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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 명문 부시 가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오른쪽)이 공화당 대선 경선에 출마한 동생 젭 부시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지난 15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찰스톤 시 선거유세장을 찾았다. 이후 젭 부시 후보는 공화당 경선을 중도 하차했다.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오른쪽)이 공화당 대선 경선에 출마한 동생 젭 부시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지난 15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찰스톤 시 선거유세장을 찾았다. 이후 젭 부시 후보는 공화당 경선을 중도 하차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지난해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미국 역사에서 아버지와 아들, 또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대통령이 된 적은 있었지만 한 가문에서 3명의 대통령이 배출된 적은 없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유력한 선두주자로 꼽혔던 젭 부시 후보는 선거운동이 진행되면서 계속 지지율이 떨어지더니, 결국은 얼마 전 중도 하차를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비록 세 번째 대통령 배출의 꿈은 무산됐지만, 부시 가는 미국에서 대표적인 정치 명문 집안인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부시 가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박영서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 미국 정치사의 한 장을 쓴 정치 명가”

미합중국 대통령, 부통령, 주지사, 연방 상원의원, 연방 하원의원,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이 모든 게 다 부시 가문의 사람들, 그것도 겨우 4명이 가졌던 직위들입니다. 한 가문에서 대통령 1명만 배출해도 가문의 영광이라 할 만한데, 2대 연속 대통령이 나왔으니 정치 명가라는 소리가 결코 과하지 않은 집안인 거죠. 부시 가문의 첫 번째 정치인은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할아버지인 프레스콧 부시인데요. 금융인이었던 프렛스콧 부시는 나중에 코네티컷 주 출신 연방 상원의원까지 지냈습니다. 프렛스콧 부시에게는 5명의 자녀가 있었는데요. 그중에 차남이 나중에 미국의 41대 대통령이 되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고요. 프렛스콧 부시의 장손인 조지 W. 부시는 미국의 43대 대통령이 됐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혼동을 줄이기 위해 41대 부시와 43대 부시, 또는 좀 더 나이 많은 부시와 좀 더 젊은 부시로 부르기도 하고요. 한국의 언론들은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라고 많이 부릅니다.

“미국의 41대 대통령,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는 1989년부터 1993년까지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했습니다.

[녹취: 조지 H.W. 부시] “Read my lips, No new taxes”

198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조지 H.W. 부시 후보는 “내 입술을 보십시오. 더 이상의 세금은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청중들은 열광했고 승기를 굳힌 부시 후보는 그해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를 누르고 미국의 41대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아버지 부시가 레이건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재임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레이건 대통령과 대통령 직을 놓고 경선을 벌인 사실은 모르는 분도 많은데요. 실은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첫 관문이자 풍향계라는 평을 받고 있는 아이오와 당원대회에서 당시 부시 후보는 레이건 후보를 누르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전력이 있습니다.

[녹취: 조지 H.W. 부시] 1980년 아이오와 공화당 당원대회 현장음 “You Know there’s some risk in saying this…”

아버지 부시는 그 해 공화당 경선에서 레이건 후보에게 지고 공화당 후보 지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선거 기간 동안 강력한 인상을 남겨 레이건 후보로부터 러닝메이트, 부통령 후보 제안을 받게 됐고요. 11월 본 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면서 조지 H. W. 부시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8년간 부통령으로 재임했습니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부통령과 미 중앙정보국 국장, 유엔 주재 미국 대사 등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재임 당시 걸프전, 독일 통일, 소련 붕괴 등, 세계적인 격변기를 미국이 지도력을 발휘하며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이끌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외교와 국방에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는데요. 하지만 걸프전을 치르면서 오히려 세금이 늘어나 경제를 잡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고요. 결국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구호를 외치던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에게 패하면서 미국 역사상 4년 단임으로 끝난 몇 안 되는 대통령 가운데 한 명으로 남게 됐습니다.

“미국의 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 대통령”

조지 워커 부시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대통령을 지냈습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연임의 꿈을 아들 부시 대통령은 이뤘지만, 한동안 아버지에는 한참 못 미치는 아들이었습니다.

사실 아들 부시 대통령은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답습했습니다. 미국의 명문 사립 학교인 매사추세츠 주 필립스 앤도버 아카데미를 거쳐 예일 대학교를 졸업한 것도 같고요. 석유회사를 운영한 것도 같습니다. 둘 다 연방 하원의원에 출마한 것도 같은데요. 하지만 아버지는 당선되고 아들은 떨어졌습니다.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진 후 뛰어든 석유 사업에서도 아버지만큼 사업 수완을 발휘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1994년 텍사스 주지사 선거에 승리한 후 연임에 성공하면서 아들 부시의 정치적 자질은 유감없이 발휘됐고요. 그 기세를 몰아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도전해,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와 재검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미국의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녹취: 조지 W. 부시] “Our nation must rise above…”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당선 수락 연설에서 양분된 미국을 다시 하나로 통합할 것으로 호소했습니다. 아들 부시 대통령은 8년 재임 기간 동안 지도력과 유머 감각과 건강한 카리스마, 자신감 등 정치인이 갖춰야 할 덕목을 발휘하며 미국을 이끌어 갔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취임 이듬해인 2001년 9월 11일, 미국 본토에 발생한 전대미문의 테러 공격은 부시 대통령에게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녹취: 조지 W. 부시] "These acts of mass murder were…"

부시 대통령은 즉각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요. 2003년에는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는데요. 하지만 현재 미국의 정가에서는 이 이라크전 결정이 부시 대통령의 실책이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지루하게 전쟁이 계속되면서 많은 미군 병사가 목숨을 잃었고요. 그러면서 부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도 많이 떨어져 한동안 인기 없는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습니다.

"무산된 대통령의 꿈,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조지 H.W. 부시 대통령의 둘째 아들로 올해 63살입니다. 원래 이름은 존 엘리스 부시인데요, 젭(Jeb)은 어머니 바바라 부시 여사가 첫 이름과 중간 이름 그리고 성의 앞 자를 따서 부르기 시작한 애칭입니다. 젭 부시는 14살 때 부모와 떨어져 아버지와 형이 다녔던 ’필립스 앤도버 아카데미’에 들어간 후 텍사스 대학교에서 라틴 아메리카, 중남미 학문을 전공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플로리다로 이주해 은행, 부동산 개발회사 등에서 일하다 1980년대 중반, 결국 아버지와 형의 뒤를 이어 정치 인생을 시작하는데요. 플로리다 주 상무장관을 거쳐 1998년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중앙 무대에서도 주목하는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해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하면서 백악관 입성을 노렸는데요. 선거 초반 가장 많은 선거 자금을 모으면서 유력한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꼽혔지만, 형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권의 이라크 전쟁 그림자와 예기치 않은 도널드 트럼프 열풍에 밀려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녹취: 젭 부시] “Thank you for the opportunity…”

지난 2월 20일, 결국 젭 부시 후보가 대통령 후보 사퇴를 선언했고요. 이로써 36년에 걸친 부시 가의 백악관을 향한 긴 여정은 일단 마침표를 찍게 됐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의 정치 명문, 부시 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박영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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