 스코틀랜드 행상인에게서 태어난 사생아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해밀턴은 뛰어난 머리와 담대함, 뚝심으로 이런 비난과 조롱을 견뎌내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해밀턴은 죽음마저 극적이었는데요. 해밀턴은 당시 정치인 ‘에런 버’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1800년 대통령 선거에 토머스 제퍼슨과 에런 버가 출마하자 해밀턴은 에런 버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며 토머스 제퍼슨을 밀었고요, 제퍼슨이 미국의 3대 대통령이 됐는데요. 에런 버는 해밀턴 때문에 자신이 졌다고 생각해 원한을 갖게 됩니다. 결국 서로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면서 1804년, 에런 버가 해밀턴에게 권총 결투를 신청하는데요. 서로 총을 겨누고 동시에 방아쇠를 당겨서 저격당하는 사람이 죽는 그야말로 사생결단의 결투죠. 이 결투에서 해밀턴의 총알은 빗나갔지만 버의 총알은 해밀턴에게 치명적인 중상을 입혀 해밀턴은 그 다음 날 사망하고 맙니다. 이때 그의 나이 불과 48살이었습니다.

미국의 지폐 중에서 역대 미국의 대통령이 아닌 인물은 10달러 지폐 속 알렉산더 해밀턴과 1백달러 지폐 속의 벤저민 프랭클린 단 2명뿐입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박영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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