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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해외 북한식당 전 관계자] "한국 손님 없으면 운영 어려워...정보수집 활동도"


해외의 북한 식당 종업원들이 영업을 준비하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자료사진)

해외의 북한 식당 종업원들이 영업을 준비하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자료사진)

북한 정권의 돈줄을 죄려는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면서 주요 외화벌이 수단인 해외의 북한 식당들도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정부는 자국민들에게 해외여행 중 북한 식당 이용을 자제하도록 권고했는데요, 이 시간에는 얼마 전까지 해외 북한 식당에서 파견 일군으로 일했던 J 씨로부터 직접 북한 식당의 실태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저희 ‘VOA’는 여러 경로를 통해 J 씨가 북한 식당에서 수 년 간 근무한 것을 확인하고 익명을 전제로 J 씨와 서면 인터뷰를 했습니다. J 씨는 종업원들이 북한에서보다 더 심한 통제와 강요를 받았고 북한에서 받은 교양과 너무 다른 바깥 세상을 보며 인간답게 사는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J 씨의 신변 보호를 위해 그가 언제, 어느 나라의 북한 식당에서 근무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영문 기사 보기 ]Exclusive: N. Korea Uses Overseas Restaurants for Information Gathering

]기자)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외의 북한 식당이 주요 외화벌이 수단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우선 북한 식당에서 일할 때 하루 매상이 어느 정도였고 할당된 목표량은 얼마나 됐었는지 궁금합니다.

J 씨) “매상은 하루 평균 미화로 1천500 달러에서 2천400 달러 정도 됐습니다. 저희 임무는 당 자금 보충을 위한 외화벌이인데 목표는 1년에 20만 달러를 벌어 바쳐야 합니다. 처음에는 이 과제를 수행하지 못했는데 몇 년 후에는 20만 달러를 초과 수행했습니다. 수입의 기본원천은 손님 식사비입니다. 또 일부 조국기념품 판매비도 있습니다”

기자) 종업원들의 수입은 얼마나 됐나요?

J 씨) “접대원들은 생활비로 월 10 달러에서 15 달러를 현금으로 줍니다. 특별한 경우는 20 달러일 때도 있습니다. 대신 (파견 기간이 끝나) 조국에 소환될 때 현금 2천 달러에서 2천500 달러를 줍니다. 귀국한 후에는 TV나 랭동기 (냉장고), 세탁기를 줍니다. 해외에서 일하는 기간은 4년 입니다”

기자) 식당에 파견되는 종업원들은 어디 소속으로 어떻게 파견합니까?

J 씨) “파견 인원은 한 식당에 보위원 1 명과 접대원10-20 명 입니다. 파견 인원들은 모두 같은 소속이 아니라 대외봉사총국, 인민봉사총국, 617 무역회사, 옥류관 등 여러 곳에서 파견됩니다. 나와서는 대외봉사총국 소속으로 지시를 받지만 조국 소환 후에는 다시 배치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바깥 세상을 경험했기 때문에) 원래 있던 곳으로 가기는 힘듭니다.”

기자) 식당 파견자들은 대부분 평양 출신이라고 하는데 선발 기준이 있습니까?

J 씨) “기준은 이미 다 세상에 널리 공개된 그런 절차입니다. 행선지 결정은 해당 당 조직이 하고 조국에서 발표할 때 알려줍니다. 해외에 제가 가고 싶은 곳에 간다는 것은 꿈에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또 우리는 물론 고위층도 그런 것을 상상해 본 조선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조선 인민은 살 권리, 죽을 권리, 항거할 권리가 없습니다.”

기자) 식당의 손님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요?

J 씨) “60- 80%가 남조선 사람입니다. 조선 음식이 기본이고 식사비가 비싸기 때문에 주재국 손님은 돈 있는 대상들만 옵니다. 그래서 남조선 사람들이 식당에 안 오면 식당 운영이 불가피하게 안됩니다.

