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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고아들의 아버지' 헤스 미 공군 대령 1주기 추모식


'전쟁고아의 아버지' 딘 헤스 미 공군 대령 1주기 추모식이 4일 서울 공군회관에서 열렸다. 정경두 공군참모총장 등 참석자들이 헤스 대령의 초상화 제막식을 하고 있다.
'전쟁고아의 아버지' 딘 헤스 미 공군 대령 1주기 추모식이 4일 서울 공군회관에서 열렸다. 정경두 공군참모총장 등 참석자들이 헤스 대령의 초상화 제막식을 하고 있다.

6.25 한국전쟁 당시 한국 공군의 기틀을 마련하고, 전쟁고아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딘 헤스’ 미 공군 대령의 1주기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서울에서 박은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한국전 고아들의 아버지' 헤스 미 공군 대령 1주기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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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현장음]

4일 저녁 서울 공군회관. 고 딘 헤스 대령의 1주기 추모행사가 열렸습니다. 딘 헤스 미 공군 대령은 6.25 한국전쟁 당시 서울의 고아 천여 명을 제주도로 후송한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데요, 생전 “남북통일을 볼 때까지 살고 싶다”고 말했던 헤스 대령은 작년 3월 3일 미 오하이오 주에서 98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추모식에는 역대 공군참모총장과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 고인의 아들인 에드워드 헤스 씨, 6.25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참석해 그를 기렸습니다.

[녹취: 현장음]

딘 헤스 대령은 중공 군이 서울로 물밀 듯 내려오던 1.4 후퇴 당시 미 공군 지휘부를 설득해 15대의 수송기를 전쟁고아 후송작전에 투입해 천 여명의 전쟁고아를 서울에서 제주도로 무사히 피신시켰습니다. 이후에 제주도에서 10개월 간 보육원을 운영했고,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기금을 만들어 보육원을 지원했습니다. 이번 추모식에는 당시의 전쟁고아들도 함께 했는데요, 유기현 씨 입니다.

[녹취: 유기현, 당시 전쟁고아] “헤스 대령님이 구경도 못한 비행기로 6.25 때 저를 제주도로 피난을 시켜주셨거든요. 피난을 가서 거기서 배우고 그래가지고 사회에 진출했거든요. 그래서 아주 그 분의 인류애 때문에, 인간애 때문에 지금 제가 살아있습니다. 추운데 차 타고 인천까지 갔다가, 인천까지 가니까 배를, 우리를 싣고 가려고 했던 배는 군수물자를 내려놓고 떠나버리고. 그래 갖고 다시 와서 김포공항에서 얘기가 돼 가지고 헤스 대령님이 제주도까지 우리를 피난시켜 주신거죠.”

역시 당시 전쟁고아였던 이왈복 씨는 보육원의 어린이들 중에서 비교적 나이가 많았던 13살이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이 더 생생합니다.

[녹취: 이왈복, 당시 전쟁고아] “헤스 대령님께서, 제주도까지 가는 데 그 때 같이 제가 고아원에 있었어요, 같이. 그 때는 종로국민학교에 다녔는데요, 그때. UN 유학원이라고 했었어요. 그래서 길거리에 늘어서 움직이는 애들을 무조건 주워서, 부모들이 없으니까. 실어서 트럭에 모아서 싣고 갔던 곳이 한국보육원이라고. UN 유학원이었다가 제주도 가 갖고 한국보육원이라고 이름이 바뀌었어요, 그게. 그 때 헤스 님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저도 없었죠. 이런 은혜로운 사람을 내가 전쟁 때 만약에 이북에 갔던가 어떻게 해서 그런 입장이 됐을 때 내가 구할 수 있겠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해 봐요. 힘든 일을 했으니까 뭐 제 심정 같으면 세계평화 노벨상이라도 벌써 줬어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진짜 뭐라고 표현을 할 수 없어도 감사는 갖고 있어요.”

헤스 대령은 대한민국 공군 창설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기도 한 인물인데요, 그의 전투기에는 그의 좌우명인 ‘신념의 조인’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신념의 조인은 1982년 같은 제목의 군가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요, 그의 일대기는 미국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추모 현장에서는 신념의 조인 군가와 영상, 그리고 그를 기리는 추모 시 낭독 등이 이어졌습니다.

[녹취: 현장음]

고인을 추모하는 추모 시를 낭독한 이연분 씨는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딘 헤스 대령에 대해 처음 알게 됐습니다.

[녹취: 이연분, 낭송가] “처음에 저는 사실 부끄럽지만, 이 딘 헤스 대령을 몰랐거든요. 몰랐는데 이 시를 보면서 제가 연습을 하면서, 아 정말 이런 분이 있었고, 정말 이런 분을 이렇게 표현을 해서 추모하는 분이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감동을 받았어요. ‘자신이 구한 고아보다 구하지 못한 고아들이 더 아프다’, 또 ‘하늘의 별로 사라진 한국 전우들이 더 슬프다’. 는 게 마음에 와 닿았어요.”

[녹취: 현장음]

한편, 이번 추모행사에서는 딘 헤스 대령의 초상화 제막식도 진행했습니다. 초상화를 그린 한남대학교 신영진 교수는 대형 초상화는 이번 제막식을 거쳐 공군에 기증했고요, 딘 헤스 대령의 젊은 날을 그린 소형 초상화를 제작해 유족에게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신영진, 한남대 조형예술과 교수] “공군사관학교에서부터 공군박물관, 또 여기 역사박물관 단장이신 최성원 단장님께서 많은 자료를 저한테 제공해주시고, 또 일대기 하고 또 영화, 모든 걸 다 보고 또 관련 자료를 다 분석하고, 한 일곱 차례 콘셉트가 바뀌면서 제작이 된 겁니다. 그래서 제가 과거에 ‘민족의 후예’라는 작품으로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딘 헤스 대령의 업적을 이렇게 분석하면서 보니까 한민족의 어린 아이들을 살린, 그 업적이 가장 크다고 저는 생각이 됐어요. 그래서 민족의 혈맥을 이어준다, 이런 차원에서 굉장히 존경스럽게 됐고요. 그리면서도 아주 사실 하루에 15 시간을 강행하게 되면 상당히 피로감이 오는데, 전혀 그런 걸 못 느끼고 작업을 해 왔습니다.”

[녹취: 현장음]

서울에서 VOA 뉴스 박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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