기자) 해외에 나오면 보고 듣는 게 많으니 생각도 바뀔 것 같습니다. 북한 종업원들은 한국 손님이나 세상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나요?

J 씨) “남조선 손님들은 같은 민족이라는 점, 식당에 오는 손님들이라 해서 반갑게 대해주고 일련의 대화도 나눕니다. 하지만 반목질시 하는 체제 교양된 후과도 작용하겠지만 저희는 남조선 손님들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로 봅니다. 즉, 인간의 의리와 정직함은 뒷전에 있고 오직 돈, 권세 위주로 모든 것을 인식, 처리, 결정하는 사람들이라 진심을 나누기 어렵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진정한 동지애는 결여된, 혁명-생사고락을 함께하기는 어려운 사람들”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것은 다 나라가 분열돼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한국 언론들은 북한 식당이 외화벌이 뿐아니라 첩보수집 활동도 한다고 보도했는데, 정말로 그런 활동을 합니까?

J 씨) “접대원들에게는 식당 출입 외국인, 특히 남조선 사람 (정계, 재계)들이 주고받는 대화정형, 동향, 신원파악 등을 수집 보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보위원들이 주로 식당 인원들을 감시. 통제하면서 그런 활동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기자)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북한 외화벌이 노동자들이 노예처럼 과도한 노동과 임금 착취에 시달리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유엔 담당자들이 보고서와 기자회견을 통해 직접 우려를 제기하는 상황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J 씨) “자유로운 세상에 나왔지만 우리에게는 눈으로 국한된 바깥 세상만 볼 수 있었습니다. 감시와 통제, 단속은 조국에 있을 때보다 색다른 정신 고충이었고 육체적 자유 구속도 추가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교양 받고 듣는 것과 달리 세상은 이렇게 정반대로 판판 다른데, 우리들 인식에 왜 영향이 없겠습니까? 어찌 다 이런 심정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우리 모두 깊은 마음 속에는 ‘우리도 이 사람들처럼 자유롭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날이 과연 언제면 올 수 있을까?’ ‘바람이란 가닥 없는 한 갈망’ 이 것입니다.”

기자) 식당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쁘거나 힘든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J 씨) “조국에서 가족친지들에 대한 소식을 받았을 때가 제일 기쁩니다. 힘이 되고 이겨내야 되겠다는 용기를 얻곤 합니다. 힘든 것은 개인 사생활이란 게 없고 다 조직생활이니 전반이 다 힘듭니다. 한마디로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권세를 남용하는 비원칙적 요구나 강요, 아부와 아첨에 순응치 못하면 억울한 정치적 감투를 씌어 조직적 감시가 되고 그런 대상으로 취급될 때 가장 힘듭니다. 이런 것은 차후 개인의 운명이 걸린 문제가 되기 때문에 힘듭니다.”

기자) 북한에 있는 젊은 후배들에게 외화벌이 식당 파견을 추천하시겠습니까?

J 씨) “개인적으로는 추천하고픈 마음이 없습니다. 맹물에 소금을 찍어먹고 억압받아도 조국생활이 낫습니다. 그러나 추천해야 한다면, 조국에 친지나 이웃 사람들이 정신적 고충을 이겨낼 각오가 있다면, 갇힌 우리 세상을 벗어나 자신의 눈으로 바깥 세상을 직접 보고 새로운 인식을 정립하려 한다면 한 번 다녀가 보라하고 싶습니다.”

기자) 끝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J 씨) “그저 바깥 세상 사람들처럼 상상 높은 자유와 권리는 못 누려도 자신의 운명 개척.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관리하고 책임지는 초보적 자유와 권리만이라도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충분한 답이 되셨는지 미안한 마음입니다.”

진행자) 지금까지 과거 해외 북한식당에서 일했던 J 씨와의 서면 인터뷰를 대독을 통해 전해드렸습니다. 인터뷰에 김영권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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